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구원의 길 대로
본문말씀 : 이사야 35장 1~10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늘 여러분에게 하는 말씀이지만 성경은 암호문,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뱀에게 속한(마23:33) 무리들은 천국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이므로 그들이 들어도 보고 알 수 없도록(마 13:10~15) 성경이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봐서는 성경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정한 때까지 감춰두기 위해서(요16:25, 단12:4) 하나님께서 비유와 비사와 상징으로 기록해 놓은 하늘의 비밀문서라는 것입니다(계5:1~3).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금이나 보석 같은 것들이 보물이 되겠지만 믿는 자에게 가장 값진 것은(골 2:2~3)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로서 인간의 몸이 장생불사(長生不死) 한다든지(고전 15:42~54) 혹은 영생하는 길입니다(요17:3). 이것이 최고의 비밀이요, 이보다 더 큰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다양한 방법의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사야 35장 1~10절까지의 내용 전체가 하나의 뜻에 의해서 조립된 말씀입니다(사34:16).
시계의 수많은 부속들을 풀어 놓으면 많지만 시침과 분침을 돌려서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인데 시계 부속이 아무리 잘 조립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시계의 눈이 되는 시계의 침이 없다면 그 시계가 아무리 정확하게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 숨어 있는 시계의 눈이 되는 침과 같이 아주 꼭 필요한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말씀의 꼴이(요10:9)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1:3~4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고 철없이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범죄 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부패한 자들을 다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뿔로 떠받는 힘 센 소라도 주인을 뿔로 떠받거나 해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짐승도 자기 주인을 아는 것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주인이 밖에서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고 어깨까지 매달립니다. 나귀는 주인이 친구 집에도 가고 친척 집에도 가기 때문에 주인이 다니는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주인이 무엇을 해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주인의 구유를 안다고 했습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지 한탄하시고 행악의 종자가 된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말씀인 것입니다(사1:3~6).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상고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실 대로의 길을(사35:8) 발견하고 영생의 길을 발견하는(사35:9~10) 여러분 되시기를 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구원의 길을 좁은 길로 알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좁은 길은 발람이 육신의 영광을 위하여 찾아가는 막다른 길에서 심판의 하늘사자가 길을 막기 위하여 칼을 들고 있는 죽음의 길이 좁은 길입니다(민22:21~33).
그래서 찬송가에 기록된 것과 마찬가지로“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성령의 길을 가는 사람이 좁은 길을 가면서 밤낮 기뻐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령의 길은 기록된 말씀과 같이(사35:8~10) 좁은 길이 아니라 대로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좁은 길은 생명을 위협하는 뱀과 독사가(마23:33, 거짓 선지자) 나오기 때문에 가는 길이 험난하고 힘듭니다. 좁은 길은 들길이요, 손잡고 같이 갈 수 없는 산길이고 들길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좁은 길은 가인의 길, 발람의 길로서 고라의 패역을 받은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한다고 하면서 매일 먹고 살기 힘들고, 사업도 되지 않고 건강도 좋지 않아서 매일 아프고 하는 좁은 길이 기쁘고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로의 길이 열리고, 사업도 잘되고, 건강도 좋고, 가족들이 다 화평하고 편안해야 그것이 대로의 길이요 축복의 길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좁은 길이 굳이 좋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한다(거짓말)고 찬양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한 길이라면 천국 가는 길이요 대로의 길이 열려야지 좁은 길이 열리면 되겠습니까? 좁은 길을 가다보면 길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좁은 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마 7:13).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길이 넓고 찾는 이가 많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하였습니다(마7:13~14).
사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구원의 길은 좁은 길이 아니라 좁은 문입니다. 광야라는 것은 사람이 저 끝에 서 있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땅을 광야라고 합니다. 아득하게 넓은 들판이 기름진 땅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그것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한없이 넓고 거친 황막(荒漠)한 사막이라는 것이며 메마른 땅이라는 것입니다.
