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9. 어린양의 혼인잔치

본문말씀 : 계시록 19장 6~10절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은 너무나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계시록은 쉽게 알 수 있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고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기록된 말씀의 약 90%가 심판의 말씀으로만 꽉 채워져 있어서 두려워하고 겁이 나서 계시록의 말씀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증거도 못하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계시록은 심판을 위한 말씀으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 것을 보니까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복 받을 말씀인 줄 믿습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한 것은 때가 가까울수록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려면 알아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알아야 지키고 지켜야 복 받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증거 되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알고 지킴으로 복 받는 자 되시기를 원합니다.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인봉하지 말라는 것은 개봉하라는 뜻입니다. 인봉이라는 것은 덮어 둔다는 것입니다. 덮어두지 말고 책을 펴라는 것입니다.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묶어두지 말고 말씀의 보따리를 풀라는 뜻입니다. “때가 가깝다! 말세다! 예수님 오실 때가 되었다! 심판 때다” 이렇게 말하면서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는 대역(大逆)의 길을 가는 자들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면 인봉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알고 깨달아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때가 가깝다고 말하면서 예언의 말씀을 한 번도, 평생에 증거 하지 못한 목사님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직접 저한테 계시록을 단 한 번도 증거 하지 못하였다고 고백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때가 가까울수록 시급하게 예언의 말씀은 개봉이 되어야 함에도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의 실상은 인봉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상식화되었기 때문입니다(사29:10~13). 예언의 말씀은 개봉이 되어서 이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달아서 지킴으로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이 인봉된 자들은 예언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으므로 예비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알 것은 계시록은 요한 계시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시록은 요한이 받은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지우거나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분명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미래적인 것)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계시 받은 것이 아니요 지시 받은 것입니다.

지시(指示)와 계시(啓示)는 다른 것입니다. 계시 받았다는 것은 마치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방을 열어서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 앞서 미리 보여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계시 받은 것이 아니라 천사로부터 지시 받은 것이 분명한데 마치 사도 요한이 계시 받은 것으로 착각하도록 책 제목을 “요한 계시록”이라고 한 것은 크게 잘못되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계시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예수님의 집 문패에 요한의 집이란 간판을 걸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집에 붙은 요한의 문패는 떼어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문패를 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것을 깨닫고 오늘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에 어린양 예수의 혼인 잔치라고 했습니다. 혼인 잔치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획을 긋는 기억이 바로 혼인 잔치 하는 날입니다. 결혼한 날짜는 잊어버려도 결혼한 날에 있었던 일들은 잊혀지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천국 가는 길을 어린양 예수의 혼인 잔치로 비유하고 혼인 잔치에 초청을 하는 것을 핵심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2장 17절에 보시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라 하시는도다 하는 것은 원래 신랑, 신부라고 말을 하면 쉽지만 계시록은 ‘신랑과 신부’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신부가 오라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령이라는 것은 곧 신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라 하시는도다 하는 것은 바로 어린양 예수의 혼인 잔치에 신랑 되신 성령과 신부의 초청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기록된 말씀에서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라고 했으니, 천국 혼인 잔치에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먹고 영생하는 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 생명수는 우리 뱃속에 흐르는 생명수로서 믿는 자의 받을 성령(요일5:7)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7:38~39).

그러면 본문 말씀을 보시기 전에 먼저 구약 성경 자체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남편의 입장에 있고 하나님의 백성은 신부의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실 낙원의 자리까지도 전부 신랑 신부를 비유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 다시 말하면 부부 관계로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가까이 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하나님은 신랑 된 입장에서 하나님과 인류와의 관계가 부부의 관계로 맺혀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계시는데 성경에 하나님 어머니는 기록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이 부부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신부가 인간 ‘장길자’ 라는 여자라고 합니다. 그 한심한 소리를 듣고 몇 십만 명이 모인다고 하니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가 극에 달한 것입니다. 쭉정이가 몇 만 가마니가 있어도 알맹이 하나만도 못한 것입니다. 또한 장길자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하니 개(사56:11)가 들어도 비웃을 일입니다. 이는 성경도 능력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가증한 자들입니다(마22:29).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하나님은 인류와 부부 관계를 맺으셨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행복의 극치가 무한량 한 것 같이 하나님과 부부로서 하나 될 때에 이 세상의 삶이 지상 낙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 오늘날 이 시대에는 예수님으로서 부부의 도를 행해야 됩니다.

