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25. 예루살렘의 강림

본문말씀 : 계시록 21장 1~7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기록된 말씀에서 강림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며 성령이 강림하면 성령이 내려온다. 예수님이 강림하면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신다. 이런 뜻이 됩니다.

강림(降臨)이라는 것은 내릴 강(降), 임할 림(臨)자로서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곧 예루살렘 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성이라는 것은 성읍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예루살렘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223장에 보면 “아름다운 그 곳에서 구속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이란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그 새 예루살렘, 아름다운 보석성에 들어가서 우리가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현실이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도성 곧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될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에 예루살렘은 실상의 도성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도성을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예루살렘 도성에 대해서 사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 싶어서 지금 이런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모든 증거는 제 입술에서 나가지만 성경을 근거로 한 것 외에 제 생각이나 어떤 유명한 자의 말을 빌어서 쓴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루살렘의 강림에 관해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고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강림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 도성(都城)은 도시를 말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내려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예루살렘은 스가랴 8장 3절 말씀에 보면 진리의 성읍입니다.

슥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성읍은 성읍인데 진리로써 성읍을 이룬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말씀이라고 하였으므로(요17:17)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한다는 뜻입니다.

실상으로 하늘에 예루살렘 성읍의 도시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진리가 있는 그 성읍,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읍 곧 많은 신앙인이 있는 곳에 영이 되신 하나님께서 임재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잘 알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지명적인 예루살렘이 아니고 진리의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는데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이란 말은 진리의 말씀을 받은 차원 높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성읍(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성읍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무리의 단체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에 관해서 처음 오신 분들은 어려우실지 모르겠지만 잘 들어 보시면 말씀이 이해하기 쉽고 아주 달고 오묘합니다. 마음에 달고 오묘한 말씀은 아무리 씹어 먹고 씹어 먹어도 달고 오묘한 말씀 신묘막측한 말씀의 맛이 일평생 동안 끝도 한도 없이 느껴집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매일 보고 또 보아도 좋은 것과 같습니다.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말씀의 예루살렘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므로 땅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어머니라 하는 것은 여성을 상징합니다. 진리로서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하였습니다(약1:18).

그러므로 진리가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빚어서(창2:7)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영혼은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고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갈4:27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한 것은 아기를 임신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고 하였는데 임신하지 못한 자가 무엇이 좋다고 즐거워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치 외동아들 집안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쫓겨나게 된 것과 같이 안타까이 아들 낳기를 기다리는 시부모가 있는데 잉태하지 못한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왜 즐거워하라고 하였겠습니까? 구로(劬勞)한다는 것은 힘써 아이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홀로 사는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는 말은 말이 되지 않지만 말이 됩니다. 제가 짧게 비유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들 하나가 남의 열 자식 부럽지 않다.” 라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은 출세한 아들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벼 이삭 알맹이 하나가 쭉정이 백 가마 부럽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왜 이런 말이 나오는가 하면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몸종 하갈로부터 나온 아들이었는데 아브람이 86세 때에 낳은 아들입니다. 하갈로부터 나온 아들은 육체관계로 낳은 동물적인 아들입니다. 그러나 본 부인 사라로부터 나온 아들은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십사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아들은 경수가 끊어진 구십 세 노인 사라가 하나님의 언약으로 낳은 기적의 아들입니다. 이는 사라의 죽은 태를 하나님이 살려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아들과 같습니다.

사라의 나이가 구십 세가 되어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포기한 상태에서 사라는 남편에게 “내 몸종 하갈을 첩으로 삼으십시오.” 라고 하였고, 몸종 하갈이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니까 안주인같이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몸종에게 남편을 빼앗긴 것입니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언제는 네 종이 아니더냐, 네 맘대로 하라.” 하므로 임신한 여인을 아기를 낳기 전에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술길 샘물 곁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지시를 받고 다시 아브람에게 와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지금의 저 아랍족속의 조상입니다. 이스마엘 족속이 자녀를 낳으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녀를 낳을 것을 말했습니다(창16:1~11).

