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리고 성의 일곱나팔

본문말씀 : 여호수아 6장 1~7절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찌니라

여리고 성의 일곱나팔에 관해서는 역사적으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역사적으로만 기록되어 있다면 아무런 값어치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성경이 나 자신과 어떠한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만이 생명이 될 줄로 믿습니다. TV 화면에 복권 추첨이 나오는데 자기가 단 오백원짜리 복권 하나라도 갖고 있으면 자기와 관계되어 있음으로써 그 화면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혀 관계가 없다면 그 화면을 볼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과 어떤 관계가 형성 되어 있고 성령님과 어떤 연결 고리가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닫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이미 지나간 역사를 증거한 것이 아니요 그 역사를 되돌려서 또 그와 비슷한 새 역사를 다시 창조하게 됩니다(전3:15).

예를 들어 말하자면 노아 홍수 심판의 사건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마태복음 24장 37절 말씀에 보시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오시는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노아 때의 역사는 그냥 지나가는 역사설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예언적인 예수 재림 때를 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리고 성을 점령한 일곱 나팔의 역사는 역사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일곱 나팔로 비유된 미래사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설을 증거 하고자 함이 아니요, 역사서를 빙자(憑藉=핑계한)한 미래사를 증거 하고자 함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전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이라든지 컴퓨터라든지 모두 옛적에 있었고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서 있을 모든 것들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찾으신다고 한 줄 믿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여리고 성의 일곱 나팔의 사건도 다시 이루어질 새 역사의 그림자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국의 노정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갔다고 비유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하였다는 것은 이사야 31장 3절에 보면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애굽은 사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을 탈출하여 영적인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 지상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 가는 노정을 비유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보면 장례식 때에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여리고 성도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아야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머리에 종려나무 가지로 만든 왕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여리고 도성을 종려 성읍이라고도 합니다. 왜 종려 성읍이라고 하냐면 역사적인 사실로 보면 암몬 자손과 아멜렉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가서 승리하였다는 증거로 그곳에 종려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종려 성읍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의 여리고 성은 무엇인가 하면 일곱 나팔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큰 승리가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에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려서 여리고 성을 점령함으로써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는 승리요 축복의 관문입니다. 여리고 성만 건너면 이제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이미 여리고 성 자체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해결 받고 천국 노정의 길을 간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적으로 우리의 신앙이 마지막 여리고 성과 같은 그 성을 점령하고 통과를 해야 영적인 가나안 땅 하나님의 나라, 지상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민수기 14장 38절에 보시면 그 땅을 탐지하러 간 사람들 중에서 큰 포도송이 하나를 양 어깨에 메고 두 사람이 돌아왔는데 그들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으로 이 두 사람만이 출애굽 하였을 당시의 이십 세 이상 장정 육십만 명 가운데서 생존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십 세 이상의 장정들이 육십 만 명이나 있었으나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기의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냈을 때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큰 포도송이 하나를 나뭇가지에 끼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가서 과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서 큰 포도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포도 한 송이를 메고 석류와 무화과나무도 함께 가지고 왔다면 포도알 하나가 “메론”정도 큰 송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두 사람이 나뭇가지에 꿰어 멜 수 있는 포도송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장차 영적 가나안 땅에서 생산될 포도송이를 상징하였습니다.

또 다른 열 지파도 가서 보고 왔지만 이들은 가나안 땅을 비방하며 “그 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토질이 좋지 않으며 사막이 많고 그 곳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키가 큰지 장대한 네피림 족속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아주 작은 사람, 메뚜기 정도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육십만 명이 애굽을 벗어나왔는데 열 지파가 다 거기가면 네피림의 거인 족속들에게 죽는다고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 육십만 명은 모세를 불신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돌멩이를 들고 모세와 아론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부터 광야까지 기사와 이적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돌멩이를 들고 있는 그들의 손에 쥐가 나게 하시고 넘어지게 하심으로 모세와 아론은 살아남았고 그때 여호수아, 갈렙은 모세와 아론의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서 담대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어깨에 메고 온 큰 포도송이 하나를 들고서 “이 과일을 보라 가나안 땅은 복된 땅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장대하고 크지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모세의 편에서 목숨을 걸고 외쳤습니다. 이런 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모래사장에 뼈가 묻힌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장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자기를 지도하고 있는 목자를 믿음으로 신뢰하고 여호수아 갈렙처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신뢰해야 합니다.

