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상수리나무 아래 우상을 묻고 의복을 바꿔라!
본문말씀 : 창세기 35장 1~5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본문 내용은 구약의 역사적인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상관이 있을 때에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말씀이 될 줄로 믿습니다.
복권 추첨이 화면에서 돌아가면 자기가 500원짜리 복권이라도 하나 가지고 있을 때 틀림없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그 복권이 혹시 자기가 당첨이 될까 싶어서 관심 있게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설이든 예언의 말씀이든지 자기와 상관이 되지 않을 때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이 되어 있을 때는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재벌 집에서 아무리 큰 잔치가 있어도 그 재벌집의 아들의 친구라든지 손자와 친구라든지 잘 아는 사이라든지 어떤 관계가 있을 때에 그 잔치 집의 밥맛이 좋고, 또 축복을 해줄 수가 있는 것이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거기 가서 축복한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끊어지지 않는 은혜의 사슬이 되기를 원합니다. 상수리나무에 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잎사귀가 톱날같이 생겼는데 쉽게 설명해서 도토리나무입니다. 참나무라고도 하고 열매가 많이 달리는 그런 나무입니다.
상수리나무는 높이가 약 25m까지 자라는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상수리나무에 관한 비밀은 참 대단합니다. 상수리나무 아래 우상을 묻으라고 했는데 우상은 부처나 동상, 석상 이런 것도 물론 우상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예언적인 우상은 무생물적인 돌이나 철 동상이 아니고 거짓 목자를 보고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사41:21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우상이 어떻게 소송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또 우상이 소송을 일으키면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한 것을 보니까 우상은 실상의 부처나 동상, 석상, 목상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저희 고향에‘계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제가 젊었을 때 거기에서 약 2년 반 동안 특별 수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내려왔다가 저녁에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교회에서 집회 도중에 일어나서 싸우는 것을 보고 싸움을 말리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절은 500년 이상 된 절이었는데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러 올 때 쌀을 가져오면 펴 놓고 조그마한 겨하고 돌이 있으면 부처님이 큰 바위가 있다고 말한다며 쌀을 전부 펴놓고 작은 돌이나 겨가 있는가 하나하나 주워서 공양미를 아주 깨끗하고 정결하게 가져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부처님께 가면서 또 부정한 걸 볼까 싶어서 땅만 쳐다보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에 그렇게 정성을 들여 우상 부처님에게 돈을 많이 갖다 주었는데 500년 동안 스님이 받아먹고 부처가 하는 말이“내게 오는 것은 하나도 없고 주지스님이 공양미와 돈을 다 가져갔다”고 말하며 우상 부처님이 경찰서로 걸어가서 고소나 소송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우상이 소송을 일으킨다고 하였는데(사 41:21)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부처나 동상이 아닙니다.
충청도 어느 지방에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단군신상의 목이 날아가고 없는 것이 여러 번 나타났다고 하는데 정신이상자인 목사가 단군신상의 목을 잘라 없앴던 것입니다. 우상을 타파한다는 이유로 잘랐다는데 단군 신상의 목을 자른다고 우상타파가 됩니까? 성경의 예언적인 우상은 부처나 신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림자적인 형상의 우상입니다. 진짜 우상이 무엇인지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설명을 드리고 오늘 말씀이 이해되기를 원합니다.
사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하나님이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심판하러 오시면 죄인들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떨 수 있으나 절간에 있는 부처나 동상, 석상, 목상이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떨 수는 없습니다. 우상은 바늘로 눈을 찔러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오실 때에 우상이 두려움에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곡괭이 자루로 한 사람에 다섯 대씩 앞에서부터 때리고 나오는데 나는 맞지 않아도 내 순서가 다가오니까 덜덜 떨렸습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심판하니까 애굽인의 마음의 간장이 녹아나듯 떤다고 하였습니다. 실상의 우상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석상, 목상 이런 우상 쪼가리들을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목상이나 석상 같은 실상의 우상이 아닙니다.
