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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한국교회 이단 정죄의 역사와 분열

▲사진은 최삼경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한기총 질서확립위원회 모습
▲사진은 최삼경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한기총 질서확립위원회 모습

채영남 총회장은 예장통합 측 교단 100주년을 맞아“희년에 차별이 없다. 차별이 없는 것이 희년이다.”라며 한국교회가 화해의 역사로 나갈 것을 선언했다. 실로 역사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정당치 못한 이단 정죄로 말미암은 분열과 반목의 역사를 거듭해왔다.

이단의 굴레를 쓰고 있는 교회와 인사들에 대해 그 굴레를 벗긴다는 화해의 선언이야 말로 어쩌면 한국교회사에 새로운 화합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독교의 이단 정죄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얼굴 없는 이단 정죄에 의한 분열의 역사 그 자체였다.

소위 정통이라는 이름만 앞세운 이단 감별사라 자칭하는 사람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면 바로 이단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를 한국교회는 반복해 온 것이다.

한국교회사에 등장한 신천지나 안상홍 증인회 등과 같은 종교단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이단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교리 신학적 차원에서 냉정히 살펴보면 이단이라고 할 수 없는 많은 인사와 교회들이 얼굴 없는 이단 정죄 행위를 일삼은 일명 이단 감별사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이단으로 매도되는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왜 예장통합 측 채영남 총회장의 화해의 선언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야만 하는가? 그리고 한국 교회는 왜 이 선언에 주목해야 하는가?

한국기독교의 이단 정죄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나는 부당한 정죄에 의한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기준에 의거해서 이단이 되어야 했는지, 과연 얼마나 기독교 교리, 신학적 기준에 의거하여 이단 정죄가 이루어졌는지….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전통 교리나 신학적 사상을 토대로 하기 보다는 그 기준이나 근거조차 명확히 밝히지 아니한 채 검은 색을 칠해 놓기 위한 의도된 목적에서 먹칠을 당해 이단이 된 예들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가 견지해온 역사성이나 교리 신학적 정당성에 크게 벗어나지 아니했음에도 무조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의구심을 띄워 놓고 이미 장악하고 있는 언론 플레이를 앞세워 이단이라는 누명을 씌워 선전해 버리면 그 자체가 이단이 되는 기괴한 일이 되풀이 되곤 하였다.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기독교 교회사가 추구해온 이단적 규정과 접근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았고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론적 수단적 빌미와 그 같은 결과들에 대한 선전을 받아 줄 수 있는 상대 우위의 다수를 바탕으로 하는 힘만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이단 정죄는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일임이기에 그만큼 신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요리법에 따라 행해진다는 웃지 못 할 이단 정죄 행위가 한국교회에 남발되었던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과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기독교가 용인할 수 없는 이단 사상을 가지고 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이 있으니 아연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행위를 자행한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 기독교의 이단 감별사로 활동한 교회와 신앙의 최삼경 씨라는 인물인데 그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단 정죄의 특징에 대하여 밝혔다.

첫 번째, 최삼경 씨는 1996년 대전 유성에서 행한 이단 관련 세미나에서“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요리법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듯이“ 라고 하면서 이단을 잘 요리해서 만들어 낸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말 그대로 얼굴 없는 이단 감별사로 활동해 오면서 요리사가 요리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매도해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예장통합 측 이단 규정을 기준으로 볼 때 명백한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이단이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이단 감별사로 활동해 왔다. 최삼경 씨는 자신을 밝히는 여러 글에서 기독교가 견지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핵심사상들. 즉, 삼위일체를 치명적으로 부정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성 동시 존재론 즉 칼 케톤 신조의 기독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역사적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또한 그는 치명적으로 기독교의 기독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월경 잉태론이라는 해괴한 기독론을 가지고 있는 자로 한국교회는 확인하였다. 이런 사상들은 그가 왜 얼굴 없이 이단 감별사로 활동해 왔는가를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이단 사상을 최대한 숨겨두면서 한국교회 이단 감별사로 활동해 왔는데 그가 가진 역사적 이단성 문제는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최삼경 씨 이단 사상이 문제없다고 지지하던 모 신학대학교 총장 C모 박사를 얼마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인사에게 최삼경 씨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그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론’즉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 왔을 때 ‘세 분이 왔다’고 한다. 각각 독립된 셋이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한 분이 왔다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교회와 신앙⌟, 2001년 11월호. p.140.)을 외치고 있는데, 박사님 그래도 문제가 없습니까?”고 하면서“그가 말한 글을 직접 가져다 보여 드릴까요.”라고 했더니 식사하던 수저를 내려놓으면서“그가 그런 말을 했어! 그러면 이단이네”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인사는 지금까지 최삼경이라는 인물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근래에 월경 잉태론을 주장하여 한국교회에서 최소한의 조치로 그의 활동을 제한시켜 놓았지만 여전히 암묵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면한 사실이 아닌가? 한국 교회는 아직도 최삼경 씨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유보시켜 놓고 있다.

