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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탄과 유월절, 부활과 유월절

1.예수의 성탄(聖誕)과 유월절과의 관계

눅2:1-7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기록된 말씀을 자세하게 상고(詳考) 하고 또 상고(詳考) 하면 예수 성탄의 날을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令, 명령)을 내려 천하로 호적을 하라고 하였을 때에 구레뇨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처음 실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요셉도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나신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인 관계로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려고 베들레헴에 갔던 것이고 이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달이 차서 맏아들을 낳으려고 할 때에 사관(舍館)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고 하였다. (눅2:6~7) 사관(舍館)이란 우리가 여관으로 단순히 알고 있으나 사관과 여관은 다르다. 여관(旅館)은 여행하는 손님을 먹여주고 재워주기 위하여 장기 투숙할 수 있도록 지은 집이고, 사관(舍館)은 여관과 달리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이 와서 숙박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 임시로 많은 사람이 숙박할 수 있도록 지은 가건물을 사관(舍館)이라고 한다.

베들레헴은 다윗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베들레헴은 불과 20여 세대 안쪽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객지에 나간 사람들이 찾아올 사람들도 당연히 많은 숫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호적을 하자면 고향을 떠나서 당시에 살고 있던 곳의 주소와 가족의 성명 생년월일만 기재하여 제출하면 호적 신고가 간단하게 끝이 나는 것인데 왜 임시 거처인 사관(舍館)까지 지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왔다면 당연히 베들레헴에 친척이 있을 것이고 친척 집에 하룻밤 머물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관(舍館)까지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단순하게 호적 신고만 한다면 굳이 숙박을 하지 아니하여도 잠시 들렀다가 갈 수 있는데 호적을 하려고 오는 사람들 때문에 사관(舍館)까지 지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 사관(임시 거처)까지 있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왔다면 이는 반드시 호적신고 외에 다른 큰 행사가 겸하여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 단순히 호적 신고만 하려고 전국 백성이 많이 이동하는 것보다 전국 백성이 이동할 수 밖에 없는 때를 겸하여 호적신고를 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유대인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 행사를 겸하여 호적 신고를 한 것이 분명하다.

유월절 행사는 전 국민이 이동하여 일주일 동안 행사를 하므로 숙박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유월절 행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雲集) 하게 되어 사관(舍館)을 지을 필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성경에 기록된 유월절 행사를 확인하면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하35:7-9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하나님의 전을 주장하는 자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에게 양 이천 육백과 수소 삼백을 유월절 제물로 주었고 또 레위 사람의 두목들 곧 고나냐와 그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더라

요시아 왕 때의 유월절 행사를 기술한 말씀이다. 왕의 소유 중에서 양과 염소 30,000과 수소 3,000을 유월절 제물로 주었다. 즉 양 30,000마리에 수소 3,000마리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제사장들에게는 양 2,600과 수소 300을 주었으며 레위 두목들에게는 양 5,000과 수소 500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를 도합 하면 양이 37,600마리요, 수소 3,800마리나 되었다.

이 정도면 서울 1,200만 명이 다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읍이 50만 명도 되지 아니하였는데 이 엄청난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행사를 위하여 온 것이다. 얼마나 큰 행사인가를 감히 상상할 수 있다.

유월절 행사가 아니면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까지 사관(舍館)을 별도로 지을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유월절 행사와 호적을 하는 일이 겹치기 행사가 되다 보니 임시 숙박시설인 사관(舍館)까지 지을 필요가 있었고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행사로 사람이 많이 모여 임시 거처인 사관(舍館)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었던 것이다. 임시 숙박시설인 사관(舍館)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유월절과 예수 성탄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 성탄은 유월절과 상관이 있다는 것이 성경으로 확인된다.

눅2:41-42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 갔다가

기록된 말씀에서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수의 부모가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하였고 예수가 열두 살이 될 때에 유월절이라고 하였으므로 예수의 나이가 12살 될 때가 유월절이면 10살이 될 때도 유월절이요, 한 살 되었을 때도 유월절인 것이 확실하다. 이로써 예수의 성탄(탄생일)은 유월절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예수의 부활 또한 유월절과 관계가 있다.