아브람이 나이가 구십구 세이고 아내의 나이가 구십 세로서 자식 낳는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네 아내가 열국의 어미가 될지라(창17:1~16)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 이라(창17:19)고 하였을 때에 하갈로 나온 이스마엘은 십삼 세 때였습니다(창17:25).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을 낳아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창21:2~3).

갈4:22~24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기록된 말씀에서 육체를 따라 났다는 것은 남녀의 육체관계로 자식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있고 축복이 있어서 낳은 것이 아니라 육신의 관계로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아브람”으로 있을 때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종이 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낳았지만 아브람의 친자로 여김을 받지 못하고 종으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삭을 낳을 때는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삭이라고 하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아들 이삭을 허락할 때는 아브람은 새 이름을 받아서 ‘아브라함’으로 있을 때에 나이가 백세가 됐는데 무슨 자식을 낳겠습니까? 라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 17:19)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약속을 하시기 전에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창17:5).

아브람으로 있을 때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아브라함이라는 즉 새 이름을 얻었을 때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때 있었던 역사인데 이것을 신약시대에 와서 아브라함의 두 여인을 비유하여 두 언약(갈4:22~24) 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8절 말씀을 보게 되면 네가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고 말씀 했고, 19절 말씀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갈4:22~23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했는데 사라는 아들을 낳을 수가 없는 석녀(石女)입니다. 태가 말라붙어서 다시는 자식을 낳을 수가 없는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나온 자식이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낳은 자식이기에 약속의 자녀라고 한 것입니다.

약속으로 낳은 자녀를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낳았다고 했습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어느 집에 가던지 일하면 일하는 시간이 있고 퇴근하는 시간이 있고 출근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으나 집 주인만이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여주(女主)라고 나옵니다. 여자의 주인, “열국의 어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4:23~25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이삭과 이스마엘을 낳은 두 여자(사라와 하갈)의 비유라고 하였는데 두 여자가 낳은 이스마엘과 이삭은 비유가 아니라 실상으로 존재하였던 자들입니다. 사라와 하갈을 비유니라고 한 것은 사라와 하갈의 살아있는 역사를 비유 삼아 후에 되어 질 일을 말씀한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나온 하갈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도성의 땅을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며 또한 지금 있는 저 중동의 예루살렘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앙인들은 모두가 하갈의 족속이라는 뜻입니다.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땅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친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들 곧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자녀들이(약1:18) 있는 곳을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주의 종이라고 신앙하는 하갈 족속은 땅의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영적 아들들 곧 사라가 낳은 이삭(예수 상징)으로부터 나온 자들을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무리가 살고 있는 거룩한(요17:17) 무리들이 있는 곳을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이고 하갈 같이 주의 종, 말씀의 종, 신유의 종으로 나온 자들은(요15:15) 종으로 낳은 하갈의 자녀들로서 영적인 이스마엘 족속이 된 땅의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영적으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 중에서 종에 속한 자는 땅의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이고, 양자의 영을 받아서(롬8:15) 아들에 속한 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입니다. 이는 “두 언약” 곧 두 여자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생각했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의 어머니라’의 자유자가 누구인지 보겠습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유자인 줄로 믿습니다.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바로 주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자는 바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자이며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남성적인 입장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는 여성적인 입장으로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데로 진리의 성읍이라는 ‘우리’라는 무리는 바로 여자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양 예수의 아내가 혼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아내는 어떤 자인가 보시겠습니다.

계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아내를 보여준다고 하고서 잘생긴 여인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보여준 것입니다.

계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령으로 높은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육신적으로 높은 산에 올라간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높은 산에 올라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어린양 예수의 아내로 비유한 것입니다. 곧 아내를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아내는 어디에 속한 자들인가. 하갈에 속한 자들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종에서 난 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자 곧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한 이삭으로부터 난 자로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자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자들이 곧 영적인 예루살렘, 약속을 받아 나온 자요, 이삭으로부터 나온 자입니다.

