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른씨 셋

본문말씀 : 창세기 4장 25~26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우리 교회의 동산에는 노란 꽃도 피었고, 철쭉꽃도 피었고, 하얀 동백꽃도 피었고, 빨간 동백꽃도 피었습니다. 머지않아서 하루가 다르게 또 다른 꽃도 피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움츠렸던 모든 것이 새 봄을 맞이해서 아름다운 신앙을 꽃 피우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방금 들어온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버지를 닮지 않고 집에 있는 머슴을 꼭 닮았다면 정말로 기가 막힌 사연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은 다른 씨가 들어간 것입니다. 다른 씨에 대한 비밀의 말씀은 참으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건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교회에 와서 ‘주여 주여’ 외친다고 해서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주에서 옥돌이 나오는데, 옥돌이 난다고 해서 경주에 있는 돌이 다 옥돌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여! 주여! 부르짖는다 하여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들어가리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행함이 없는 자들의 거짓 믿음 가진 자들을 말함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과 상반되는 자들입니다.

참 목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참 양은 목자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롬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남은 자만 곧 택정함을 입은 자들만 구원 받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본문 말씀을 보시면 아담이 하와와 동침해서 낳은 첫 아들이 가인입니다. 하와가 아담과 동침했으면 하와가 말하기를 내가 아담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다고 해야 말이 맞는데 가인을 낳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가인이 하나님의 씨라는 말입니다.

천하의 모든 죄는 다 용서를 받을 수가 있으되 씨앗 속임은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호박씨라고 해서 뿌려 놓았는데 싹이 나서 열매가 달린 것을 보니까 참외가 달렸다면 씨앗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는 열매가 많고 적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이 달리면 감나무고 사과가 달리면 사과나무인 것과 같이, 사람의 모든 행위도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동침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이 가인인데 이 가인이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씨앗 속임인 것입니다.

창4:2~7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지금 이 말씀 속에는 씨앗의 속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는데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농사하는 자는 농산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회갑 선물을 하려고 한 친구가 값비싼 선물을 가져왔는데 그 친구는 자기한테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잠적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회갑 날에 선물을 가져왔다면 그 선물을 받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의 선물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의 선물은 값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의 정성과 사랑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왜 아벨의 제물은 받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려고 씨앗을 뿌릴 때에는 땅을 잘 개간하면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또 씨앗을 뿌려 놓았어도 잘 가꿔야 합니다. 잡초가 무성하면 그 밭이 아무리 옥토 밭이라도 자갈밭이 되거나 길바닥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가문이 좋은 집안에 태어나도 가꾸어지지 않은 사람,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깡패, 도둑놈, 사기꾼 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잘 가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꾸지 않은 밭에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김을 매고 깨끗하게 잘 가꾸어 놓은 밭에는 절대로 뱀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풀인지 밭인지 어떤 것이 곡식이고 어떤 것이 채소인지 알지 못하도록 잡초가 무성한 밭에는 틀림없이 뱀들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씨앗 속임이 있는 것을 이미 하나님이 아시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하기 전에 이미 가인에 대해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다는 외형적인 말은 맞는데 이는 신앙이 잠 잘 때에 사단, 마귀의 씨가 와서 뿌려진 것으로 이미 살인하기 전에 가인에 대하여 선을 행치 아니하는 자라고 단정하였으므로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고 말씀하심은 이미 가인이 어떠한 씨앗인지 판결이 난 것입니다.

마13:24~26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좋은 씨만 뿌렸는데 가라지가 보이는 것은 가라지 씨가 있으니까 가라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 가라지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마귀의 씨앗을 비유한 것이며 마귀의 씨앗을 가라지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씨앗 속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순교자적인 입장에서 죽었습니다. 창세기에는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을 잘 상고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비밀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다른 성경구절에 또 기록이 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알지 못하면 성경의 비밀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아벨의 피로부터”라고 했고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한 것은 아벨의 피는 의로운 피었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피라는 것은 순교자의 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종교가 있었고 아벨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종교와 아벨의 종교의 싸움에서 순교자적인 피가 쏟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비밀의 말씀입니다.