부부의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남편은 아내만을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하나님이기에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되는데 우상한테 가서 절하고, 동상한테 가서 절하고, 석상한테 가서 절하고, 황금만능의 부귀와 권력에 무릎을 꿇어 절하는 그것이 바로 다른 남편을 보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하여 간음(약4:4)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이렇게 비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왕자와 혼인하면 세상의 모든 권력과 행복을 가지는 것과 같이 어린양 예수와 혼인하게 된다면 억만 가지가 부족함이 없는 행복으로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렘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낼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하나님으로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하나님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도와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극치와 극락의 행복은 어린양 예수와 혼인하여 남편의 관계로 영성(靈性)이 성립되는 것이 신앙의 최고 목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호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그 날이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그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롬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사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여기서 용은 사단이며 그 날은 사단을 심판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 사단을 심판하고 이 세상을 심판할 때가 되면 진짜 하나님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되어서 그때 가서 하나님이 진짜 우리 신랑이네 라고 깨닫게 되는 그날 곧 심판의 날에 바알을 신랑으로 섬겼던 사람이 하나님을 신랑으로 부른다고 한 것입니다(호2:16).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이단 교회에 가서 자칭 “내가 하나님이다. 재림주다. 감람나무다.” 하는 자들을 하나님 같이 섬겼는데 성경을 바로 알고 나서 다시 보니까 참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창 1:1) 말씀으로 계신(요 1:1) 하나님이 성령과 신랑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호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지금까지는 바알 신을 하나님으로 섬겨 왔는데 심판 날 참과 거짓, 알곡과 쭉정이, 빛과 어두움으로 만 가지가 다 드러나게 될 그 때에 가서 “아, 하나님이 우리의 참 남편이십니다.” 라고 하는 것이 속으로는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앞에 남자 둘이서 가는데, 뒷모습을 보니까 틀림없는 자기 남편인 줄 알고 달려가서 “여보, 나 여기 왔어”하고 목을 껴안고 휙 돌아보니까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껴안았다면 정말로 창피하고 기가 막힐 것입니다. 또 그 여인은 얼마나 놀라겠으며 그 남자도 놀랬을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자기가 다니던 교회가 예수님이 있는 참 교회인 줄 알았다가 이제 와서 보니 거짓 선지자라고 알았다면 신앙의 허탈함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참 하나님, 참 남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래는 남자가 장가를 간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구원을 하나님이 장가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나에게 장가를 오시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장가오실 것인가 성경으로 확인하겠습니다.

호2: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이 세상에서 장가들어 살아봐야 백년 이상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정의롭고)와 공변됨과(사사롭지 않고 정당한) 은총과 긍휼히(가엽게) 여겨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가드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과 비등한 짝이 되어서 하나님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왕자가 혼인하는데 왕자 같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신부감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부의 인물이 못났어도 잘난 것으로 보이고, 건강하지 않은데 건강한 것으로 보이고, 무식한데 유식한 것으로 보이게 됨으로서 하나님 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 장가오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양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감히 비슷하지도 않은 짝이지만 성령 되신 하나님이 신랑으로 오신다는 그런 뜻입니다.

호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장가들면 진실함으로 장가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가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사람 가운데 첫 열매로서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계14:4). 신약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천국이 비유되었지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장가간다고 한 줄 믿습니다.