사41:29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니라
‘우상은 바람이요’라고 답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우상이 된 바람은 또 무엇인지 보시겠습니다.
렘5:1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선지자는 바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말씀 없는 선지자가 바람 선지자인줄로 믿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거짓 선지자, 말씀 없는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인줄로 믿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바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이것을 연결해 보면 우상은 바람이요 바람은 말씀 없는 선지자라고 하였으므로 말씀 없는 선지자가 우상입니다.
제가 평양에 가 보니까 김일성 동상이 얼마나큰지 3, 4층 높이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큰 동상이 있는데 거기에 많은 주민들이 전부 절하고 꽃다발을 갖다 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김일성 동상이 우상이 아니고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우상입니다.
후세인이 이라크 전쟁에 실패하고 미군이 쳐들어갔을 때에 후세인은 도망가고 후세인 동상을 밧줄로 끌어내는 것을 TV로 봤는데 후세인 동상이 우상이 아니고 진짜 우상이 된 후세인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성경의 최고 악질인 고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나라가 지금 이라크 나라인데 이들의 권세를 이어받은 것이 후세인입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어마어마한 큰 신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전부 훨훨 타는 유황불에 다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후세인과 느브갓네살이 악수하는 사진을 이라크에 대형 그림을 간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TV에서 봤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실상의 우상이 아니라 거짓목자를 비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세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석상이나 목상 같은 우상이 아니라 말하는 우상이 나와서 마지막 때 666수의 짐승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계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이 짐승이란 것은 실상의 짐승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딛1: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사람을 짐승으로 비유했습니다.‘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과 같이 얼굴은 사람의 얼굴인데 마음은 짐승의 마음을 가졌을 때 인면수심이란 말을 씁니다. 사람이 짐승이란 뜻입니다. 종말에는 짐승 사람이 출현하여 악마 사단으로 역사합니다.
마23:32~33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바로 뱀, 독사로 비유한 것이 율법사,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계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무시무시한 환난의 시대가 옵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한 짐승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몇이든지 다 죽이는 짐승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계 13:4~6). 참으로 두려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계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짐승이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짐승이라는 것은 아주 힘이 있고 강한 자입니다. 얼굴은 사람이되 짐승과 같이 이성이 없는 자들로서 살생하는 막가파 같은 자들로서 성경에 짐승의 숫자는 사람의 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상의 우상이 아닌 사람 우상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는 짐승 사람, 악마의 지도자가 666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묻어라」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아들이 교통사고나 불우한 운으로 죽으면 주변사람이 위로할 때“아들을 가슴에 묻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잊어버리라는 얘기입니다.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神)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의복을 바꿔 입으라”고 한 것은 우상을 섬기는 신앙에서 거듭나라는 뜻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상수리나무를 성경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사1: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가나안 땅에 사는 가나안 칠족들이 있었는데 가나안 칠족들은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몰렉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심지어는 작은 사람 모양의 우상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급한 일이 있으면‘신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오늘 불이 있는 대로 지나가니까 무사히 지나가게 하소서’하고 또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이것을‘드라빔’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부적과 같은 우상입니다.
사1: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상수리나무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상수리나무의 열매가 다 떨어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물 없는 동산에 다 바싹 말라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하는 것을 상수리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기는 자들로 비유한 것입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서 몰렉이라는 우상에게 제사 드리는 것은 저주받은 자가 됩니다. 가나안 칠족들은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과 같은 족속들로 가나안은 노아가 저주를 했습니다. 저주 받은 자가 가나안 땅에 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창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가나안이 저주의 이름인줄 모르고 가나안 안경점, 가나안 농군학교, 가나안 제과점 그런 간판들을 많이 붙이는데 가나안은 저주 중에 저주받은 자들로서 상수리나무로 비유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모든 백성들이 상수리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보면 조그마한 밤알같이 생긴 열매에 모자 같은 뚜껑이 붙어 있습니다.
