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오피니언

[구속사 특강] 창세기의 족보 서론

창세기의 족보 서론

 

1. 족보의 중요성

1) 신명기가 선포된 시점

신명기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받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출애굽한지 제 40년 11월 1일에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신명기 1:3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우리가 들어가길 꼭 소망하는 유일한 장소는 천국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성 전에 받은 말씀이 신명기라면 오늘날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신명기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2) 신명기 32장 7절

신명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증거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신명기 32장이다. 그런데 신명기 32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절은 7절 말씀이다. 이것은 모세오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신명기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이 구절은 세 가지 명령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옛날을 기억하라. 둘째,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셋째, 네 아비에게 물으라. 이 중 두 번째 명령인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는 말씀을 살펴보자.

이것은 히브리어로 비누 쉐노트 도르 바도르(r/dw:Ar/D t/nv] WnyBi)이다. 여기에 사용된 ‘빈(@yBi)’은 깨달으라는 뜻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쉐노트(t/nv])’, 즉 연대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지는 ‘도르 바도르(r/dw:Ar/D)’는 거듭된 세대라는 뜻이므로 결국 신명기 32장 7절 말씀은 거듭된 세대의 연대 즉, 족보를 깨달으라는 말씀이 된다. 왜냐하면 족보야말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로 이어지는 거듭된 세대의 연대가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모세가 마지막으로 선포한 말씀의 핵심은 ‘족보를 깨달으라’이다. 이것은 족보가 모든 하나님 말씀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모든 율법의 결론이 신명기 32장이며, 이 32장의 핵심은 족보를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3) 신명기가 선포된 장소

신명기는 모압에서 선포되었다.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에 들어서게 되는 광야의 마지막 진 친 곳이 바로 모압이다. 히브리어로 ‘모압’은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말씀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이다. 우리도 가나안 땅, 천국을 앞두고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으로 준비하여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 말씀의 핵심은 ‘족보를 깨달으라’이다.

성경의 서론이자 압축판인 창세기는 10개의 족보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창세기도 족보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족보를 깨달으면 창세기를 깨달을 수 있고, 창세기를 깨달으면 성경 전체를 깨달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논문의 서론을 보면 그 논문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성경 전체가 창세기 속에 담겨있고, 창세기는 족보에 압축되어 있으니, 족보는 바로 성경의 압축이다.

4) 작은 책

쉽게 풀어 말하면 족보는 일종의 작은 책과 같다.

요한계시록 10:2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이 ‘작은 책’은 헬라어로 ‘비블라리디온(βιβλαρίδιον)’이라고 한다. 바이블(bible)이 이 말에서 나온 것으로, 작은 책은 곧 성경을 말한다. 마지막 때 성경에 감추어진 비밀을 공개한다고 하셨는데 그 비밀이 공개되는 말씀이 일종의 작은 책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왜 작은 책이라고 하셨는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이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말씀이 가상칠언(架上七言)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곱 말씀도 일종의 ‘작은 책’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가상칠언(架上七言)을 깨닫는다면 그 ‘작은 책’이 ‘펴 놓인 작은 책’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압축되어 있는 ‘작은 책’인 족보를 깨달으면 성경은 더 이상 닫힌 책이 아니라 ‘펴 놓인 작은 책’이 된다. 그리하여 족보를 깨달으면 족보 속에 감추인 비밀이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2. 족보의 의미