이 땅에 증거 되는 이 생명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새 역사가 이루어질 때에 아무리 큰 대적자가 있어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는 큰 믿음을 가지고 영적인 여리고 성, 바벨론성, 귀신의 처소들을 무너뜨리는 여호수아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갈렙 외에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34장 1절부터 8절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모압 땅까지 와서 모압 산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땅을 분배했습니다. 모압 땅에서 여리고 성만 지나면 가나안 땅인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니 여호수아에게 네 사명을 인계하라고 했습니다. 사십 년을 광야에서 고생한 모세는 통곡할 정도로 억울하다고 하고 오늘날 세상 목자들과 같이 불순종 할 수도 있으나 순종함으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할 때에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이런 것이 참 안수입니다. 교회 가서 안수 받고 병이 나았다는 것이 안수가 아니라 안수를 받음으로 지혜의 신이 충만하여 한 민족을 인도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의 신이 임하는 것이 안수입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목사로부터 하나님의 신(神)이 임하지 아니한 안수는 도의 초보라고 하였으며 이를 버리고 완전한 곳으로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히6:1~2).

모세로부터 안수를 받고 지혜의 신을 받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 십계명 곧 하나님의 법이 들어있는 언약궤를 메고 건너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은 아무리 깊은 강이 있어도 건너야 한다고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건너야 합니다. 지도자가 건너라 하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순종하고 건너가야 합니다.

때마침 장마철이라 물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언약궤가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하던 가마같이 생겨서 앞뒤에서 제사장들이 메고 건너가는데 발을 물에 들여놓으니까 흘러 내려가던 물이 둘둘 말려 쌓여서 벽을 이루고 바닥에 있던 물은 다 흘러내려가고 위에서 흘러내려오던 물은 계속 쌓여서 담이 되어 올라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와 같이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너간 것과 같은 기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요단강을 건너왔으니 여리고 성을 점령해야 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는데 자기 앞에 큰 장군이 칼을 들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키가 얼마나 큰지 8척 정도 되어 보이는 신체의 큰 사람이 칼을 들고 서 있으니까 여호수아가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가 있어서 싸우려하지 않고 “너는 누구냐? 우리의 편이냐? 대적의 편이냐? 그것만 말해라.” 라고 말하자,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왔노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어라”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을 때도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출3:5). 여호수아도 할 수 없이 군대장관의 명령을 받아서 신을 벗었습니다. 신을 벗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상도에서는 부인이 도망을 가면 고무신을 바꿔 신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는 것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생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악한 행실의 신을 다 없애 버리고 새 출발하라는 뜻으로 여호수아가 대표로서 신을 벗고 가나안 땅의 새 신발을 신으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광야생활이 다 끝났음으로 지금부터 너의 사명이 새로 시작될 것이니 새 신을 신고 새 출발하라”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군대장관의 사자가 명령을 합니다. “너는 이 성을 오늘부터 매일 육일 동안 돌아라. 돌 때에 언약궤를 앞세우고 언약궤 앞에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어라. 그리고 그 뒤에도 백성들이 가고 그 뒤에는 군인들이 지키도록 해서 성을 매일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라”라고 했습니다.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돌아보니 성문은 다 닫혀 있었습니다. 왜 닫혀 있었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사십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계속 승리하고 또 승리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에 들어오면 “우리는 죽게 생겼다”하고 여리고 성 백성들이 두렵고 겁이 나서 덜덜 떨며 문을 굳게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 지금까지의 전쟁은 창과 활과 칼로 했는데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는 창과 칼로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 양각 나팔을 매일 엿새 동안 한 바퀴씩 돌면서 불고 칠 일째 되는 그날은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를 돌며 양각 나팔을 길게 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길게 불어야 맨 끝에 따라온 백성들이 나팔 소리가 들려서 “하나님이 이 성을 우리에게 주셨다”하고 온 백성들이 합심해서 소리 지르므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런 전법은 이 세상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전부 벙어리가 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수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서울 대공원까지 가면서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해도 틀림없이 말을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말을 하지 않고 벙어리가 되어서 길을 간다는 것으로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고 걸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였을 당시에 사방에 누룩을 두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빵을 먹을 때 곡식으로만 되어 있는 진짜 빵만을 먹어야 되는데 거기에다가 부풀게 되는 누룩이 들어가면 빵의 성분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룩을 먹지 말라고 한 것과 같이 이 성을 일곱 바퀴 도는 그날에는 무너진다 하는 믿음으로 오직 정신일도(精神一到) 해야 되는데 다른 생각을 섞어버리면 그것이 누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 받는 유월절에 누룩이 섞인 음식을 먹거나 또한 예수를 상징하는 어린 양, 수컷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사는 가정의 장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실상으로 애굽에 있던 모든 장자가 마지막 날 열 번째 재앙을 내릴 때 다 죽었습니다.