수많은 다산의 열매들이 많이 달려 있기 때문에 거기 가서 기도를 하면 자식을 많이 낳는다고 해서 많은 자식을 얻으려고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사하고 기도를 합니다. 또 몰렉의 신을 믿는 사람은 마을에 무슨 화가 있으면 그 화를 막기 위해서 심지를 뽑아서 해당되는 자식을 산채로 불로 태워서 죽이는 제사를 드립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 가서 그런 무서운 살인을 행하는 것이 바로 저주받을 가나안 족속들이 하는 것입니다.
사1:30~31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삼오라기는 삼베옷을 짤 때에 삼이라는 큰 풀이 1년에 3m에서 5m까지 자라는데 그 잎이 대나무 잎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게 바로 대마초 나무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집 마당에도 많이 있었는데 그 잎이 대마초인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이“저 잎사귀로 담배피면 굉장히 좋대”이들이 그걸 가지고 말려서 피워보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했는데 그것이 대마초인줄 몰랐던 것입니다.
삼 껍질을 벗겨서 여러 겹으로 나누면 실이 됩니다. 그것을 아주 가늘게 쪼개서 이어가지고 삼베 실을 만드는 한 뼘 되는 실 토막을 가리켜서‘삼오라기’라고 합니다.「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라고 한 것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가나안 땅의 사람은 실 끝의 삼오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행위는 불티같아서」나무를 태우면 날라 가는 눈곱만 한 재를 불티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불티같이 날아가는 저주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57: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무당의 아들, 딸을 무녀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무당의 자식은 평생 보는 것이 무당이 칼 가지고 춤추고 귀신 왔다고 절하는 것입니다.
사57: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무당의 자식 주제에, 음녀의 씨종자인 주제에, 기생의 아들이 된 주제에 네가 뭐 할 것이 있다고 희롱하고 욕하는 것이냐고 따지는 말씀입니다.
사57: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그래서 상수리나무 잎이 아주 좋으니까 거기서 음탕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 바위틈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불에 태워 죽이고 자기가 복을 받겠다고 하는 저주의 족속들이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사하는 악마들입니다. 마을에 무슨 재난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제비를 뽑아서 자녀를 죽이고 또 기근이 들면 자녀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제비를 뽑아‘가위 바위 보’하여 오늘은 네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먹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아들을 잡아먹고는 그 다음 자기 아들을 잡아먹을 차례가 되었는데 자기 아들을 내어놓지 않자 재판장한데 고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죄가 상수리나무 아래서 지은 죄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행위로써 짐승도 자기 새끼를 잡아먹지 않는데 짐승보다 못한 악마들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살인적 죄악인가 하는 것입니다.
렘19:9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신28:57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인육(人肉)을 먹는 악마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상수리나무 아래서「몰렉」의 신에게 제사하는 자들입니다.
사57:9~10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아니함은 네 힘이 소성 되었으므로 쇠약하여 가지 아니함이니라
몰렉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입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사 드리면 귀신들린 힘이 오는 것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신들린 사람을 보면 힘이 셉니다. 약한 여자라도 신들린 여자가 붙들고 남자 둘을 휙 밀면 넘어갑니다. 신들린 사람이 힘이 굉장히 센 것을 여러분이 아마 보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나안 칠족의 신목(神木)이 바로 상수리나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짐승 같은 미개인들에게는 신목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가면 신목이 있는데 명절 때가 되면 줄을 쳐 놓고, 테잎을 감아놓고, 솜 같은 것을 묻혀놓고, 기도문을 나무에 걸어놓고, 선왕당 같은데도 그런 나뭇가지를 걸어 놓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마을마다 신목이 다 있었습니다.