예수의 부활하신 날은 예수님 유월절의 첫날 양 잡는 날에(막 14:12~16)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유월절 성만찬을 하셨고(눅 22:7~13, 눅 22:19~20) 그날 저녁 악당들에게 감람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눅 22:44~46) 악당들에게 붙들려 가서 재판을 받을 때,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때에 새벽닭이 울었으며, 이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수제자 베드로는 통곡하였고(눅 22:60~62), 이로써 유월절 4월 14일 하루를 지났고, 다음날 4월 15일 빌라도에 의하여 사형선고를 받고서 인류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고 3일 만인 15, 16, 17일에 부활하신 날이 제2의 탄생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친히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것은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성탄도, 부활도 유월절과 상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친히 유월절 양이 되셨고 운명 하신지(눅 23:46)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서 창세부터 감추인 비밀 중의 비밀인 십자가의 비밀이(고전 2:7~8) 십자가로 대승리를 하신 것이다(골 2:14~15).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유월절과 떨어질 수 없는 깊고 오묘하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한 관계가 있는 비밀로 예수 성탄과 함께 유월절과 관계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은 예수님이 다시 사신 날로서 제2의 탄생일이다. 제2의 탄생일이 곧 제1의 탄생일(베들레헴 성탄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탄과 부활은 유월절을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가 맺어져 있다는 현실에 대하여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는 알파(성탄)와 오메가(부활)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는(계 22:13) 우리 주님이 성탄 하신 그날이 알파요 처음이요, 부활하신 그 날이 오메가의 날이다.
알파와 오메가로서 부활하신 그날이 제2성탄 하신 날이요 성탄 하신 그날이 부활하신 날이라고 감히 생각하여 보았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그러므로 알파적인 성탄의 날이 4월 중순이요, 오메가적인 부활의 날이 4월 17일로서 4월 중순이다. 주와 합한 하나님의 뜻으로서(고전 6:17)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는 한 날이 아닌가 감히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하여 보았다.

확실한 것은 포도나무가 꽃이 피고 무화가가 익은 때 어린 반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고(아2:11~13)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위하여 결례(潔禮)의 날에 어린 반구 새 둘과 제비 두마리로 제사한 것이 확실하므로 (눅2:21~24) 현재의 12월 25일은 예수 성탄일이 될 수 없다. 12월 25일이 예수 성탄일이라면 결례(潔禮)의 날은 33일 후이므로 1월 28일이 된다. 1월 28일에는 전국 어디에도 반구(斑鳩) 새가 없으므로 반구 새로 제사 할 수 없다.

1,700년 동안 1월 6일을 예수 성탄일로 예배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탄일도 말이 안된다. 1월 6일이 성탄일이면 결례(潔禮)의 날은 2월 9일이 된다. 이 날도 이스라엘 땅에는 반구(斑鳩) 새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반구 새로 제사할 수 없다.

12월 25일은 “동지제”로 우상에게 경배하는 민속적인 농신제의 날을 예수 성탄일로 혼합시킨 우상의 날이다.

프랑스에서는 성탄절을 “노엘”이라고 하는데 “노엘”은 농신(農神) 곧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우상 신의 이름인 “노엘”을 예수 성탄으로 끌고와서 예수 성탄과 “노엘”이라는 농신을 혼합시켜서 기독교화 하고자 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성탄을 “봐이나흐프” 라고 한다. “봐이나흐프”역시 우상신인 농신(農神)의 이름을 따와서 예수 성탄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기독교와 동지제, 농신을 혼합시킨 종교가 유럽 기독교이다. 그러므로 유럽의 기독교가 다 망한 것이다.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의와 불법”이 하나 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우상)”이 조화 될 수 없고 “성전과 우상”이 일치 될 수가 없다. 농신(農神)의 이름이 어찌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탄과 일치될 수가 있겠는가? 12월 25일 “동지제”를 위한 우상의 날에서 벗어나서 예수 성탄하신 때(4월 중순) 예수 성탄을 찬양하는 거룩한 성탄절을 4월의 좋은 계절에 지키는 세계적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예수 성탄하신 성스러운 날을 우상신의 이름과 겸하여 찬양할 수 없다. 예수 성탄 하신 날에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하나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