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노아의 때
본문말씀 : 마태복음 24장 32~41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입으려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요 4:24)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에 발걸음을 왕래해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때 좋은 길을 열어 주시사, 대로의 길을 열어 주시고, 형통하게 하는 축복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지난날에 욕심이 있어서 이 교회를 사서는 안되는데 구청에 가서 건물상태를 말하고 문의하니 사지 말라고 하였고, 또 다른 사람도 복지 건물이기 때문에 사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전세보증금 십일억을 찾을 길이 없어서 제가 계약을 하고 십팔 년 전에 잔금을 삼십 억을 주었습니다. 그 때 돈으로 삼십 억은 대단한 돈입니다. 다 사고 나서 보니 복지 건물의 반은 국가의 재산이므로 주무관청의 허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자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고 나서 보니까 완전히 사기당한 것입니다. 사지 말라고 했는데 샀으니 정말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간구하고 우리 성도님들과 합심기도를, 제가 재판장에 나갈 때마다 전교인이 함께 통성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수차례 재판에 이겨서 땅과 건물을 다 찾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잃어버린 재산을 찾아서 오늘 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살다보면 다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 하늘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써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온 사람이 되어야 바른 신앙을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목사님을 보러 온 사람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교회를 보러 온 것도 잘못된 신앙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교제하러 온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만 그 기도가 진실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는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진실한 자들에게 있을 줄로 믿습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천지는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마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말씀들이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노아 때 말씀은 역사적인 실상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비유(譬喩)란 실상과 비슷한 것을 들어서 설명한 것을 말합니다. 실상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것이지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요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때가 되면 비사(비유)의 말씀을 실상(實狀)으로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비사로 기록된 이 말씀을 여러분들은 실상으로 깨닫는 큰 축복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행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노아 때에 되어진 일들을 비유한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실제로 성경대로 그렇습니다. 여름이 가까우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아주 연하여져서 연한가지의 새순에서 잎사귀가 나옵니다. 잎사귀가 나올 때 바로 여름 직전에 나와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오면 여름이 가까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때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여름의 때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너희도 모든 일을 보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잎이 연하여지고 싹을 내는 것처럼 예수 재림의 징조를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말씀이 실상으로 알려질 때가 되면 영적으로는 인자가 문 앞에 도착한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를 칼로 절반을 쪼개 보면 그 안에 중심을 향해서 수많은 십자화의 꽃이 무수하게 속에서 피어 있습니다. 과일 하나에 수백 송이의 꽃들이 속에서 피어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과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본다면 포도나무가 수많은 꽃을 피웁니다. 그 포도송이 알 하나하나 마다 꽃이 피니까 꽃송이가 얼마나 많이 피겠습니까? 포도나무는 겉으로 꽃을 피우고 무화과는 속으로 꽃을 피웁니다. 포도나무 신앙은 세상의 빛으로서 겉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고, 겉 사람을 세상 사람이 볼 때 거룩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표면적인 기독교 포도나무 역사입니다.
요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포도나무는 겉으로 꽃이 피는데 무화과는 겉에는 꽃이 피지 않지만 속으로 꽃이 피는 꽃으로서 마음속에 양심 속에 피는 진실한 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외모적인 사람이 아니라 참 사람입니다. 겉은 꽃이 피었는지 꽃이 피어나지 아니하였는지 아름다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사람을 사귀어 보니까, 속이 깊고 진국 같은 사람이다. 정말로 향기로운 분이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거짓말이 없고 진실함의 꽃이 마음속에 가득히 피어있는 그런 사람은 겉보다 속이 알차고 아름다운 사람 이런 사람이 비유로 말하면 무화과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을 성경에는 무화과로 비유했습니다. 이런 무화과가 잎을 낸 것을 보거든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잎을 낸 것을 본다는 것으로 진실함이 넘쳐서 겉으로도 보인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무화과나무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를 비유한 말씀입니다.