아득하게 넓은 들판이 메마른 땅이 되었으면 얼마나 황막(荒漠)한 땅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심성이 사막화 된 자들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 광야의 메마른 땅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니 옥토밭으로(마13:23, 렘48:33) 바꿔진 것입니다.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라는 말씀은 땅은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밭에 있는 곡식이 잘 되었을 때에 기뻐하는 자는 그 풍년이 된 밭에 농사를 짓는 큰 기쁨이 넘치는 사명자 농부입니다.
백합화 향기는 바람이 불면 4km까지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백합화(장미, 사35:1)로 비유했습니다. 찬송가에도“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식물로는 백합으로 비유했고, 천체로는 새벽별로(계22:16) 비유했고, 동물로는 어린양으로(요1:29, 고전 5:7) 비유했습니다. 땅이 즐거워하고 사막이 백합화로 바뀌었다면(사35:1) 황무지가 옥토밭으로 바뀌어진 줄로 믿습니다.
아주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너무나 풍성하게 넘치는 축복을 받아서(겔34:26) 아주 부하고 넉넉해서 그 넉넉함을 성도들에게 향기로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부자가(골2:2~3) 된 것이(신28:2~6) 바로 사막의 심령에서 땅이 행복하고 기뻐하고 백합화가 핀 신앙이요 광야의 메마른 땅이 기뻐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사 35:1).
광야라는 것은 많은 풀들이 있고 잡초가 무성한 곳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농사짓지 않는 광야의 메마른 잡초가 있는 곳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마23:33) 바로 앉았고 거기에는 전갈과(계9:5) 무서운 짐승들이 많이 있습니다(계13:15~16).
그러나 농사를 짓는 농부가(요15:1) 왕래하게 되면 그런 뱀이라든지 독사라든지 이런 것이 다 자동으로 제거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이 대자연의 변화를 비유해서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대로의 길로 비유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조시대 때에 우리 인간들의 생활과 오늘 현 세대의 생활을 비교해 본다면 그 때는 도로교통이 발전된 것이 아니라 전부 걸어 다니는 시대라서 전라도에 풍년이 지고 경상도에 흉년이 졌다하면 풍년 진 곳에서 쌀을 가져오는 동안에 다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됩니다.
바다가 멀리 있고 내륙이 된 안동 땅에 간 고등어가 유명한데 그것을 갖고 오는 동안에 생선이 다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가진 핸드폰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통화를 다하고 수천 수만리에 있는 사람과 얼굴과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 온 세계에 일어난 사건을 순식간에 다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불과 50년 전과 비하여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하는 시간이 많이 있었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세상이 새롭게 되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은 없던 세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있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지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될 때가 되면 그 때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상에서 한 번 더 좋은 세상으로 이 세상이 새롭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물리학자가 쓴 책을 보니 이십 년 안에 인간의 장기를 만들어서 전부 다 교체하고 장기 파는 은행이 있어서 간이 안 좋은 사람은 간을 사서 떼어다 붙이고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은 심장을 떼어다 붙이고 이십 년 안에 그런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가 만약에 오게 되면 사람이 아무리 못 살아도 백세 이상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말씀에 광야의 저 아득하게 보이는 메마른 땅이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같이 피어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축소된 말씀으로 기록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현세를 보더라도 오십 년 전에 비한다면 세상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 때에는 전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한 마을에서 한 집이나 두 집 빼놓고는 음력설이 되면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마을 사람이 오늘에 비하면 전부 거지같았습니다.
어릴 때에 알고 있는 일인데 천 평 되는 다섯 마지기 논을 기근 때에 쌀 세가마하고 바꿨습니다. 옛날에는 쌀 세가마가 아니라 벼 세가마하고 천 평 땅과 바꾸어 빼앗아가는 악독한 지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하여 벼 몇 가마니에 땅을 빼앗긴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전부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쌀 한공기만 있으면 나물로 죽을 만들어서 다섯 식구가 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을 끓여 먹고, 콩나물밥을 만들어서 먹고, 나물밥을 만들어 먹고 그렇게 살았던 시대에 제가 살았습니다. 오늘같이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에 비한다면 지금은 모두가 부자가 된 나라입니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한 시대입니다.