다 같은 기독교인들이라도 다 같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온 자라도 종으로 나온 땅에 속한 예루살렘이 있고, 약속으로 나온 하늘에 속한 아들이 있는 것과 같이 오늘날 이 시대에 예루살렘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하고 있는 자들은 종에 속한 자들이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의 어머니라고 한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아내 된 자들은 바로 영적인 예루살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입은 약속의 자녀들 곧 하늘 예루살렘에 속한 거룩한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를 받아(빌3:21) 영적으로 땅에서 이루어질(마6:10) 지상낙원에서 살기 위하여 땅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실상의 하늘 공중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도성이 지구상에 이루어지게 될 때에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을 성경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시면 예루살렘의 하강, 하강(下降)이라는 것은 밑으로 내려온다는 것인데 실상으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도성이 땅으로 실제로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하늘 비밀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이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하늘의 뜻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계 11:15).

노아 홍수 때에 땅과 함께 멸한다고 하였으나(창6:13) 땅은 멸하지 않고 땅(세상)에 속한 자들이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기록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고 하여 실제로 이 지구상의 땅이 없어질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전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였기 때문에 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존(永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이라는 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을 비유한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심판 때에 땅을 멸하리라고 했지만 땅은 지금까지 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고 있습니다(전1:4).

땅이 멸하리라 했으면 멸해야 하는데 노아 홍수 때 땅이 멸한 것이 아니고 땅에 속한 자들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며 하늘에 속한 자들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계21:1).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는 것은 땅에 속한 자들은 노아 때처럼 다 심판을 받아서 없어지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새로운 세상이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마19:28).

완전한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어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심판을 해도 지구는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는 새 세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마19:28). 하나님의 세상으로 바뀌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한 것이고 처음 하늘,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 광야가 에덴 같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 같이 되어(사51:3) 거룩하고 아름다운 지상 낙원이 이루어짐으로써 현재 있는 세상이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리모델링되어 만물을 새롭게 하므로(계21:5)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고 하신 말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준다 하고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으므로(계21:9~10)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어린양 예수의 아내 된 신부의 아름다움으로 비유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적인 입장에 있는 자들로서(고후11:2) 많은 사람이 우러러 보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영광으로 땅을 차지하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한 것을 보니까(계21:2)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은 확실하게 신부를 상징한 줄로 믿습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의 장막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장막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장막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는 지상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 있는 곳에 내려왔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마6:10). 그러므로 사람이 있는 그곳이 곧 하나님의 장막이 되는 것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때문에 인간이 영생하는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령한 자들로 변화되었으므로(고전15:51~54) 사망이 이김에게 삼킨바 되었으므로(고전15:54) 사망이 없으니 애통도 없고 아픈 것이 없으니 병원이 없는 지상낙원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신부 곧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땅으로 내려오니까 이 세상의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것입니다(계21:1).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지구를 포함하여 모든 만물과 산천초목까지도 다 새롭게 변하는 것입니다. 별도의 천국이 지구 외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소유로써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그 때가 바로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새롭게 된다는 것은 없던 세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있는 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진다는 뜻입니다. 그날에 가서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기 때문에 지금 보좌 우편은 예수님의 영광의 보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가서 앉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 라는 말이나 5절 말씀에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는 말은 일치된 말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늙어 병들어서 죽을 사람이 죽지 아니할 사람으로 다시 사망이 없는 사람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가 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과 같이 천체 만물도 다 사람을 위하여 창조 되었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산천도 초목도 전부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으로서 새롭게 되는 새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롬8:20~21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죽고 썩고 없어질 피조물도 단풍지고, 낙엽 떨어지는 것 같이 되지 않고, 죽고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피조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는 해도 해 맑은 해가 될 것이고, 달도 달 밝은 달이 될 것이고, 별도 별 밝은 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게 되면 많은 사람이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 54절의 말씀과 같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하리니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고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어서 홀연 변화의 축복으로 영생을 이루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같이 지상낙원에서 영생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갈4:26~27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도 홀로 있는 자의 자녀가 더 많다는 것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이고, 홀로 사는 자 곧 영적인 사라의 자녀 이삭 하나가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고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이삭 한 사람의 씨는 작지만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같이 많은 숫자의 종과는 안 바꿔 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고 하였습니다(갈4:27).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하는 것은 하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말한 것이요,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하는 것은 땅에 속한 자의 무리들이 있는 땅의 예루살렘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의 대적의 문을 얻는 그 날(창22:17~18) 이 땅 위에서 원수가 발등상이 되고(히10:12~13) 그리스도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지상 천국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