한국교회가 비로서 그가 심각한 이단 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지금까지 활보하던 활동을 최소한으로 제한시켜 놓지 않았는가? 이러한 역사적 이단에 대한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있을 수 없는 인사에 의해 한국 교회가 기만당해 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단 사상에 물들어 있으며 얼굴 없는 가면으로 이단 정죄를 남발한 최삼경 씨다.

최삼경 씨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면서 기독교 삼위일체론이 없어져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가 없어져야 된다 ’ (⌜교회와 신앙⌟, 1997년 11월호. p.169.) ’고 하면서, 또한 ‘삼위일체 교리는 귀신같은 교리다’고 외친 이단이다. 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공격하면서 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귀신같은 교리가 된다’ (⌜교회와 신앙⌟, 2001년 11월호. p.144.) 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칼빈도 많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실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면서 … 그는 ‘필자(최삼경)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충분한 책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열거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회와 신앙⌟, 1997년 11월호. pp.16~163.)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고백하기를 ‘장로교 교리로 보아도 이단이다’라(「교회와 신앙」,1997년 8월호. p.154.)고 스스로 분명하게 선언 인정하였다. 이것은 그 자신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들이 기독교 역사와 교리신학 상으로 보아도 이단이라는 것을 자타가 모두 인정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교단이 힘 있는 교단이 아니었으면 벌써 그는 한국교회사에 등장한 역사적 이단으로 규정되어 한국 교계에서 퇴출되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 과제로 남겨 두고 있다. 그의 교리 사상은 기독교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되는 말 그대로 역사적 이단 사상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로교 신학으로 보아도 이단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은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다.

누가 보아도 그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 사상에 반하는 이단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가 안고 있는 사상들은 기독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단 사상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사가 지난 30년간 한국교회 이단정죄 행위와 역사를 쥐락펴락 하면서 주도해 나왔다는 현실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얼굴 없는 한국 교회의 이단 정죄의 역사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치 X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보고 짓는다는 식의 역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 같은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들은 고스란히 한국교회 현실 속에 남아 있고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과연 한국교회에서 이단을 감별해낼 수 있을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몇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도 얼굴 없는 무자격자들이 무엇이 이단인지 감별할 수 있는 조건이나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그 자격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배후에서 여전히 그 같은 정죄 행위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말해주는 것은 어이없는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전문성을 상실하고 정통이라는 간판만 내걸어 놓고 역사적인 전통 교리와 전통성에 근거하지 않은 이단 정죄행위는 말 그대로 얼굴 없는 이단 정죄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단이면 기독교 역사성에 의거해서 왜 이단인지 명확히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어떤 신앙행위를 문제 삼아 이단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문제의 여지가 있다.

최삼경 씨는 자신이 행한 이단 정죄의 기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자신은 ‘장로교 신학으로 이단 규정한 요소가 없었고, 필자(최삼경) 편에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런 요소가 없었으니 …’라고 하는 주장했다. (「교회와 신앙」, 1997년 8월호. p.154.) 이는 최삼경 씨가 장로교 신학으로 이단 정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가 알미니안 주의 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에 의거해 보더라도 그가 알미니안을 기준으로 가지고 이단 정죄를 했을 리는 만무하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는 기독교 정통 내지 전통 신학 가지고 이단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이단 정죄의 기준은 당연히 정통 신학이나 전통 신학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으로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삼는 이단 사상에 의거하여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마구 이단으로 내질러 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최삼경 씨가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는 자신의 신앙관과 이단정죄의 기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실토했다. ‘필자(최삼경)가 무엇에 대하여 장로교 안경(교리와 신학)을 썼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 장로교 신학으로 보아도 필자(최삼경)은 이단이다’ (「교회와 신앙」, 1997년 8월호. p.154.)라고 밝혔다.