찬송가에도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헛되이 나무 밑에 가서 절을 한다는 가사도 있는데 그런 신목입니다. 가나안 칠족은 어떤 족속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신7: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하나님이 일곱 족속을 쫓아 낼 때에 모세에게“너도 그들을 칠 것이니 그들을 진멸해 버리라 그리고 그들은 범죄의 족속, 저주 받은 족속이니 그 족속들과는 아무 언약도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어른이나 아이나 다 죽여 버리고 혼인도 절대로 하지 말아라(신7:1~4)”이것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 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니까 가나안 칠족의 딸들이 얼마나 예쁘고 잘 생겼는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다 미혹당한 것입니다. 아랍 여자들이 가나안 칠족에 해당되는데 얼마나 예쁘고 잘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저주를 내린 것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었는데 가나안 칠족의 여자들과 놀아났습니다. 솔로몬 왕이 가나안 칠족의 헷 여인에게 가면 헷 족속의 섬기는 신을 섬기고, 기르가스 족속의 여인에게 가면 그 족속의 신을 섬기고, 가나안 족속의 여인에게 가면 가나안 족속의 신을 섬기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가나안 족속들은 상수리나무 아래서 우상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호4:13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온갖 죄를 짓고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수리나무 아래서 몰렉의 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이 바로 가나안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때 꼭 상수리나무 아래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다른 나무 밑에 가서 만나지 왜 꼭 상수리나무 밑에서 만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12:6~7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정든 고향을 다 버리고 자기가 섬기던 우상도 다 버리고 즉시 순종해서 가나안 땅으로 간 것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전부 제사 지낼 때 상수리나무 밑에서 제사를 지내자 아브라함도 상수리나무 밑에 간 것입니다. 왜 상수리나무 밑에 가서 제사 드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기고 거기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 흙이나 벽돌로 단을 쌓는데, 사람 가슴 정도의 높이로 쌓아서 거기다가 제물을 얹어놓고 태우기 위해서 단을 쌓는 것입니다.
땅 바닥에 제물을 놓는 것이 아니라 높이 받든다는 뜻에서 제물을 장작더미 위에다 놓고 태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 아래서 단을 쌓았다는 것은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노릇을 한 것입니다.
왜 몰렉의 우상 신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의 행위를 따라서 아브라함이 거기서 단을 쌓았겠는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좀 잘 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의 심판을 할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심판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창18:1~8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그들에게 받쳐 드렸더니 그들이 먹고 떠나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소돔 고모라 성을 불로 심판할 것이다. 거기에 있는 사람이 내가 과연 귀에 들은 데로 악한 자들인지 아닌지를 내가 내 사자를 통해서 알아보겠노라”
그 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살려주겠습니까?”했는데 나중에는 열 명까지 내려갔습니다. 왜냐하면 소돔 고모라성에 자기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의식을 행하는 곳이 상수리나무의 신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그 상수리나무 아래서 만났고, 하나님의 신이 상수리나무 아래 강림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귀신도 상수리나무 밑에 강림해서 사람을 죽이고, 간음하고, 행음하고, 온갖 짓을 다하고, 아브라함도 상수리나무 밑에 가서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여 지시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사람들, 특히 미개인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오면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미개인의 아프리카 지방에 가면 자기와 다른 사람이 오면 우선 경계하고 활을 쏘고 죽이기 일쑤입니다.