서울에서 출세하여 살이 쪄서 배가 불룩해 가지고 온 사람을 보면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부러워하였습니다.“서울 가서 배 나온거 보니까 저 사람 돈 많이 벌은 모양이네. 사장님인가보다”하고 무조건 배나온 사람만 보면 부자라고 먼저 인사하고 절을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엔 배 나온 사람 보면 천하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세월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 때에 비한다면 오늘날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새 세상이 된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새 세상이 현재에 있는 세상에서 더 새롭게 된다면 어떤 세계가 벌어지겠습니까?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지상낙원은 엉뚱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연장으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새롭게 될 때에 인자되신 예수님이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다고 한 것입니다(마 19:28).
사51: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황무지를“에덴”처럼 만들고 사막을 여호와“동산”같게 한다고 하였으니 에덴 같고 동산 같게 된 것은 에덴동산인 줄로 믿습니다. 에덴동산에 기뻐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넓은 광야의 사막이 하나님의 동산과 같이 되었으니 얼마나 살기 좋은 새로운 세상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없고 무병장수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면 그 곳이 낙원인 것입니다.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땅이 기뻐하여 백합화같이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사55: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산들의 나무가 손바닥을 치리라고 하였는데 나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을 때에는 찬송에“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 울려 주 예수 은총을 찬송하네”하니까 깊은 산골짜기에서 큰 소리로 찬송을 하면 산에 메아리가 들려서 서로 울리게 되는데 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서 소리가 나는 그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무가 손바닥을 치는 것이 맞습니다.
렘5:14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나무라 하였으니 나무가 손바닥 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손바닥을 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이 자연을 들어서 비유했으니 이 비밀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백합화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것은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즐거워서 활짝 핀 그 기쁨의 얼굴이 백합화같이 즐거워하는 것은 건강과 행복이 넘치는 장수부귀를 받은(잠3:16~17) 많은 사람을 비유한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기록된 말씀에서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한 것은 실상으로 레바논에는 백향목 나무들이 꽉 차 있습니다.
겔31:3 볼찌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레바논의 백향목은 가지가 25m나 뻗습니다. 이쪽, 저쪽으로 한 나무 가지가 50m 뻗어서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의 뿌리가 강까지 뻗고 12명이 손을 잡아서 둘러 맬 수 있는 큰 나무입니다. 이러한 백향목의 향기가 얼마나 짙은지 백향목 나무는 벌레도 먹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메마른 심령들이 백합화 같이 핀 자들은 레바논의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한 것은 그 만큼 백향목이 된 사람은 든든하고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이(사65:22) 그런 나무가 수천 년, 수백 년 산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바호밥 나무는 오천 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 나무속에는 물통이 있어서 기근시대에도 잘 자란다고 합니다. 바호밥 나무에 큰 구멍을 뚫어서 도로가 되어 차들이 지나기도 하고 얼마나 큰지 나무에 구멍을 뚫어서 사람도 산다고 합니다.
나무는 성경에 전부 사람으로(렘5:14) 비유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 이사야 31장 3절에 앗수르 사람은 레바논 백향목, 이사야 5장 7절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기록되었듯이 성경에는 사람을 나무, 꽃, 풀로 비유했습니다.
레바논의 영광이라고 한 것은 가물고 메마른 사막과 광야가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아주 강한 자들로 무병장수하여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한 자인가 하면 죽을 수 없는 그런 나무 사람(고전 15:54)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바논의 영광입니다.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갈멜산은 산의 높이가 한 540m 되는데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응답받은 산입니다. 온 천지가 3년 반 동안 기근이 들어서 물 한 모금 찾는 것이 피 한 방울과 같고, 빵 한 조각이 살점과 같은 그 기근시대에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의 기근으로 왕도 지치고, 백성도 지쳤을 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대면하여 이김으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서 전부 강가에서 처형하여 없애버리고 그 때에 엘리야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저 멀리 손바닥만 한 구름이 떠오르더니 그것이 점점 큰 구름이 되고 나중에는 시커먼 구름이 되더니 소낙비가 쏟아지는데 3년 반 동안 기근이 든 가문 땅에 소낙비가 쏟아지니까 온 백성들이 나와서 하늘을 보고 울며 하나님께 찬양하고 비 맞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이 곧 광야에 메마른 땅이 기뻐한다는 말이나 레바논의 영광이 있다는 말이나 갈멜산에 엘리야 기도의 응답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는 말이나 같은 뜻입니다.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샤론은 헐몬산에서 눈이 녹아서 큰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차고 맑은 물이 남북으로 80km가 되고 동서로 90km가 되는 아주 비옥한 평야로 내려갑니다. 이것이 헐몬산에 흐르는 물로 봄에는 80km, 90km 흘러내리는 넓은 들판에 이름 없는 꽃들이 황홀하도록 가득하게 피는 것입니다.