세상의 무화과는 매년 잎을 내고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라면 예수님이 매년 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 속으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무화과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잎을 낸다는 것은 성경에 진실함과 실상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무화과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거든 예수님이 가까이 오신 것을 알라 이런 뜻입니다.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참 사람, 진리의 사람, 무화과 같이 마음속에 꽃이 피고 마음의 아름다움을 만든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잎이 나온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줄을 알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눅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밭에는 포도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왜 포도원에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가 포도밭인데 전 세계 기독교 포도밭 가운데서 예수님이 찾고 계시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 무화과 한 그루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만나야 됩니다. 포도나무가 신랑 되신 예수님 이라면 무화과나무는 신부가 될 사명자인 것입니다. 수 많은 신부감 가운데서도 무화과나무의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포도밭(예수교회)에서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찾고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맺기를 삼년을 찾아와서 기다렸다고 하니 영적으로 무화과나무의 사명자를 찾는 애절함이 폭발하여 무화과나무를 베어 버리겠다고 까지 하였으나 다시 한 해를 더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왜 나무들이 무화과나무에게 찾아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애원하였겠습니까?(삿 9:10~11) 무화과나무가 나무들이 요구하는 왕이 싫다고 거절하고 왕의 길을 가지 못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의 신랑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무화과나무의 비밀이 나오는 이 자체가 바로 무화과나무의 잎이 난 것을 보거든 하는 뜻입니다. 이 무화과 비밀이 있는 곳에 우리 주님이 문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이 세대가 다 지나기 전에 무화과가 싹을 내게 될 것이고 그 때에 인자가 문 앞에 와 있게 될 것이다. 만약에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게 되면 주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게 되면 우리의 안방에 주님께서 찾아와서 얼싸 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무화과나무의 때를, 그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고 하니 노아홍수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들을 때는 엉뚱한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24: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곧 무화과나무가 잎을 내면 인자되신 예수님이 문 앞에 와 있다는 말씀으로 천지가 없어져도 틀림없이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싹을 낼 때에는 주님께서 문 앞에 와 계신 것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신 말씀으로서 오늘 무화가 나무의 비밀을 잘 듣고 깨달아 천지가 없어져도 이룰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여기 나오는 그 날과 그 때는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무화과나무의 그 날과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알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인 줄로 믿습니다. 인자 때는 여름에 무화과 잎이 있을 때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도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을 알면 출세하는데 하나님을 알면 왜 출세하지 못하겠습니까?
제 친구들이 저를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저희 교회를 와서 보고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수 만 명이 모여 집회한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옛날에 공무원 그대로 있었으면 육십 세 때에 그대로 내 인생의 할 일이 끝났을 것입니다. 공무원 생활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나이와 상관없이 목회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사,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줄로 믿습니다. 돈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신문에서 통계 숫자를 봤는데 어떤 기업이든지 이십년 만에 망하지 않는 기업이 없다고 합니다. 살아남는 기업은‘백분의 오’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십년 안에 회사의 주인이 거의 다 바뀐다는 겁니다.
그만큼 기업은 어려운 것이고 금새 잘 되는가 싶어도 언젠가는 망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는 기업은 결단코 망하지 아니할 줄로 믿습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의 깨닫게 되는 것이 소원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는 말씀입니다.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주었을 때‘아, 저 목사님이 참 목자다! 저 목사가 거짓 목자다.’하는 것을 다 알게 하여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참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인 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예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 했고(요 17:3) 예수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 하신 줄로 믿습니다(요 15:7).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 말은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때가 어느 때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해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때가 바로 노아의 때와 같은 그 때라는 것입니다.
마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다고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면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줄 알라고 하셨고, 인자가 오는 것은 노아 때와 같은데 노아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죽기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왜 죽는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얼마나 외쳤습니까?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의 일곱 식구 까지 의를 전파하였다고 하였습니다(벧후 2:5).
방주를 만들라. 그리고 방주를 타라고 했지만 노아를 미친 영감이 어디 배를 만들 때가 없어서 산 중에 와서 배를 만드는가 저런 바보 천치가 어디 있느냐, 하며 노아를 미친놈이라고 그의 말을 외면하고 멸시 천대하며 노아의 말을 귀담아 듣는 자가 없었습니다.