요일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가인은 악한 자의 무리에 소속된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가인이 첫 아들이기 때문에 아담, 하와, 가인 외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되는데 어떻게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악한 자는 어디서 생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가인 외에 이미 악한 무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와가 아담과 동침하기 전에 하와의 밭에 악한 자의 씨 곧 하나님의 씨가 아닌 다른 씨가 들어갔기 때문에(요일3:12)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다른 말씀을 듣는 것을 경계 했습니다(마16:6~12, 마11:7~8).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이미 가인의 종교가 있었고 아벨의 종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의 입장을 떠나서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가인이 가입한 악한 자의 종교에 아벨이 순교를 당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잠29: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가인은 나면서부터 피 흘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벨은 온전한 자였으므로 가인은 악한 자에게(요일3:12) 속하여 온전한 아벨을 미워했습니다. 이와 같이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가인의 살인 행위는 선한 믿음을 말살시키려는 종교적인 살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가인의 후예라고 하였습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성경에 처음부터 살인한 자는 가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섬기는 악한 자의 종교가 있었으며 악한 자의 명에 의하여 아벨이 죽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했는데 진리에 서지 못한 것이 바로 가인의 종교인 것입니다. 가인의 종교는 계속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가인의 종교가 있습니다. 아벨의 종교는 진리의 종교이며 진리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곳에는 가인의 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 한 말씀 읽어 놓고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씨를 주셨으니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자기 간증 이야기 이런 것이 겉으로는 하나님 말씀인 체 하지만, 실상은 세상이야기 곧 겉 다르고 속 다른 씨앗 속임입니다. 이는 전부 가인의 종교입니다. 가인이 악한 자 곧 사단의 교리에 미혹되었기 때문에 “악한 자에 속하여(요일3:12)” 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에 속하여 동생을 죽였다는 것은 이미 다른 종교가 형성 되어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벨의 육신은 죽였지만 그의 생명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왜 생명을 죽이지 못했는가 하면 창세기 9장 4절에 보시면 피는 곧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피가 하나님 앞에 호소를 했습니다(창4:10). 가인이 죽였으니까 죽은 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 피가 하나님 앞에 호소를 함으로 가인의 정체가 탄로 난 것입니다.

창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피가 무슨 입이 있어 호소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함으로 그 소리가 하나님께 들렸습니다. 육신의 아벨은 죽였어도 피는 죽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순교자의 그 피가 살아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계6:9~10).

계시록 6장 10절에도 보시면 순교자들의 피가 하나님 앞에 신원심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하고 순교자들의 피가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자 가인이 자기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항의 하였지만 가인의 정체가 탄로 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피가 하나님께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피가 살아있기 때문에 살인하여도 그냥 지나갈 것 같지만 언젠가는 다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안 잡히면 심판 때에 잡혀서 무저갱(無低坑)에 들어갑니다(계20:1~2).

하늘에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몇 년, 몇 월, 몇 일에 행한 모든 것을 다 기록해 놓고 비디오보다 더 녹화를 잘해서 하나님 앞에 그날 가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장사하는 날까지 화면에 다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께 직고(直告)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벧전4:5).

그러므로 물어볼 필요도 없이 행위 그대로 심판을 받고(계20:12) 산 지옥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계20:15). 생명이 바로 피입니다(창9:4~5). 어리석은 여호와 증인들과 같은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을 보고 생명은 피라고 하니까 진짜 생명 그 자체가 피인 줄 알고 피를 먹지 않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수혈을 받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 됐는데도 수혈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종교입니다. 수혈을 받는 것은 남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도 소를 잡으면 소고기는 먹고 피는 먹지 않았습니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고기만 먹고 피의 생명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로 가증한 소리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실상의 피는 흘러서 없어진 것이 이천 년이 넘었는데 그 육신적인 피가 어떻게 우리 죄를 사해 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인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임을 깨닫길 원합니다(엡2:15~18).

그래서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아주 재미있고 신비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너무나 신묘막측(神妙莫測)하고 오묘한 말씀입니다.