마치 화원과 같이 아름답게 핀 샤론의 꽃들은 꿈의 평야입니다. 꽃 한 송이가 사람 한 사람으로 볼 때에 많은 사람들의 웃음꽃이 필 줄로 믿습니다.
지상낙원이 샤론의 아름다운 평야와 같이 살기 좋은 새로운 세상으로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빙자해서 비유했으니 완전히 이 글을 읽어 볼 때는 이사야 35장 말씀이 시적인 글이라는 것입니다. 읽어보면서 샤론이 뭔지, 레바논이 뭔지, 갈멜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무슨 재미로 성경을 읽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그것들이’는 레바논과, 갈멜을 의미하며 그들이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는 것이며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 아름다운 사람은 얼굴이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은 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예쁜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제일 예쁩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기사이적을 많이 행하던 곳에서“예수를 뭐라고 하더냐?”라고 제자들에게 물어 보니“엘리야 같은 선지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과 같은 자라고 합니다.”
베드로에게“너는 그럼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그러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서“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천국열쇠를“주리니”했으니까 준 것입니까? 안 준 것입니까?‘줄 것이다’라고 한 것이 아니고‘주리니’했으니까 천국열쇠를 즉시 준 것이 아닙니다. 천국열쇠를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 가보면 베드로의 석상이 있고, 베드로가 열쇠를 두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 했으니까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에 베드로에게 주었다면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가지고 갔는지 어디 숨겨 놓고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갔다면 우리는 천국에 가기 힘들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찾을 필요 없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천국열쇠를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전부 성경은 비유로 기록 되었고 비유로 기록된 말씀을 비유로만 알면 성경의 참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광야의 심령이 백합화같이 장미꽃같이 아름답게 핀 자들은 부러진 다리가 20대 건강함을 찾은 것 같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35:4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이 지금 너하고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말라 네 원수가 있으면 내가 보복하고 원수 갚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신만만하고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든든한 배경이요 힘입니다.
사35:5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는 어느 때인가 하면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고 샤론의 아름다운 넓은 들판에 전부 이름 없는 꽃들이 꽉 차 있는‘그때’이며 광야와 메마른 땅과 같은 신앙이 샤론의 아름다움으로 변화는 그 때입니다.
사35:5~6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면 소경의 눈이 열리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약한 손이 강하게 되고, 떨리는 다리가 강하게 되고,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뛰고, 벙어리의 혀가 노래하는 그런 기적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준다는 것이며 환자 되었던 자가 강건한 사람으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사람이 기쁜 말을 해도 기쁜 표정이 없고 욕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무뚝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쁨이 없는 사람입니다. 살인자의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사막과 같은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광야는 실상의 광야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광야 된 심령에 생명수의 강이 흘러내리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새 노래에도“사막 같은 내 맘에도 생명수가 솟아나네. 기쁘고 기쁘다 하늘나라 내 것일세”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면 하늘나라가 자기 것이 됩니다. 천국을 가지 않아도 마음에 하늘나라가 오는 것입니다(눅 17:21).
