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웅 칼럼] 공평과 평등
[최무웅 칼럼] 공평이란 모두가 평등한 것 이며, 일부만 돈독히 챙기는 편파적 상태가 아닌 것을 말 한다. 인간사회에서 “먼저 손 내미는 자가 승리자” 라든지 끼리끼리 자기들만 배 채우는 사람들에게 차별, 부정, 독점하려는 행위,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무엇이든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 평등한 의미의 공평이나 실제로는 평등치안은 것을 평등 공평이라고 고정된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슈퍼에서 바나나 한손을 사와서 큰아들 둘째 아들은 큰 바나나를, 작은 딸 2명에겐 조금 작은 것을 준 것을 엄마는 공평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만약 4명의 형제자매에게 피자를 균등하게 4조각으로 갈라 한 조각씩 주었다면 이때는 공평하고 평등한 배분 방법이다.
우리는 가정예법을 강조하여 생활해왔기 때문에 공평과 평등의 정의는 어머니가 바나나를 나누어 주면서 형은 크니까 큰 것 2개 동생은 작으니까 작은 것 1개씩 주어도 아이들은 그것이 공평하고 평등한 것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다.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도 상사는 많이,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많이, 신입사원은 작게 받아도 불공평 불평등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 가정에서부터 잘못된 것이 정당한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어머니의 나눔 방식이 평등과 공평의 개념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라고 꼬집을 수 있다.
1963년 발표된 평등론(Equity Theory)에서 J.S 아담스는 모든 사람들이 기어한 대로 보은의 비가 모두 일정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을 equity [평등 = 공평]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동일조건 동일처우를 예를 들면, 초등학생 1,2학년은 귤1개, 3,4학년은 사과 1개, 5,6학년은 귤2개로 처우를 했다면 동일학년은 더욱 일정하지만 공평하지는 않다. 따라서 과일의 개수의 설정은 평등하지만 종류는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평과 평등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예절로 다져졌기 때문에 구분하지 못하고 불평불만 없이 성장한 후 자신이 직위 책임을 지고 있다 해서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그것이 공평 평등한 정의라고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결과는 불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