창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는 것은 셋은 가인의 씨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씨하고 다르다는 것은 가인은 하나님의 씨가 아닌 다른 씨로 왔다는 것입니다. 즉 가인은 마귀의 씨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와 다른 씨는 하나님의 씨입니다. 아벨의 피를 흘린 것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 피를 흘린 것이며 다른 씨 셋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라고 한 말씀을 보아서 가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 하나님의 씨라면 가인은 범죄 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씨가 아니요 다른 씨 곧 마귀의 씨이기 때문에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히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예수와 아벨의 피를 연결해 보았습니다. 아벨과 예수의 피가 연결되었다는 것은 첫 순교자(눅11:50~51) 아벨의 흘린 그 피로부터 사가랴(스가랴)의 피까지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피 흘림이 인류 구원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의 역사가 다시는 피로써 속임을 가져올 수 없는 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종교가 아벨의 종교, 예수님의 종교를 말살시키려고 했던 기독교 이천년사의 비극이 계속 되었으나 종말은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요8:44, 계20:1~2).

요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예수님은 새로운 목숨을 얻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새로운 목숨은 부활하신 몸이요 곧 영생의 몸이십니다. 이런 사실로 본다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기 때문에 아벨의 피가 하나님 앞에 호소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생기게 한 것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짐승의 피로 인간의 죄를 속했는데 예수님은 짐승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피로 우리 죄를 속해 주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죄를 속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흘린 피가 어찌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지 아니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히9:12~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의 피는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보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서 하나님께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제가 동생을 지키는자니이까? 저는 모릅니다” “네 아우의 피가 내게 호소하였느니라” 하심으로 하나님이 가인이 행한 일을 모르는 줄 알았더니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자기 속에 만 분의 일이라도 양심은 남아 있습니다. 깡패들끼리도 양심과 의리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악의 의리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의리보다도 더 세고 강한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악은 목숨을 걸고 있는 악으로서 의리가 있는 것입니다.

창4:10~12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가인을 저주하여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라고 저주를 내렸습니다.

창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살인했지만 양심이 조금 남아 있어서 가인은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자 하나님이 양심에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창4:14~15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양심을 내어 놓을 때에 가인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구원의 표를 하나님께서 준 것입니다. 양심을 덮어 놓았을 때는 하나님이 저주를 내렸습니다.

자기의 양심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에 따라서 양심이 살아 있는 자에게는 뉘우치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의 세력을 걷어가 주십니다. 그러나 양심이 죽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천벌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창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에덴 동편 놋 땅은 참으로 살기 좋은 땅입니다. 해가 뜰 때에 기(氣)가 제일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아침, 해 뜨는 빛을 받아야 몸에 기운이 생기는 것입니다.

산천도, 초목도, 풀도, 동물도 아침에 돋는 햇빛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집을 지으려면 동향집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성전을 지을 때에 동쪽으로 향하여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동편이 가장 좋은 것으로 되어 있고 동방의 의인, 동방의 독수리 등 모두 동방적인 설명을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4:16~17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살인자 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 이름이 에녹입니다. 에녹을 낳았다고 했는데 성경에는 에녹이 두 명이 있습니다.

에녹이란 말은 순종한다는 뜻인데 뱀 새끼가 에녹을 낳았으면 뱀이 뱀한테 순종한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에녹을 낳았다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다 같은 에녹이지만 어느 핏줄을 받았는지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인이 낳은 에녹은 저주의 자식입니다.

창4: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에게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저주를 했는데 가인이 놋 땅에 들어가서 동편에 성을 쌓고 여자를 얻어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4:16~17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이 놋 땅에 들어가서 성을 쌓고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저주한 유리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을 쌓고 나서 안정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성을 쌓는 것은 대적자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만약에 지구상에 아담, 하와, 가인, 아벨 네 사람 밖에 없었다면 쳐들어 올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가인은 성을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놋 땅에 가서 여자를 얻어 혼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구상에 네 사람 밖에 태어나지 아니하였는데 놋 땅의 그 여자는 어디서 생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 16절에서 24절 말씀에 의하면 이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성을 쌓자면 한 사람이 성의 주춧돌을 옮겨서 쌓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처갓집에 성을 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리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인자 가인의 무리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인의 대적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을 쌓은 것입니다.