사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원천(源泉=샘물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뜨거운 사막이 원천으로 변하는 것은 지옥 같은 땅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사막은 50도로 모래알이 뜨끈뜨끈합니다. 태양열이 한 40도, 50도 되면 얼마나 뜨겁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35도 되는 모래 속에 달걀을 묻으면 익을 것입니다. 그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원천은 시원한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랑(豺狼=큰 뱀, 재칼, 승냥이와 이리 등) 곧 사나운 짐승이 눕던 곳에는 풀과 갈대와 부들(꼴풀)이 날 것이며 라고 한 것은 구원의 날에 큰 변화를 상징한 것으로서 완전히 이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광야와 사막 같은 쓸모없는 땅이 낙원이 되듯 죄악 되고 더러운 세상에 새 세상이 올 것을 비유로 해 놓았으니 이 와 같이 설교할 것을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엄청난 비유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재미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사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기록된 말씀에서“거기”라는 곳은 소경의 눈이 밝아지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벙어리가 노래하는 것이 곧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는 것과 같은 그 곳을“거기”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구원의 큰 길, 대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소경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영안이 열리고 성경의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사29:9~10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말세에 선지자로 나온 자들의 대부분이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경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성경을 볼 때 성경에 깊이 숨겨져 있는 영안의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희 교회에 와서 이 말씀을 듣고 영안(靈眼)의 눈이 안 열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 열렸습니다.
눈이 열리고 말씀을 들었으니 이어서 귀가 열린 줄로 믿습니다. 벙어리의 혀가 노래한다는 것은 말씀을 깨달은 지혜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 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혜의 입이 열려서 성경을 잘 증거하고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주는 자를 비유하여 벙어리가 노래한다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만 다녀도 마음의 깨달음이 생길 때에 입이 열려 가지고 성경이 입에서 잘 나오니까“당신 언제 신학했습니까?”라고 합니다. 이렇게 입이 순식간에 열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광야의 심령에 기쁨이 충만하고, 사막의 심령에 백합화가 핀 자에 대하여 벙어리의 혀가 노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언의 말씀을 잘 증거하고, 성경을 보니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영의 귀가 열리는 그 곳에서 말씀의 큰 깨달음이 있는 자의 마음속에 천국의 대로가 영육(靈肉)간에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10년, 20년 교회를 다녔을지라도 성경을 봐도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뭘 들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소경이었던 자들이 영안이 열려서 천국의 대로가 열린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외워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눈은 눈이 있어도 소경입니다. 그런 곳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대로의 길이 없고 좁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좁은 길이 있어서“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이라는 비성경적인 엉터리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넓은 길을 찾았으니 대로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넓은 길은 고속도로 같은 대로입니다. 대로의 길은 짐승이 다니지 못합니다. 짐승은 사단을 비유한 것입니다. 사자나 짐승이나 뱀이 고속도로에 다니게 되면 그냥 밟혀서 깔려 죽을 것입니다. 짐승들은 절대로 대로의 길을 다니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범죄자, 살인자들과 사기꾼 전과자들은 당당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들이기 때문입니다.
사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왜 대로의 길이 거룩한 길인가. 거룩한 자가 가면 거룩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이나 도망자들은 큰길, 대로로 다니면 잡히게 됩니다. 좁은 길로 가야합니다. 도둑놈이 가면 도둑 길이 되는 것이고 짐승이 다니면 짐승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이 오고 자기의 생명이 될 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길입니다.
영안이 열리고, 귀가 들리고, 닫혔던 입이 말을 할 줄 알고 성경을 증거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생활 삼십 년 한 사람에게 말씀하나 증거 해 보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 입이 닫힌 벙어리입니다. 성경을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소경들입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기는커녕 세상 이야기 하라고 하면 줄줄 나와도 하나님 말씀의 생수의 강은 전혀 흐르지 않습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는 사람은 한 말씀하고 나면 또 한 말씀이 뒤따라가고 또 그 뒤에 한 말씀이 또 다시 뒤따라가서 말씀이 쭉 이어지는 것이 생수의 강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대로의 길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은 말씀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성경이 닫힌 문서가 된 자들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성경의 깊은 말씀들이 열린 문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기록된 말씀에서 깨끗지 못한 자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한 자요 깨끗한 흰 옷을 입은 자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자들입니다(계3:4). 깨끗한 자만이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입니다(요7:38). 물이 더러우면 생수의 강이 될 수 없습니다. 물이라는 것은 말이 물입니다. 말하는 입이 더러운 자를 말합니다.