다만 순종한 자는 노아의 세 아들 부부와 부인, 그래서 여덟 식구입니다. 부인과 아들들과 며느리들만 노아의 말을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큰 나무를 베어 밧줄 달아 묶어서 산 아래로 내리고 그것을 통나무로 붙여서 통나무 사이에 역청 바르는 일은 여자들이 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청년시절 주일학교 교사할 때 율동도 가르치고 했는데 “노아 할아버지 배를 만든다. 노아 할아버지 배를 짓는다. 높은 산꼭대기에다 배를 짓는다. 앞 집에 김첨지, 뒷집에 박첨지 모두 다 반대 하여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서 높은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짓는다.” 이러한 가사의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지으니까 미친놈이라고 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배를 물가에 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날(롬2:16, 심판의 날) 곧 말일에도 노아 때와 같다는 뜻으로서 노아 때에도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는데 노아의 말을 믿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가족 외에 아무도 방주를 탄 사람이 없었던 것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말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도 세상 사람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 질 때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믿고 기록되지 않은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창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의 가족들은 그 날과 그 때를 즉 심판의 날과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록된 말씀에서“지금부터 칠일이면”사십 주야 비를 내려 홍수 심판 할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들은 심판 날을 맞추어 다 방주에 들어가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면서 죽고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 내가 노아의 말을 순종하지 않아서 물에 빠져 죽는구나.’그것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홍수가 내렸을 때 사십 주야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난 것으로만 알았는데, 창세기 6장을 자세히 보면 땅 속에서 지구의 공 안에 있는 물이 먼저 올라 왔습니다(창7:11). 땅 속에 있는 물의 샘이 터져 범람(氾濫)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데 어디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는지 온 집을 다 덮어 버리니까 이게 어찌된 것인가 하는 겁니다.
물이 땅에서 올라오고 뒤에 하늘에서 홍수가 쏟아지니까 어떻게 죽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 때에 와서야“노아의 말이 비슷하게 맞아가네.”진짜 상상할 수 없는 소나기가 쏟아지므로 그 때에 가서“아이고, 노아 말이 맞는가 보다. 빨리 방주로 찾아가자.”해서 방주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까 노아의 하는 말이“방주는 내가 만들었지만 문은 하나님이 닫았으니(창7:16) 하나님께 문 열어 달라고 하여라.”함으로서 성경은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슬이 우리 몸을 적셔 주듯이(호14:5) 그렇게 오는 것을 임한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말씀으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민23:19)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곧 내리신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임하시는지 보시겠습니다.
마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리스도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에 번쩍임 같이 인자 곧 예수의 오는 것이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빛으로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에 그냥 우리 주님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눅17:22).
눅17:26~27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그리스도 재림에 관하여 왜 하필이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만 말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 향락과 타락에 젖어 있다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다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까, 깨닫는 사람은 방주에 들어가겠지만 깨닫지 못하면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심판의 때를 알려주고 심판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 때도 알려 주었고 노아 홍수 때도 알려주었습니다. 니느웨 성을 멸하려고 할 때에도 지금부터 사십 일이라고 알렸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때를 알리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노아 때에 된 것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마11:26~27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숨은 것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 예수를 지금 바로 아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잘못 아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습니다(마11:27).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알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시기와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천사도 모르고 아들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므로(요1:1) 말씀을 아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요17:3).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줄 것을 예시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날은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는 그 때를 알려주는 선지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내 종 선지자에게 알려 주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였기 때문에(암 3:7) 노아 때와 같이 알려주기 마련인 것입니다(창 7:4).
창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貫盈)함으로 즉 세상에 가득함으로 인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홍수심판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을 속여서 이익을 채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전부 악할 뿐임을 보신 것입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면 애인같이 달라붙고 조금만 싫어하면 언제 봤냐는 듯이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아주 악한 세상이 되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고 내일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니 세상은 알바가 없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전부 죄악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그게 악한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세상 중에서도 속으로 꽃이 피는 무화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 중에 마음에 꽃이 피고 속사람이 거듭난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전부 포도나무 꽃으로만 피었습니다. 무화과가 되어서 속으로 꽃이 피어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진실치 못한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포도밭에서 무화과를 찾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포도밭에 있는 무화과 열매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무화과 된 여러분을 보고 심판의 때를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6:6~7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심판을 결정하심과 같이 노아 때와 같은 종말의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 때 그냥 싹쓸이 심판을 해 버리듯이 진리 말씀의 방주를 타지 않은 사람들 곧 무화과의 꽃이 피지 못한 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는 참 방주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봉천동에도 방주교회가 있습니다만 저도 성경 아는 사람이 왜 방주교회라고 안하고 세광교회라고 하였겠습니까? 방주교회 간판만 붙였다고 방주교회가 아닙니다.