최삼경 씨의 이 같은 고백과 실토를 보면 그는 장로교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내막을 보면 기독교가 용인할 수 없는 해괴한 이단 사상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마구 이단정죄 행위를 일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자의적 이단 사상을 기준으로 한국교회에서 크게 발전하는 교회를 대상으로 별로 이미지가 안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엮든지 아니면 이내 이분설이니 삼분설이니 하며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 교묘한 논리를 엮어 색칠해 놓고 언론에 터트려 이단이라고 매도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최삼경 씨 자신의 이단사상에 비교해도 깜도 안 되는 이유들을 언론에 크게 터트려 이단 만들기에 골몰하고 그러한 내용들을 가지고 이단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마치 소경이 파밭 짓밟듯이 마구 휘둘려 대면서 다른 이들을 이단 사이비라고 매도해 왔던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이단 정죄의 난맥상을 이 짧은 지면에 모두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무분별한 이단 정죄의 행위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는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분열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 교리적 명분을 내세워 분열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단 정죄의 남발로 말미암은 수많은 상처와 반목을 낳으면서 또 다른 분열을 자초하였다. 이로 인한 상처와 원성의 골은 한국교회를 더욱 깊은 분열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다.

그렇다고 매도당한 교회 내지 교단들이 당위성 없이 당한 현실을 인정하고 돌아 섰느냐 하면 그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더구나 역사적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매도하는 행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며‘이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누가 인정을 하겠는가? 결국 드러난 것은 그 같은 정죄 행위를 일삼은 사람 자체가 이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결국 드러나고 말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이 실상을 바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도 그의 교단도 그의 역사적 이단 사상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이단정죄사의 특징에서 최삼경 씨를 분석해 본다면 결국‘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짖었다’는 격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결국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이 같은 행위를 남발하였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이단 정죄 행위가 얼마나 추악한 행위였는가, 그리고 얼마나 개인에 의한 잘못된 정죄 행위였는가를 암묵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단을 가려내려면 이같이 기독교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상을 가진 자들을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가려내야 하는데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바른 식견으로 이단을 가려내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냉정한 분석을 통해 정당하게 제시하고 그 자신도 인정할 정도까지 충분한 토의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개선할 수 없다면 당연히 이단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절차를 밟고 그때 가서 이단이라고 해도 늦지는 않는다.

무분별한 이단 정죄 행위의 역사로 본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골절을 당해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형국과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누가 이를 치료할 것이고 어디를 가서 이 난제를 풀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금번 예장통합 측 총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채영남 총회장이 희년의 정신으로 한국교회 화해를 밝혔다. 그동안 얼굴 없는 이단정죄의 행위로 말미암은 역사를 바로 잡고 한국교회의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선언은 예장통합 측 한 교단이나 채영남 총회장의 개별적인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조치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단비와 같은 사건과 선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죄와 분열 그리고 수많은 사건들로 얼룩져 충격과 실망의 멍에를 안겨 주기만 했던 한국 기독교가 아닌가? 사회를 이끌고 이 사회에 희망을 주어야할 교회가 도리어 이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끌려 가다시피 하는 현실은 분명 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히 추락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자체적으로 화합하고 하나가 되어 모순된 것은 스스로 자정하고 시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채영남 총회장의 총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선언한 “그리스도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시면서, “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하나님의 아들이라’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세상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과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평화를 위한 일에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화해의 정신, 평화의 정신을 따라 일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남을 죽이고 정죄하는 일로 점철되어온 역사는 아닌가? 당위성이 있는 일이라면 누가 그것을 탓하겠는가? 그러나 정당한 당위성이 없이 자신은 용인될 수 없는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차별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단이라고 매도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희년에 차별이 없다. 차별이 없는 것이 희년이다.’라고 하면서 교리와 징계의 포로에서 사면을 선포한 것은 과연 이 땅에 평화와 희망을 선포한 역사적인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역사는 화해와 일치로부터 그리고 내부적으로 시작됨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번 채영남 총회장의 선언은 한국교회가 거듭나는 전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작성자]심상용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중앙대학교 사회개발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목사로서 전 협성대학교 강사, 현대종교 편집위원, 한국교회갱신위원회 연구위원을 지냈다. 현재 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종교 마피아적 목사 최삼경씨의 한국교회 짓밟기」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