신천신지(新天新地)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신부(계21:9~10)된 사람은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면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믿음이라는 신용을 잃어버리면 세상에서는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겠지만 신앙에서 믿음이 깨어지면 영육간에 인생을 망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용은 바로 진실함으로 얻을 수 있으며 낙원 천국에 이르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호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께서 진실하심으로 장가를 내가 너한테 들면 네가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을 아는 자는 천국을 보장 받은 자로서 이미 신랑 되신 하나님이 내게 장가 온 것입니다(요17:3).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자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장가오셨다는 것이며 구원에 관한 증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말씀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장가오는 것은 영생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요일2:20~21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진리를 앎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라고 했는데 진리를 안다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내게 장가온다는 것과 같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므로 진리를 아는 자들만이 신랑 되신 성령(계22:17)의 기름 부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진리를 앎을 인함이라, 너희가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도 명문 집안의 딸이 그 나라의 왕자와 혼인하는 일은 큰 국가적인 경사(慶事)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딸에게는 큰 영광이며 그 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혼인하는데 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며 어린양 예수의 혼인 잔치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영생의 비밀을 안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내용이 됩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는 하나님이 장가오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고 신약 시대에는 처녀(순수하고 순진하고 순박함)가 되어야 예수님께 중매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오늘 증거 되는 말씀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지금 중매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왕이며 만왕의 왕이 되신 우리 예수님께 중매가 되어 시집을 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극치의 행복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천국을 신랑 신부로 비유한 것입니다(마22:2). 이것을 문자적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성 입장에 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백성을 전부 신부로 비유한 것입니다.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신약 시대에 와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총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어린양 예수님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혼인 잔치가 이루어질 때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천국 혼인 잔치에 와서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고 영생을 얻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부는 어떠한 자격을 갖춘 자가 신부가 되며 또한 신부가 입어야 될 성경에 기록된 세마포 옷은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허다한 무리의 음성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동시적으로 떠드는 소리나 무슨 말 하는 소리인지 모르는 물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여러분들이 장마철에 한강 가에 가보면 와글와글 하는 소리와 같이 들릴 것입니다.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만 이천 명을 초청한 대 집회가 있었는데 통성 기도를 한번 하였더니 만 이천 명 이상 되는 사람이 와글와글 기도하는 소리가 꼭 물소리 같았습니다. 그리고 “큰 뇌성”은 바로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우레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바로 시온산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시온산에 서 있는 사람은 어린양 예수의 이름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 두 가지의 이름을 받은 자들이 시온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일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을 바꾸어 본다면 아들의 이름이 이마에 있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들인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두 가지 이름을 받아서 시온산에 들어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극히 드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없을 정도입니다.

계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시온산에서 나는 많은 물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중의 소리로서 이 소리는 땅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고 골짜기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라 하늘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시온산에서 나오는 소리가 물소리도 같고 뇌성 소리도 같은데 사도 요한은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뇌성 소리로 들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많은 물소리 같이 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물소리 같은 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겔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한 것을 보니까 이 물소리는 나쁜 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소리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시고 또 뇌성 소리 같은 심판의 음성과 물소리 같은 구원의 음성이 있는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소리 같다고 했습니다.

많은 물소리는 하나님 백성들이 모인 소리요 한마음이 된 기도 소리요 우레 소리는 심판의 소리이지만 악한 자들을 심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룸으로서 얼마나 시원한 소리겠으며 신원심판을 하심으로서 마음의 원한을 모두 갚았으니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물소리 뇌성소리가 거문고 타는 자의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게 된 것입니다.

계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어린양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가 오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가 오는 그 때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시대는 사단이 얼마나 많은지 도둑놈, 사기꾼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일곱 인으로 이 세상 심판이 끝난 이후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가 와야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에 가야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심판이 시작도 되지 않았으니 심판이 끝나지도 아니한 이때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천당 사기꾼들입니다.

시97: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찌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니 땅이 즐거워하고 허다한 섬들이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땅이 즐거워 한다는 것은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즐거워 한다는 뜻입니다.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섬이란 육지와 따로 동떨어져 있는 땅을 말합니다.