창세기 5: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창세기에 나오는 10개의 족보는 모두 히브리어 ‘톨레돗’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열 개의 톨레돗 중 특히 창세기 5:1의 톨레돗 앞에는 히브리어에서 ‘책’을 뜻하는 ‘세페르’라는 단어가 함께 기록되어 짝을 이루고 있다. 즉 히브리어 원문으로 ‘세페르 톨레돗(tdol]/T rp,se)’이다. 주의할 것은 ‘세페르(rp,se)’는 ‘책’, ‘톨레돗(tdol]/T)’은 ‘족보’라는 뜻이므로 창세기 5장 1절을 히브리어 원문에 따라 읽으면 ‘아담 자손의 족보 책이 이러하니라’가 된다는 점이다. 창세기 5장은 분량이 한 장밖에 되지 않는데 왜 성경에서는 이것을 그저 족보라고 하지 않고 족보 책이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방대하고 엄청난 내용이 그 한 장의 족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기록물이며,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법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계약 문서책과 같다는 것이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아담부터 노아까지 기록하고 있다. 아담부터 노아가 태어날 때까지 1056년, 아담부터 홍수 심판까지 계산하면 총 1656년의 방대한 역사가 창세기 5장 한 장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을 깨달으면 1656년의 역사를 깨닫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족보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우리가 창세기 5장의 비밀을 깨달으면 ‘족보 책’이 되지만 깨닫지 못하면 그저 ‘창세기 5장’이 되고 만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에게는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족보 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사람의 족보에서 언급된 ‘세페르 톨레돗’이라는 말은(창 5:1), 신약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둘째 사람(고전 15:45-4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예수 크리스투(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이다. 우리말 ‘세계’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비블로스(Βίβλος, 책) 게네세오스(γενέσεως, 족보)’로 ‘족보 책’이 된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는 17절 밖에 되지 않는데 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그 속에 방대한 역사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주전 2166년에 태어났고 예수님은 주전4년에 태어나셨으니 마태복음1장 족보에는 총 2162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1장의 족보를깨닫는 것은 곧 2162년의 역사를 깨닫는 것이다.

창세기는 10개의 족보로 이루어져 있다. 족보를 깨달으면 창세기가 열리므로 족보는 작은 책과 같다. 그런데 이 작은 책은 내가 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한다.

요한계시록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요한계시록 5장의 ‘안팎으로 썼다’라는 말씀은 더 이상 쓸 곳이 없다는 계시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로 인간이 마음대로 더해서도 빼서도 안 된다.

요한계시록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5장 1절 말씀을 보면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이다.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는 것은 이 책이 완전히 봉해져서 감추어져 있으므로 인간이 절대 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계 5:3).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아 사도 요한은 크게 울었다(계 5:4). 그러자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을 주신다(계 5:5). 유대 지파의 사자란 유다 지파로 오신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하고, 다윗의 뿌리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성경 말씀을 공개하실 수 있다. 오직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이 이 책을 받아 펴시게 되는 것이다(계 10:2). 인간은 절대 성경을 풀 수 없으며, 예수님만이 성경에 있는 모든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이다.

마지막 때에는 그 작은 책이 펼쳐져 있다(계 10:2). 하나님께서 펼쳐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요한과 같이 말씀을 뜨겁게 사모해야 한다. 말씀을 펴달라고 눈물을 흘린 사도 요한에게는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알려주셨다. 시편 107편 9절에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해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

시편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들부터 회개해야 한다. 성경의 뜻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목사 밑에서 성도들이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가르치는 사람부터 무릎 꿇고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그냥 족보가 아니라 족보 책이라고 말씀하신 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1장 4절과 디도서 3장 9절을 보면 족보에 착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족보는 하나님의 족보가 아니라 인간의 족보이다. 신약 성경에서 족보를 가리키기 위해 쓰이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게네알로기아(γενεαλογία)’로 인간의 족보, 즉 인간이 자기 가문을 자랑하기 위해 만드는 족보를 말한다. 두 번째는 ‘게네시스(γένεσις)’로 성경에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족보를 뜻한다. 디모데전서 1장 4절과 디도서 3장 9절에 쓰인 ‘족보’는 첫 번째인 ‘게네알로기아’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마 1:1)에는 두 번째인 ‘게네시스’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족보가 아닌 하나님의 족보를 공부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압축되어 있다.

 

3. 두 가지 족보의 계보

창세기의 족보는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 계열과 셋 계열로 나뉘어지는데, 그 계보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아담의 회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담은 타락 후에 회개했을까? 성경에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성경의 문맥을 살필 때 회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회개한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셋이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였는데, 이때 ‘쳐 죽이니라(창 4:8)’의 히브리 원어의 뜻을 살펴보면 가인이 숨어있다가 아벨을 덮쳐서 온 몸에 피를 흘리도록 비참하게 죽였다는 뜻이다. 비참하게 죽어있는 아벨을 봤을 때 아담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우리 집안에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이 둘째를 그렇게 쳐 죽였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아벨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벨은 순교자이다. 죽는 순간에 자기 아버지를 회개시키고 깨닫게 한 것이다. 이후 아담은 더욱 신앙생활에 힘썼을 것이다.