마13:37~38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라고 하였는데 가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면 가인이 살인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하였고 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씨는 살인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살인자는 다른 씨 곧 사단의 씨입니다(요일3:12).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나님의 씨가 들어가 있으면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 가인의 속에 사단의 씨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가인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마음속에 거하여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씨가 들어 있는지 사단의 씨가 들어 있는지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셋에 대하여 다른 씨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씨를 주셨다는 것은 살인자 가인의 씨가 아닌 하나님의 씨입니다. 곧 이 말을 바꿔서 말하면 가인은 살인자의 씨앗으로 악한 자에게 속하여 동생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요일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가인의 행위는 악하다고 하였으므로 가인은 아벨을 죽이기 전에도 악한 행동을 한 자입니다. 이러한 가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씨가 되겠습니까?

선한 자가 선한 말을 내고 악한 자가 악한 말을 내는 것입니다. 먹물이 들어있는 가죽 부대에 하얀 물이 나오지 않고 검은 먹물이 나옵니다. 맑은 물이 들어 있으면 맑은 물이 나오고 검은 물이 있으면 검은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이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더러운 말이 나오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깨끗한 말이 나오고 마음에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의 말이 나오고 마음에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들어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가 있고 그 사람이 어떠한 씨앗인가를 알 수가 있고 그 사람의 종자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릴 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렘31:27~28). 오늘 이 세대가 그러하며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씨의 비밀은 열매를 보고서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마7:20).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속건제물(贖愆祭物)이라는 것은 바꿀 속, 허물 건, 즉 제물과 허물을 바꾸는 것을 속건제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라는 어린양의 제물과 많은 백성의 허물과 바꾼 것입니다.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라는 것은 예수님이 속건제물(贖愆祭物)을 드림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씨는 예수님은 아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씨가 들어 있으므로 예수님과 같은 자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씨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는 씨앗 속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 밭을 개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간하지 않고 마음 밭에 잡초가 들어있고, 심령이 복잡하고, 생활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얽힌 것이 많다면 뱀의 마음이 생겨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서 꽃뱀 노릇하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체, 없으면서 있는 체 하면서 체면만 유지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런 똬리 같은 꽃뱀이 들어오지 않게 하려면 여러분의 마음 밭을 개간해야 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잡초를 다 뽑아내야 합니다. 잡초 밭에는 뱀이 있으나 잡초가 없는 깨끗한 밭에는 뱀이 없습니다. 요즘엔 제초제를 뿌려서 다 뽑아 버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제초제입니다. 이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마음속의 잡초를 다 제거해 주시고 똬리 틀고 있는 뱀들을 다 뽑아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종말의 구원은 의인들의 구원이므로 살인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음 밭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 밭을 깨끗하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마음 밭이 청소가 되고, 잡초가 제거 되고, 그 밭이 더욱 옥토 밭이 되는 것입니다. 땅이 좋으면 잡초가 더 잘 자라듯이 산골짜기 밑에 옹달샘이 있는데 사슴이 와서 먹으면 사슴이 살찌고 뱀이 와서 먹으면 뱀이 독을 더 잘 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 밭에 악을 제거하고 잡초를 제거해서 여러분의 심령을 깨끗하게 함으로 예수님이 뿌리신(막4:14) 말씀의 좋은 씨로(마13:37) 구원 받기를 원합니다.

마13:37~38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으니 곧 셋이라고 했고 셋은 가인과 다른 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좋은 씨를 맺는 좋은 나무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이 항상 넘치길 원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좋은 씨가 됨으로 말미암아 셋의 시대로부터 여호와를 제일 처음으로 부르는 메시지가 전달 된 줄 믿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돌이 가까이 올 때 아기의 첫마디 “아빠” 라고 부를 때 가장 귀엽습니다. 셋의 시대에 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 부른 것입니다(창4:26). 여러분,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귀한 자들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더욱 셋과 같이 존귀한 자로 축복 주실 줄 믿습니다.

“셋”은 가인과 다른 씨였습니다. 오늘날 이 세대의 종교는 가인의 종교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이 세대의 알고 있는 믿음의 씨를 가진 자들이 아니요 셋과 같이 여호와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다른 씨입니다.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인치신 “셋”과 같은 하나님의 씨요 숨겨졌던 마지막 씨입니다. 예수님이 뿌리신(막4:14) 좋은 씨로(마13:37) 구원이 보장된 거룩하고 존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