노아 때의 비밀과 무화과나무의 비밀을 깨닫고 참 하나님의 무화나무의 사람들이 가득해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찾아와서 그 무화과 과일을 찾으실 때에 여러분은 잘 익은 무화과 과일로 축복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너 잘 만났다고 찾아 올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찾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예수님을 찾아가는 사람보다 예수님이 찾아오는 무화과의 과일이 된 사람이 더 축복입니다. 내가 대통령을 찾아가는 것보다 대통령께서 찾아오시면 얼마나 더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포도밭에서 무화과를 찾았던 것입니다(눅 13:6~9).
노아는 포도나무를 재배하여서 포도주에 취하여 옷을 벌거벗고 장막에 누웠습니다. 이에 함이 아버지가 벌거벗고 누운 것을 보고 아비의 부끄러움을 형제간에 일러서 형제들이 아비의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께 옷을 덮어주었다고 창세기 9장 23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옷을 벌거벗고 누웠어도 성경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라고 하였으면 의인입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장막에서 옷을 벗고 누웠을 때도 하나님과 동행한 자인 것입니다(창6:9). 이 속에 무엇을 숨겨 두셨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씨앗을 찾은 것입니다.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에서 어느 아들을 찾아야 될 것인가? 바로 셈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하리로다.”라고 했는데(창9:26) 노아 이후 오늘날까지 성경 상에 셈의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또 셈의 하나님이라는 성경구절이 성경 전체에서 이 한 구절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소리는 많이 했어도 셈의 하나님이라 부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셈의 하나님에 대한 비밀은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셈의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노아가 술이 깨고 나서 성령에 감동하여 예언한 말씀을 자세하게 참고하겠습니다.
창9:26~27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의 예언이 숨겨져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이 셈, 함, 야벳인데 셈은 황인종이 되고 함은 흑인종이 되고 야벳은 백인종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셋인데 하나는 흑인종, 하나는 백인종, 하나는 황인종 그 중에 백인종과 흑인종은 내버려 두고 황인종을 보고“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그래서 셈의 하나님의 족속에서 다윗이 나왔고 다윗의 족속에서 예수님이 성탄한 줄로 믿습니다.
그럼 여기에 무슨 비밀이 있는가 하면 야벳 족속은 백인종인데 왜 백인종이 되었느냐. 백인종들은 적도 위의 북쪽에 살았습니다. 지금 러시아, 유럽 전부 백인종들의 삶의 터전은 추운 지방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얼굴을 감싸고 돌아다니니까 햇볕을 보지 못해서 피부가 하얗게 된 것입니다.
흑인종은 아프리카에 사는 함의 족속인데 아프리카는 햇볕이 너무나 강력하게 비추니까, 피부가 타서 얼굴이 까맣게 피부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황인종은 아시아권에 많이 삽니다. 아시아권은 겨울과 여름이 분명하게 있어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봄, 가을은 또한 적당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항상 황인종은 검지도 아니하고 너무 희지도 아니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면 흑인종은 너무 구워서 타 버렸고, 백인종은 설익고 덜 구워서 하얗게 되어 버렸고, 황인종은 인간을 만들 때에 예쁘게 잘 구워졌는데 하나님께서 황인종을 왜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입니다. 왜 넷째 아들이 저주를 받아서 종의 종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가나안의 이름은 저주의 이름입니다. 왜 저주의 이름인가 하면 함이 노아의 부인과 불륜의 관계를 가져서 네 번째 아들을 낳았는데 노아한테 탄로가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둘째, 셋째를 제치고 넷째 아들을 저주해 버린 것입니다.
불륜과 죄악의 씨가 함을 통하여 가나안에게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함의 넷째 아들이 저주를 받아서 가나안이 저주의 이름이 된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가나안이라는 이름이 좋은 것인 줄 알고서 가나안 제과점, 가나안 농군학교, 가나안 안경점, 가나안, 가나안, 가나안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의 이름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저주의 이름인지 축복의 이름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가나안 땅 들어간다고 하니까 가나안이란 이름이 좋은 이름인줄 알고서 많은 자들이 가나안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갖다 붙이는데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종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창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대케 한다는 것은 크게 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백인종이 크게 잘 되어서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든 과학의 발전이 백인종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야벳 족속이 창대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해서 야벳 족속이 창대케 되었지만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으므로 야벳 족속이 셈의 장막인 황인종에게 언젠가는 굴복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셈의 장막이라 하면 중국, 일본, 한국이 대표적인 황인종이요 셈의 장막입니다. 중국은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공산주의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셈의 장막이 될 수 없습니다.