아브라함은 겁쟁이였습니다. 얼마나 겁쟁이였는가 하면 그랄왕 아비멜렉 왕에게 자기 부인을 여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내어 주었습니다. 왜 주었는가 하면 아브라함 부인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서 자기 부인을 차지하려고 자기를 죽일까 싶어서 겁이 나서 아브라함의 여동생이라고 하니까 아비멜렉 왕이 불러서“자네 여동생을 나에게 좀 주게”하니 싫지만 왕의 손에 죽을까봐“그리하시지요”하며 사랑하는 자기의 아내 사라를 아비멜렉 왕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어마어마한 재산을 선물로 아브라함에게 주니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을 팔아먹은 것입니다. 양이나 소나 보물을 잔뜩 받았고, 그날 저녁에 왕은 아브라함 부인을 방에 들였는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놈아! 너는 어떻게 남의 부인을 데려다가 네가 차지하려고 하느냐. 불 칼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하니까“아이고, 하나님 어쩐 일입니까? 나는 아브라함이 자기의 여동생이라고 해서 허락을 받아가지고 왔는데 부인이라니 무슨 말입니까?”하고 깜짝 놀라서 신의 계시를 받고는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너 이놈 어떻게 된 거냐?”물으니까“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제 부인을 차지하려는 자들이 나를 죽일까하여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에 아비멜렉왕은 그 때 아브라함에게 선물준 것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고 부인만 다시 돌아왔는데 결국 아브라함은 많은 재산을 선물로 받아서 부자가 되고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 많은 재산을 받았으니까 아브라함은 부인은 부인대로 다시 찾고 부자가 되었으니 살판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겁쟁이라서 가나안 땅에 가서 맞아 죽을 지경이니까 죽지 않으려고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비슷하게 하는 것입니다.“아, 저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아래 가서 제사 지내는 걸 보니까 저 사람은 우리하고 한 패거리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가나안 땅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아브라함의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 된 이유는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가 상수리나무 아래고 상수리나무 숲을 아브라함 자손에게 주리라고 했으니 가나안 땅이 다 아브라함의 땅이요 내 땅이라는 것입니다.
내 땅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내야 될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상수리나무가 많은 그 땅을 얻었기 때문에 거기 자기 땅에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제사 드린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몰렉의 신을 숭배하는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착각했습니다.
산 설고 물 설은 타향에서 자기 몸 하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같은 뜻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아브라함이 살아남기 위한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참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다 같은 상수리나무인데 상수리나무 아래서 귀신을 섬기면 귀신의 신이 내리고 다 같은 상수리나무 아래인데 거기는 아브라함이 나타나면 하나님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깊은 산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생수의 우물이 퐁퐁퐁 쏟아져 나옵니다. 독사가 먹으면 독사는 점점 독을 발하고, 산양이 먹으면 좋은 물을 먹었으니 젖을 많이 내서 새끼 양을 살찌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가 되는데 사단이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기 치면 딱 좋겠구나”하며 이 말씀을 잘 받았다 하고 테이프도 사고 설교를 들을 때에 적기도 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써 가나안 땅의 상수리나무 신목(神木)이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목이 된 것입니다.
아담의 신목은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죽기 살기로 선악과를 따 먹었으니 아담의 신목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 때에 다른 나무들도 많이 있는데 왜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었는가 하면 노아의 신목은 잣나무였습니다.
모세는 꼭 하나님 만날 때 다른 나무 밑에는 가지 않고 떨기나무 밑에 갔습니다. 떨기나무 밑에 불이 훨훨 타는데서 “하나님! 제가 왔습니다.”하면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신목(神木)은 떨기나무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쫓겨서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로뎀나무 밑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굶어죽게 생겨서 로뎀나무 아래서 잠이나 실컷 자고 죽어 버려야겠다고 하고 있으니 거기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고기와 떡도 갖다 주어서 로뎀나무 아래에 계속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신목은 로뎀나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였다면, 우리의 신목은 영생을 주는 생명나무인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성경에 기록된 나무로 신목을 삼았으나 생명나무만 빼놓았습니다.
우리의 신목은 생명나무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생명나무를 신목으로 삼을 수가 없었던 것은 생명나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목이 생명나무가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와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창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써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 비겁한 일을 행하고 형이 받아야 될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형이 음식을 준비하려고 간 사이에 자기가 집에 있는 양을 잡아 가지고 가서 아버님께 드리고“네가 누구냐, 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네가 어째서 에서라고 하느냐, 이리와 봐라, 내가 네 손을 만져보면 안다. 에서에게는 손에 털이 많이 났으니…”그걸 알고 야곱은 어머니의 지시를 받아서 손에 양털을 감아서 갔습니다.
