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세례로 열린 하늘

본문말씀 : 마태복음 3장 13~17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람이 신의 소리를 듣는다, 들었다 하는 것은 거의가 다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신의 소리를 듣는다, 들었다, 지금 나한테 뭘 알려주고 있다. 새벽마다 알려주고 저녁마다 알려준다. 그들은 천당사기꾼들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렇게 개인에게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혹은 수백만 명을 인도하는 선지자라든지 하나님께 내세의 세움을 입은 자라면 모르지만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다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신과 교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신이 되지 않고는 신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사람하고 대화를 잘하려면 우선 내가 미국 사람이 되어서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면 내가 하늘 사람이 되어서 하늘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영어로 통화할 수가 있으며, 하늘의 말을 기록한 성경을 읽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과 교통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대화하는 것 같이 그렇게 나타나심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 자연을 보고서 ‘아 정말 아름답다, 누가 이 예쁜 꽃을 이렇게 만들었겠는가, 누군가는 처음에 만든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시겠는가, 하나님이 정말 우주만물을 이렇게 잘 만들었구나, 저녁 공기도 서늘하고 저 밝은 달도 아름답고 달 앞에 지나가는 구름도 아름답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에 대자연의 속에서 신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아주 경관이 좋고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거기서 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창세로부터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위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고서 하나님이 없다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아주 오묘한 말씀을 듣고 자기 마음을 두들겨 주는 말씀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은 신으로부터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지만 무엇인가는 내게 깨달음을 주고, 내게 지적을 해주고, 내게 알게 해주고 내게 기적을 주시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깨달음이 있을 때에 신과 교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있는 것을 자랑하고 또한 그 사람에게 돈과 권력을 달라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돈 많은 것을 자랑하고 권력 있는 것을 자랑해봐야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쳐다보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조용한 가운데서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됩니다. 내 마음을 비우고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는 지혜가 올 줄로 믿습니다. 그때 믿어지는 큰 믿음이 있을 때에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진리의 성령이 될 줄로 믿습니다.

곡식은 익어 가면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가라지는 아무리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빳빳하게 서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일수록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오예물(汚穢物)처럼 버렸노라 내가 나를 버림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라” 고 고백한 것처럼 하늘에 속한 사람은 늘 나를 낮추는 겸손한 생활임을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만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고 구약의 지는 해였습니다. 사천 년 동안 떠 있던 구약의 태양 곧 세례 요한을 끝으로 해는 지고 신약의 태양이 예수로 말미암아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는 해와 돋는 해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지는 해는 가까이 있어도 힘이 없고 돋는 해는 멀리 있어도 빛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빛이었고 예수님은 신약에 뜨는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3:13~14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영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본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렇게 말을 아무나 할 수가 없습니다. 참 겸손한 선지자의 말이었습니다.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기록된 말씀은 참으로 대단한 예수님의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이 땅 위에 오셨고,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며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머지않아 이 땅에 없어질 지는 빛을 보고 “나에게 세례를 베풀라 허락하라. 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로 오신 분이 지는 태양을 보고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희생적인 말씀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사람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하고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직을 떠나는 사람과 대통령직을 이제 맡은 사람은 만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세례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라는 뜻은 씻을 세(洗)자, 예도 례(禮)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씻고 마음도 씻어 모든 더러운 것을 씻는 하나의 의식을 세례(洗禮)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에 때가 많고 더러운 사람도 물에 씻어야 되겠지만 때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안한다면 피부의 아름다움과 모양은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때가 없는 사람이 씻으면 주변의 물도 깨끗하고 때가 있는 사람이 몸을 씻으면 깨끗한 물이 더러워질 것입니다.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은 너하고 나하고 협력해서 의를 성취하자는 뜻입니다. 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나보다 못한 자이지만, 주님께서는 그와 손을 잡기 위해서 더 낮은 자세로 머리를 숙이고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는 것은 마치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로부터 복 빔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낮아질 때에 하늘의 큰 합당한 뜻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 세례는 침례의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많아서 죄를 씻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아닙니다. 원래 세례 요한이 베푸는 세례는 어떠한 세례였는지 보시겠습니다.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회개의 세례는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잘못한 것이 있어야만 뉘우칠게 있는 것인데 잘못한 것도 없고 뉘우칠 것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 뒤에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이를 요한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신발 들고 다니는 종노릇하고 하인 노릇을 할 자격도 없으므로 자신은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이조시대 때 신을 들고 다니는 자는 하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인에 해당된 자고 예수님은 주인에 해당된 자인데 하인으로부터 세례 받으려고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의(義)로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 회개케 하는 물세례와 성령과 불의 세례 하고는 족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과 불의 세례를 베풀어야 될 예수님께서 고작 물세례를 베푸는 요한에게 가서 “내게 세례를 베풀라 이렇게 하여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 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자신들이 낮아지고 또 낮아질 때에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값있는 진정한 세례인 것입니다.

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자기 교회 집사님이 받으러 왔으면 그냥 평범한 기도를 하게 되지만 외국에 있는 대통령들이 와서 “목사님이 훌륭하다는 말씀 듣고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하면 그 기도를 베풀고 안수를 해주는 사람이 보통사람 안수해 주는 것 하고는 생각이 다른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물에 잠겨서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창조됨을 말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물에서 탄생을 했습니다. 물에서 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물에서 탄생을 했습니다. 땅과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물에서 탄생을 했고 또한 모든 생물도 다 물에서 탄생을 했습니다.