다시 비유로 말하자면 큰 종교를 떠나서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있었던 별도의 종파들을 가리켜서 섬이라고 합니다. 이 섬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던 자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서 멀리 있었던 자들을 섬이라고 성경은 비유했습니다.

사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원방 백성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멀리 있는 사람을 말하며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난로 곁에 있어야 따뜻한데 난로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난로 불을 지펴 놓아도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멀리 있는 자들입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네”라고 찬송을 부르는데 이렇게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과 멀리 멀리 가니까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환난을 당해도 슬프지 않고 재산이 털려도 슬프지 않고 고통이 와도 슬프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이 가야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는데 하나님과 떨어져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은 섬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나 사회단체도 꼭 모임이 있으면 혼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임에서 빠진 섬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하고 왕따를 당한 자로서 바닷물에 둘러 쌓인 섬이 된 자들입니다.

아주 좋은 가사의 찬송 중에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천국길이 하룻길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더럽고 어지럽고 누추한 세상, 거짓과 사기가 판을 치고, 재판을 해도 돈이 없는 사람은 사기 당하고, 피해를 본 사람이 도리어 재판에 지고, 돈 있는 사람은 악한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해도 재판에 승소하는 이런 엉터리 재판관들이 많은 세상에 사람들은 너무나 억울함을 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자가 되어서 섬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그때가 되면 멸시 받고 천대 받고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알지 못하여 채찍 받던 자들이 기뻐하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이 품어 주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섬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섬에 관해서 한 말씀 더 보시겠습니다.

사41:5~7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거짓 목자들이 진리를 거역하고 망신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변명 하려고 땜질하는 설교를 하면서 “믿습니까? 왜 아멘 안합니까! 아멘하세요!” “아멘!” 설교 시간에 강제로 “아멘” 을 시키는 행위는 거짓 목자가 땜질을 하는 설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섬이 어떻게 두려워하고 땅 끝이 어떻게 떨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섬들은 곧 원방 백성들을 상징한 것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때에 섬들이 기뻐한다고 했는데 시편 97장 1절로 다시 보시겠습니다.

시97:1~2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찌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좋은 시대 즉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가 오게 될 줄 믿습니다. 그것이 어떤 시대인가 하면 계시록 11장 15절의 말씀에 보시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라고 했습니다.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온 세상이 바로 예수님이 통치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불교 신자도 예수님의 나라, 저 마호메트 신자도 예수님의 나라, 유교신자도 예수님의 나라, 귀신을 섬기는 자들도 전부 예수님의 나라, 전체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그런 세상이 성경대로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에 가게 되면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유교를 믿는 사람이나 각 종교를 믿던 멀리 있는 섬들이 된 교파들이 전부 찾아 와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전에 섬기던 바알 신랑을 쫓아 버리고 하나님 신랑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신랑이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예비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전체는 신부가 단장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령으로 높은 산에 올라갔으니 육신의 몸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환상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부를 보여 준다 하고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을 보여준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신부의 모양입니다.

어떤 신학자들과 교인들은 계시록 21장에 나온 아름다운 도성이 실제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성인 줄 착각하고서 찬송을 부를 때 “예루살렘 금성, 예루살렘 금성” 하고 찬송을 부릅니다.(찬송가 538장)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준다고 하고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으므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아내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노아 홍수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땅과 함께 다 멸하리라고 했는데 땅은 멸하지 않았습니다.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땅과 함께 멸한다는 것은 실상적으로 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 옛날 세상, 싸우고 다투는 세상이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의 새 하늘과 새 땅, 지상 낙원의 새로운 세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새롭게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연장으로 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살다가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아버지한테 아파트 하나를 사 주면 새 집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시골집에서 쓰던 농기구, 괭이, 삽, 지게 이런 것을 아파트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 자들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세상에 갈 때는 모든 것 다 버리고 가야 될 줄 믿습니다.