“아, 만져보니 손에 털이 많구나”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서 야곱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만져보고“아, 손을 만져보니 에서가 맞긴 맞는데 형제간에 비슷한 건지 목소리가 꼭 야곱의 목소리 같다”하고서 이삭의 축복을 모두 다 야곱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양털과 손에서 자연적으로 난 털하고 구별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으러 갔을 때에 야곱의 몸에서 향취가 났습니다. 성령의 향취가 나서 그 향취를 맡고서(창 27:27)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만져보고 준 것이 아니라 향취를 맡고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엉터리 짓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을 했습니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에게 말하기를“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그 예언의 비밀을 어머니가 알고 있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형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또한 축복도 빼앗긴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야곱에게 축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벧엘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집에 있을 때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빼앗고 거짓말하여 사기 쳐서 축복받은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내가 참 죄가 많지. 우리 형님이 얼마나 화가 났을까. 내가 나쁜 놈이야. 내가 복을 받으려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지만…”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천사가 따라와서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네가 누운 땅을 축복하리라. 사면을 바라보라. 이 땅을 다 네 자손에게 주리라”이런 축복을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려고 단을 쌓기 위해서 간 그곳을 벧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창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을 따라서 수많은 국민들이 따라 왔습니다.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바꾸라」하는 것은 가나안 땅에서 섬겼던 신상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창35:3~5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해서 우상 신을 섬기는 상수리나무 아래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고 축복을 주는 거지 장소를 보고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한 사람이기 때문에 축복을 준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크게 새겨듣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복을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여 국회의원이 되면 국회의원의 옷으로 바뀐 것입니다. 법관이 되었다면 법관의 옷으로 바뀐 것입니다. 계급이 바뀌므로 그 옷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복이 날개라는 것입니다. 장교 훈련받은 훈련병이 훈련이 끝나서 장교 배지를 달아버리면 순식간에 자기를 훈련시킨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의복은 세상의 의복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기성 종교의 신앙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탈피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의 다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옷으로 바꿔 입어야 되는지 보시겠습니다.
슥3: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진짜 더러운 옷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함께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한 그들을 인도하는데 함께 동참했던 자입니다.
슥3:4~5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었다가 그 옷을 벗기라 하니 옷을 벗기자“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라고 하였으므로 죄악의 더러운 옷을 입었다가 벗은 줄로 믿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정한 옷, 깨끗한 옷으로 바꿔 입은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죄인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죄인 오라고 부르는 곳에 가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가는 곳은 경찰서, 검찰청, 형무소 아닙니까? 왜 거기에서 오라고 하면 우리가 가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왕 부르려면“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의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의인 오라고 부르는 곳은 영생천국인 줄로 믿습니다(마25:46).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야곱이 상수리나무 아래서 우상을 묻은 것은 가나안 땅의 모든 악을 묻은 것입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은 것은 가나안 땅의 우상의 옷을 벗어 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신앙, 가나안 땅의 신앙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인가를 알았으면 사람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새 시대 새 말씀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 보면 우상들이 가득한 가나안 땅 상수리나무 아래서 살았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탐욕과 탐심이 우상입니다(골3:5).
탐욕이 많은 거짓 목자를 개라고 하였습니다(사56:11). 탐욕을 낸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가는 노정 사막에서 다 죽었습니다(민11:34). 세상의 권력과 명예, 돈을 사랑하는 탐심의 우상을 땅에 묻고 우상의 옷을 벗고 말씀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다 같은 교회라는 간판 아래서 예배드리고 있지만 죄인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아니고 여호수아처럼 죄인의 옷을 벗고 죄인 아닌 거룩한 의인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요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 하셨기 때문에 그 해방 받은 거룩한 몸으로서 영적인 상수리나무 아래 우상을 묻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흰 옷으로 바꿔 입은 의인들로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