“서울 가더니 그 집 아들이 말하는 것이 못 됐구만, 물이 잘못 들었네”라고 하는 것처럼 친구 잘못 사귀어서 물 잘못 들었다고 합니다.
말에 대한 책임과 행함이 없으므로 모든 일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흙탕물의 입을 가진 자들입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사람은 입에서 맑은 물의 말씀이 나옵니다. 깨끗하고 정직한 말이 나옵니다. 자기가 한 말에 어떠한 경우라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생수의 말씀을 가진 사람입니다.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물은 이미 구정물입니다. 어린아이는 그 구정물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고 어른은 병이 나서 체하거나 소화불량이 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 가면 길표가 있습니다. 서울 120km, 서울 80km, 서울 20km, 서울 10km …. 이처럼 천국 가는 사람은 신앙의 이정표 곧 길표가 있어야 합니다. 산길이나 들길을 가는 사람은 길표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 믿기 시작해서 30년 믿었는데 천국 가는 신앙이 천국의 중간쯤 왔는지 다 와 가는지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이정표가 없는 신앙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모르는 것만 배웠습니다.
“오늘 믿고 또 의지하며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이라고 해야 하는데 성경에 관하여 대부분“난 알 수 없다”합니다. 알 수 없는 자가 아니라 알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깨달아서 천국의 소망이 넘치는 자만이 천국의 대로, 구원의 길표가 있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예를 들어서 죽은 사람이 언제 천당 가는지 삼우제 지내고 가는지 심판 때 천국 가는지 라고 묻는다면 천국의 길표가 없는 자는 답변할 수가 없습니다.
고전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말씀에서 육신은 멸(滅)하고 우리의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이 모두가 다 천당 갔다고 거짓말합니다.
주 예수의 날이 오기 전까지는 영혼구원이 없습니다. 죽은 자들의 구원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의 날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고 운명하신 분들은(고전15:20) 잠자고 있는 상태입니다(행7:59~60).
사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우매한 자(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자), 어리석은 자(지능이 약하고 생각이 부족한 자)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대로의 길을 가지 못할 것입니다. 대로의 길은 사리에 밝고 사고력이 풍성한 지혜자 들로서 앞길이 훤히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린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사막이 변하여 원천이 된 자들이고 기록된 말씀과 같이 메마른 땅이 기뻐하고 사막 같은 심령이 백합화같이 큰 깨달음의 꽃이 활짝 피어난 자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자들 앞에 천국의 길, 대로의 길이 활짝 열린 줄로 믿습니다.
사35: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기록된 말씀에서 대로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거기는 사자가 없고」라고 한 것은 악마의 사자, 마귀 새끼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바리새인 같은 뱀도 없고(마23:33). 독사도 없고(신32:33), 전갈도 없는데(계9:5) 어떻게 감히 대로의 길에 시랑(豺狼)과 같은 자들이 거룩한 곳에 올라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뱀, 사단은 진리 말씀이 있는 대로의 길을 지나가면 차량에 깔려 죽을 지경이니 만날 수도 없습니다. 뱀이 다니는 좁은 길과 구원자가 다니는 대로의 길이 서로 다릅니다.
산에도 보면 다람쥐가 다니는 길이 있고 뱀이 다니는 길이 있고, 토끼가 다니는 길이 있고 다 있는데 늑대가 가는 길에 토끼가 다니면 잡아먹힙니다.
바다에 가보면 고래는 고래끼리 놀고 꽁치는 꽁치 떼끼리 놀지 꽁치 떼가 고래하고 같이 놀지는 않습니다. 어항에다 여러 종류의 고기를 갖다 놓고 보면 피라미같이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놀고, 큰 것은 큰 것끼리 놉니다.
사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이 갈 수 있는 대로의 길, 영영한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슬픔과 탄식이 없는 구원의 대로 길에 행복이 넘치는 이러한 축복이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