중국에 있는 저희 해외 지교회의 간판도 중국 정부에서 못 붙이게 합니다. 사실이 이러하니 중국은 셈의 장막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에 교회가 세워지고 오십에서 육십 명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간판을 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중국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황인종 중에서도 중국은 하나님의 축복의 권세를 받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다신교입니다. 한 집안에서도 여러 가지의 신을 가족들이 다 섬깁니다. 일본에 교회 간판을 보려면 눈 뜨고 기차역 찾기보다도 더 힘듭니다. 일본에는 교회가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 십자가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 셈의 장막 중에 셈의 장막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나라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을 옛날에는 경성이라고 했는데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에 일본 동경, 북쪽에 북경, 남쪽에 남경이 있는 것으로서 한국의 수도는 9만 리나 되는 것이므로 셈의 장막에 모든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해 돋는 곳 동방에서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을 섬기는 셈 족속의 왕권이 대한민국 동방 해 돋는 우리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셈의 장막에 야벳의 족속 백인들이 셈 장막에 굴복되어서 축복을 받으려고 민족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나무도 많은데 왜 하필 잣나무로 지으라고 했는지 이 잣나무의 비밀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호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에브라임은 우상을 섬기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하나님을 잣나무로 비유했습니다. 노아가 구원의 처소 방주를 지을 때에 잣나무로 배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상징한 것입니다.
왕상5:7~8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오늘날 여호와를 찬양할찌로다 저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솔로몬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당신의 기별하신 말씀을 내가 듣고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의 바라시는 대로 할찌라
솔로몬은 아름다운 성전을 칠년이나 걸려서 지었습니다. 그 성전을 백향목과 잣나무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방주는 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잣나무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잣나무 집에 산다고 했습니다. 잣나무는 벌레가 못 먹고 아무리 산비탈이 심해도 나무가 똑바로 큽니다. 여러분은 잣나무의 사람이 되었을 때 방주의 재목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탈진 곳에 있어도 술 먹고 노래 부르고 온갖 못된 짓 하는 곳에 있어도 잣나무가 되는 사람은 하늘을 향하여 똑바로 서서 크는 것입니다. 자갈밭에 있어도 산비탈에 있어도 잣나무는 똑바로 하늘을 향하여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잣나무를 하나님 성전의 목재로 삼은 것입니다.
시104:17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학이란 것은 시기와 때를 아는 새인데(렘8:7) 전부 사람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만계일학(萬鷄一鶴)이란 닭이 일만 마리가 있으면 그 중에 학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이요, 만학일봉(萬鶴一鳳)이라는 것은 학이 만 마리가 있으면 그 중에 봉(鳳)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학은 존귀하고 화려하고 귀하게 생겼습니다. 아주 훌륭한 여인들을 학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춤을 잘 추면 학춤이라고 합니다. 학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렘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시기와 때를 아는 것이 학인 줄로 믿습니다. 인자의 때를 아는 자들이 학(鶴)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이 학은 잣나무에 와서 깃들인다고 했습니다. 잣나무에 와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것입니다. 시기와 때를 아는 학이 되고 또한 잣나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노아의 홍수 때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무화과는 과일 속에서 꽃이 핍니다. 하나님은 겉사람의 아름다움보다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축복하여 줍니다.
포도나무처럼 겉으로 피는 많은 꽃이 아름답겠지만 주님께서는 포도나무 기독교 밭에서 무화과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눅13:6~9).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였습니다(마 24:32). 무화과 잎이 나면 인자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고 하심으로서 영적인 사람 무화과 잎을 낼 때에 주님이 문 앞에 와서 계시고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때 예수의 재림의 때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였으니, 마음속에 무화과 잎의 시대를 지나 무화과의 열매가 되어서 열매 속에 꽃과 같이 존귀한 자들이 되어 영적인 노아의 때 방주를 만든 자들로서 여러분도 방주를 짓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주를 만드는 잣나무가 있어야 방주를 만들 것입니다. 잣나무를 찾는 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찾는 포도밭의 무화과는 잣나무같이 위대한 사명자들 입니다. 노아 때 같은 심판 때에 잣나무의 사명자들로서 방주를 짓는 큰 재목이 되어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셈의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