또한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담이 자식들에게 제사드리는 방법을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벨의 죽음 이후 아담은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나이 130세에 셋을 낳았는데 이때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한다(창 4:25). 아담이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 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여전히 아담이 하나님을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은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셋을 주셨다고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다.

이렇게 타락 후에 회개하고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했던 아담의 족보는 셋 계열의 족보와 가인 계열의 족보로 나누어진다. 셋 계열의 족보는 창세기 4장 25-26절과 창세기 5장 전체(1-32절)에 기록되어 있고, 가인 계열의 족보는 창세기 4장 16-24절에 기록되어 있다. 셋 계열의 족보와 가인 계열의 족보를 볼 때, 셋 계열은 하나님께 뿌리를 두며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하고, 이 땅에서 장수의 축복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가인 계열은 세속 사회에서 번영을 구가(謳歌)하긴 했으나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선민을 방해하며 구속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사악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족보를 비교하여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시작이 다르다

(1) 가인 계열: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잠가야 하듯이, 시작이 잘못되면 전체가 잘못될 위험이 크다. 가인 계열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하고 있다.

창세기 4:16-17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이 성을 쌓았다는 것은 도시를 세웠다는 의미이다. 영어 성경에는 city(도시)로 번역되어 있고 (NASB; he built a city), 히브리어로는 ‘이르(ry[i)’로 큰 도시를 세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인의 삶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멋있는 삶, 크게 성공한 삶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잘 되어도 실패일 뿐이다. 어떤 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고 해도, 세상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있으면 실패자이다. 그러나 서울역 앞의 지게꾼일지라도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면 성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성공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2) 셋 계열: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시작한다.

창세기 5:1-3에서 아담 자손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아담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 아담이 130세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셋 계열의 족보는 위로 아담에서 시작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셋 계열의 족보를 하나님과 연결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셋 계열의 족보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누가복음 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이러한 사실은 노아 시대에 셋 계열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던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창 6:2). 우리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칭호를 받는 믿음의 성공을 이루어야 하겠다.

2) 과정이 다르다

가인 계열은 세상에서 모두 다 성공했다. 가인의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야발은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자, 곧 음악인의 조상이 되고, 두발가인은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기계 제작자가 되었다(창 4:20-21). 조상이란 그 분야의 일인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유명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셋 계열 족보에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구절이 있는가? 찾아볼 수 없다. 셋 계열은 그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를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손자인 에노스에 관하여는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에노스 시대에 와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 드리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만을 기록하신 것이다. 아담의 7대손 에녹에 관하여도 그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창 5:21-24)만 기록하셨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셋 계열의 족보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만을 기록하신 것이다.

3) 끝이 다르다

셋 계열의 족보와 가인 계열의 족보는 그 끝이 다르다. 가인 계열은 언제 죽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 4: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언제 태어나서 얼마나 살다가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셋 계열의 족보를 살펴보면 언제 태어나고 얼마나 살다가 언제 죽었는지 다 기록해 놓으셨다.

창세기 5:3-5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 계열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인생이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셋 계열의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에녹 계열과 비(非)에녹 계열

셋 계열은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 나머지 셋 계열의 인물들이 모두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5, 8, 11, 14, 17, 20, 27, 31)’고 그 인생을 마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에녹만은 ‘죽었더라’는 표현이 없다.

창세기 5: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하나님은 에녹이 죽은 다음에 그를 데려가신 것이 아니다. 창세기 5:24의 “데려가시므로”는 말은 히브리어 ‘라카흐(jq’l;)’로서, 그 뜻은 ‘이 세상과는 다른 장소 곧 하나님의 나라로 산 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는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지상에서 생존하던 에녹을 죽음을 거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 옮기셨다는 것이다.

같은 셋 계열이라도 죽은 조상이 있는가 하면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올라간 조상이 있다. 우리는 가인 계열이 아니라 셋 계열에 속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 죽지 않고 변화 받는 에녹 계열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다.

고전 15:51-5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킴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승현 목사(미국 IVY크리스찬 칼리지 부총장, Th. D., 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