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오피니언

[기고]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

▲캐나다 토론토 이형관 목사
▲캐나다 토론토 이형관 목사

캐나다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는 1993년 1월3일 저희 한 가정으로 시작이 되었다. 전도사 신분으로 1990년에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을 올 때는 교회 개척 보다는 공부만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 교회 개척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현재까지 22년 동안 토론토 성석 교회에서 이민 목회를 하고 있다.

처음 1990년에 토론토에 왔을 때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 한국 분이 하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면 반갑다고 그냥 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국 동포들이 약 12만 명에서 15만 명 정도가 되었다.

토론토는 145개 민족이 사는 다민족 도시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145개 민족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세계 경제의 운동장이면서 세계 신앙의 운동장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목회는 다민족 목회는 아니고 한국 동포 그리고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전도사 신분으로 처음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할 때 교만과 혈기로 목회자로서는 정말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훈련과 연단을 통해 모두 제거케 하시고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듯 아비의 마음으로 목회 할 수 있도록 하심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에밴에셀 하나님의 도우심뿐이다.
나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신학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절에 다녔고 잠시 절에 가서 피해 있기도 했다. 내가 자랐던 곳은 암흑가의 대통령이라 부른 서방파 보스 고 김태촌 집사와 같은 동네였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유난히 가난에 찌든 동네였고 그러다 보니 동네 형들 누나들 친구들이 초등학교 이상을 다니질 못하고 어린 나이에 모두 일찍 사회로 나갔다. 그러나 우리 집은 부유한 가정이었기에 학업은 계속 할 수 있었지만 공부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 했고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고 김태촌 집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소년원, 교도소 등을 제 집 다니듯 다녔다.

나도 그런 친구들과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런 부류에 속했으나 나는 공부하는 중이고 내 꿈은 어릴 적부터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되는 것이었는데 내 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들은 너는 중앙정보부장을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하기에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친구들이 내 대신 감옥에 들어가 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해 나와 친구들을 위해 중앙정보부장이 되기 위해 대학교를 들어가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재수 학원을 4년 반을 다니면서 무려 7번이나 대학교에 도전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유는 공부도 못했지만 고등학교 성적표 행동 평가에 문제를 내포한 학생이란 글이 기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양에 있는 성결 신학교(현 성결 대학교)에 인문학부 행정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내 꿈도 이루고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성결 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7전 8기로 성결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성결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죄인 중에 괴수란 것도 알았다. 목사를 하려고 성결 대학교를 간 것이 아니었기에 계속 중앙정보부장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지금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결혼 3개월 후에 중앙정보부 시험 하루 전날 급성맹장염에서 복막염으로 전이되어 14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시험도 못 봤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 이형관목사 내외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 이형관목사 내외

그 이후로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러 번 있었지만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둘째 아들이 임신되고 큰 아들이 9개월 때 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 왔다. 큰 아들이 백혈병이란 것이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는 며느리가 우리 집에 들어 와서 손자가 백혈병이 걸렸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아내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고 주일이면 아들 전도사는 교회를 가도 전도사 사모인 아내와 두 아들은 교회에 못 가게 했다. 아내는 주일이면 기독교 방송국 라디오를 통해 주일 예배를 대신했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 큰 아들을 살려 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 기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아들은 살아났지만 둘째를 가졌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핍박과 마음고생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는 2kg이라는 저체중으로 둘째 아들을 낳았다. 다시 한 번 또 서원 기도를 했다. 둘째 아들을 살려주시면 중앙정보부장 꿈을 접고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둘째 아들도 살아났다. 성결 대학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같은 학교 동료 전도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목회자 길을 가는 것을 알고 부모님께서 너무 힘들게 하고, 아내는 더 힘들다고 고백했더니 그러면 유학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을 해주었다. 듣고 보니 부모님 곁을 잠시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2살, 3살 두 아들을 데리고 유학을 선택한 것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함이었다. 두 아들은 건강하여 큰 아들은 캐나다 특수 부대에서 6년을 근무하고, 아프가니스탄까지 다녀와 제대하고 캐나다 특수 경찰을 준비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전공을 바꿔 다시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핍박했던 부모님은 아들 초청을 받아 캐나다에 이민 오셔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작년에 하늘나라에 가셨다. 고 김태촌 집사가 살아생전에 내가 죽으면 아우 이 목사가 장례위원장이 되어 모든 장례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고국을 방문하면 잠도 항상 고 김태촌 집사 옆에 자야하고 식당을 가도 항상 옆에 앉아 식사 기도를 했다. 그가 몸이 건강치 못해 그렇게도 했겠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불안하여 살 수 없어 항상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증거였다. 작년 1월에 고국에 나가 고 김태촌 집사 1주기 추모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신 것도 감사한데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가슴이 찡하도록 뜨겁게 찬양한다. 마라나타.

이형관 목사 간증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 이형관 목사 내외분과 교회성도들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 이형관 목사 내외분과 교회성도들

 

Profile

– 토론토 성석 성결교회 담임 목사 이형관
– 현 성결교회 캐나다 지방회장
– 현 온타리오 주 한인 교회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