여리고 성 점령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그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전법은 지구상에 어떤 전투에도 없었던 전쟁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팔을 부는 것은 행군 할 때에 그 나팔 소리를 들음으로 정신 통일이 되고 그 나팔 소리를 생각하니까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도록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민족이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것입니다. 원래 나팔 소리는 평화를 상징하는 소리입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신나고 즐겁습니다. 평화의 나팔소리를 듣고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일곱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성을 한 바퀴씩 돌자 여리고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눈을 뜨고 성 밖을 내다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한 바퀴씩 도는 것을 보고 ‘평화의 시위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팔 부는 사람들이 칼도 없고 창도 없이 그냥 나팔만 불며 언약궤를 앞세워서 성을 돌고 있음으로 전쟁의 위험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 일째 되는 날은 다 합심 곧 신인합발(神人合發=신과 사람이 합해서 함께 소리를 발한다)하여 하나님의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한 한 마음이 되어서(고전6:17) 성을 일곱 번 돌자마자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여호수아가 “이 성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야!” 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심하여 신인합발(神人合發)로 소리 지르자 성이 그대로 무너지고 폭삭 내려앉았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종말에 계시록의 심판은 일곱 양각 나팔로 심판합니다(계8:6). 여리고 성을 심판하고 계시록의 바벨론을 심판하는 심판이 다 일곱 나팔의 심판으로 이루어집니다. 계시록 10장 7절에 보시면 일곱째 나팔이 불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심판이 다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일곱째 나팔을 불면 그때 가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과 같이 성경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은 일곱째 인을 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계8:1~2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래서 인을 떼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일곱째 날에 일곱 나팔을 분 것과 같이 일곱째 나팔 때에 이 세상의 귀신의 처소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계16:17~19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일곱 나팔 심판과 일곱째 나팔 심판은 귀신의 처소 큰 음녀의 성, 큰 성 바벨론의 심판입니다.

계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래서 온갖 귀신들이 모여 있는 성이 바벨론 성인데 이 큰 성이 심판을 받을 때에 세 갈래로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왜 세 갈래로 갈라졌는지 성경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계16:12~13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용, 짐승, 거짓 선지자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세 영이 하나가 되어 바벨론을 형성하였으나 바벨론 심판을 인하여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세 영을 받으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귀신의 처소 곧 더러운 영들이 모인 바벨론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계18:2).

하나님의 신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 셋이 하나 되어 삼위일체가 된 것 같이 용, 짐승, 거짓 선지자가 사단의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나 귀신의 영은 다시 셋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계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용, 짐승, 거짓 선지자가 모여서 큰 성 바벨론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 대전을 세 나라가 일으켰다면 앞으로 어린양 예수의 전쟁의 심판 때에 큰 성 바벨론이 망하면 세 나라로 갈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계16:18~20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왜 세 갈래로 갈라지는가 하면 바벨성은 용, 짐승, 거짓 선지자 세 종류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여섯째 대접재앙으로 더러운 영 곧 비진리가 드러나므로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계16:12~13). 이것들이 못된 짓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것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는 천지개벽하는 무서운 심판을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내리게 됩니다.

계16:17~18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되었다’라고 말한 사실이 없습니다. “되었다”이 한 마디를 하나님께서 하실 때에는 이 지구상의 모든 심판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세상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 심판이 영적인 “여리고 성”심판입니다. 여리고 성이 일곱 나팔로 무너진 것 같이 바벨성도 일곱 나팔로 무너집니다.

여기에서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불던 양각 나팔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각 나팔을 받았습니다. 양은 예수 양이고 양각 나팔은 예수 양의 나팔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사명자들이 증거 하는 말씀 그 자체가 바로 양각 나팔(예수 나팔)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의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일곱 양각 나팔을 받은 것과 같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일곱 양각 나팔을 부는 사명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앞세워서 그 성을 돌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언약궤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그 앞에 일곱 양각 나팔을 든 나팔수가 나가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면서 그 성을 도는 것은 세계 복음화를 의미합니다.

저 여리고 성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 바벨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이슬람”의 코란경 오늘날 회교 무리들의 간을 서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양각 나팔 소리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나팔만 잘 불면 무엇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과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때에 여리고 성을 돌듯이 바벨론 성을 돌 때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팔 소리만 나는 것입니다. 예수 나팔 소리만 나고 냄새나는 인간의 소리는 결단코 나팔 소리와 함께 섞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나팔 소리 외에 인간들의 입을 봉하였던 것입니다(수 6:10).

예수 나팔 소리 곧 양각(羊角)나팔 소리만이 영적 여리고 성 바벨론을 무너뜨릴 때에, “이 성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렇게 외칠 때에 온 세상에 있는 바벨 도성이 순식간에 그대로 무너질 줄 믿습니다.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관문은 육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적한 용․뱀․마귀․사단을 무저갱(無底坑)에 던짐으로써 계시록 20장 2절의 모든 심판이 끝이 나는 영적 여리고 성을 비유한 것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양각 나팔로 무너뜨리고 점령하여 가나안 땅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바벨론 도성도 마지막 일곱째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 때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계16:17~21).

양각나팔 곧 예수 양의 일곱 뿔의 소리로(계5:6)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 같이 바벨론이 일곱 나팔의 심판을 받아 멸망함으로써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에 여리고 성의 일곱 나팔 비밀을 깨달은 모든 자들이 되어 영적 여리고 성을 지나 가나안 땅 그리스도의 나라(계11:15)에 들어가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