전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 때에 이 지구는 영원히 존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해서 이 지구가 없어지고 멸망하는 것이 아니요 땅은 영원히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계절이 다 그대로 있습니다.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면 새로운 세상의 문화가 열리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렸을 때 세상 사람은 물에서 다 죽어 없어지고 노아의 가족 밖에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므로 노아는 아담처럼 다시 인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 여러분들이 새 하늘, 새 땅에서 인류의 씨앗으로 인류의 시조가 될 줄 믿습니다.

계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나님이 예비한 거룩한 도성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성(都城=도시가 된 성읍)으로 비유한 어린양의 아내 곧 흠과 티가 없는 옳은 행실의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도성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준비해 놓았으니 하나님이 신부 집으로 장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장막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 장막으로 내려오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장막으로 내려오실 것이므로 우리가 하늘로 올라 갈 필요가 없습니다.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장막이 인간에게 와서 다시는 고통과 눈물이 없는 낙원,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을 이루는 것이 바로 신랑, 신부를 모시는 것입니다. 신부가 이런 것을 예비하고 준비하는데 신부가 어떠한 옷으로 예비했는가 하면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세마포라는 것은 비단 옷인데 천이 아주 가늘고 부드러운 명주 비단 옷을 세마포라고 합니다. 이 세마포는 실상의 천으로 된 세마포가 아니고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옳은 행실이 무엇인가 하면 깨끗한 신앙의 처녀들이 입은 옷입니다.

마음이 순결하고 순수하고 순박하여 세상과 때 묻지 않은 거룩한 마음의 옷을 깨끗하게 입은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마포 옷이며 마음의 깨끗한 옷은 세탁해서 입는 옷이 아니라 말씀의 새 옷을 사서 입는 옷이 새 옷 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입니다. 검정 옷은 아무리 씻어봐야 깨끗한 검정 옷이지 흰 옷이 될 수 없습니다. 빨간 옷은 아무리 세탁을 해도 깨끗한 빨간색 옷이 될 수 있으나 흰 옷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걸레를 깨끗이 빨아도 걸레일 뿐 흰 옷, 비단 옷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말씀의 흰 옷을 하나님으로부터 한 벌 사서 입기를 원합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어린양 예수님의 아내가 되는 세마포 옷, 흰 옷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세마포 옷은 돈 없이 값없이 사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깨닫고 믿음으로 깨닫고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화사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운 세마포의 흰 옷을 믿음과 소망과 깨달음으로 사서 입은 자 되기를 원합니다.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어린양의 아내 된 흰 옷 입은 거룩한 자들이 구원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피로써 옷을 씻은 자들이 바로 흰 옷 입은 자들입니다.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창세기 3장 22절 말씀에 영생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깨닫게 되고 깨끗하여질 때에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됩니다. 우리 마음속을 세탁하는데 세상의 잿물이나 가루비누를 가지고 세탁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잿물, 가루비누를 창고에 쌓아 놓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씻을 수가 없습니다.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양심의 두루마기 빠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었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을 바로 아는 말씀으로 깨닫는 그 자체가 바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침을 받은 자들은 환난을 받지 않지만 인침을 받지 못하고 예수의 피로 옷을 씻은 자들은 짐승시대 곧 환난의 시대에 짐승으로부터 환난을 받으나 어떠한 경우라도 죽임을 당하지는 아니합니다. 두루마기 빤 자들이 들어가는 이 성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입니다.

계19:8~9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오늘 증거된 이 말씀이 천국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청첩장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 되어서 신앙인의 양심을 세탁하는 존귀한 자, 어린양의 아내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증거인 대언의 영을 통해서(계19:10) 여러분들의 신앙 양심이 세탁이 되고 아름다운 신부로 꾸며지는 성령의 세마포 옷을 입은 거룩한 자들로서 어린양 예수를 영접한 존귀한 신부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