벧후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기록된 말씀과 같이 땅도 물에서 왔으며(창1:9~10). 사람도 흙으로 창조되었으니까 땅에서 나온 줄로 믿습니다(창2:7). 모든 생물은 물이 없으면 그 생명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땅의 모든 생명체가 물에서 나왔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다시 태어나셨을 때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보시겠습니다.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그 전에는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짜 세례 말고 진짜 세례를 받으면 하늘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하늘이 열리지 않은 세례는 가짜 세례, 천당 사기꾼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이러한 세례야 말로 참 세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과 깨달음으로서 참 세례를 받으면 성령이 감동함으로서 성령을 받을 수가 있고 참 세례를 받으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하늘이 보이는 것이고 하늘 문이 닫히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안이 환하게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한 것을 보니까 성령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도 보았다는 것은 바로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의 세계, 미지의 세계를 바라본 것입니다. 이것이 참 세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로 말라기부터 예수님 때까지 사백 년 동안 닫혀있던 하늘이 예수님의 세례로 열렸다는 것입니다.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에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소리가 하늘에서 났을까 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귀가 열린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나서 귀가 확 열려버렸습니다. 귀만 열린 것이 아니라 눈이 열리고, 입은 자동으로 모든 것이 다 열리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받으신 물세례였습니다. 영안이 열려서 하늘에서 되어 질 모든 세계를 훤하게 보신 것입니다.

계시(啓示)라는 것은 ‘열어서 보여 준다.’ 는 뜻이 되고 미래에 되어 질 일을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앞서 미리 보여주고 알게 하여주고 깨닫게 하여 준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심을 보시고 하늘의 소리를 들으시고, 축복의 소리를 직접 들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는 그 소리를 들으셨던 것입니다.

뱀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천둥벼락을 쳐도 왜 뱀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가? 그 이유는 뱀은 귀머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뱀은 귀 조직 자체가 없습니다. 뱀 옆에 가서 총을 쏴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뱀은 온 배를 바닥에 쫙 깔아 붙이고 아주 미세한 진동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사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23:33). 또한 성경에는 귀머거리 뱀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42:18~19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바로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주의 종들이 뱀노릇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밤마다 “주여, 주여” 를 외치면서 밤낮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리는 자들로서 참으로 대단합니다. 제가 가까이 있는 기도원에 가보니 마이크를 앞에 대놓고 “주여~” 외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땅바닥을 치며 “주여, 주여” 합니다.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친하면 작은 목소리로도 한마디만 기도하여도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큰소리로 기도한다고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큰 소리로 주여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입니다(요4:24).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하고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찬송을 할 때에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네” 하나님을 떠나 예수님을 떠나서 멀리멀리 가니까 슬프고 외롭고 괴롭고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도가 길지 않습니다. 짧아도 들어줍니다. 믿음 있는 자의 기도는 짧아도 강하고, 굵고, 감동 있는 성령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할 때에도 짧고 굵습니다. 같은 값이면 “멀리멀리 갔더니…” 찬송보다도 “더 가깝고 더 가깝다” 라고 찬송 부르면 더 좋은 것입니다. 처녀, 총각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가 더 가깝고 더 가깝고 더 가까워지면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미 혼인한 자라고 할지라도 두 사람 서로가 “멀리 멀리 갔더니” 하면 이혼하는 길로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그(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엡2:13).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영계가 훤하게 열리고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소리를 하나님께 들었으니 얼마나 모든 일이 자신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전달 됐다면 하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자신 있고 용기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하늘이 열린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하니 그게 잘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되려고 하다가 부서지고 망가지고 하는 것이죠.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라도 물질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보화인 것입니다(골2:2~3).

이러한 세례를 받으신 우리 주님께서 참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례를 받아 하늘 문이 열리고 영안이 열렸지만 이것을 가지고는 안되겠다.” 많은 기사와 이적과 표적까지 행하였지만 이 땅 위에 나를 위한 불이 붙지 아니하였으니,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불을 붙이기 위하여 다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다시 세례를 받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나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불을 붙이러 왔는데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불이 붙었다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람들이 성령의 불이 붙어서 온 예루살렘과 유다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도 예수님편이 되어서 전부 불이 붙었어야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였으나 그것을 다 먹고도 예수님한테 찾아가서 붙는 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라고 하였으니, ‘생명이 없다면 영적으로도 산자가 아니요, 죽은 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을 봤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함으로 “예수님이 돌았구나, 인육을 먹으라고 하는구나, 또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면 영생한다고 하니 저런 미친 주가 어디 있느냐. 내가 저런 예수를 따라 다니다가 우리까지 미친 자가 되겠구나.” 하고 예수님의 제자 되었던 자들이 “나 예수 제자 안한다.” 하고서 많은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물러가고 남은 제자가 열 두 제자였습니다. 남은 것이 열 두 광주리였으며 이는 열 두 제자였습니다.

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바 있는 예수님이 나는 나의 받을 세례가 또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받은 물세례 말고 받을 세례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불을 붙이려고 왔는데, 불이 붙지 아니하였으므로 나는 불을 붙이려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두 번째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세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는 오순절에 성령의 불로 이 땅에 태울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두 번째 받을 세례는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의 세례였습니다. 너희들은 나의 받을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시므로 제자들이 “예, 우리도 주님께서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나이다” 라고 큰소리 쳤으나 있기는 뭐가 있겠습니까. 십자가상에서 주님 제자들은 다 도망간 녀석들입니다.

막10:38~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십자가) 다 마실 수 없지만 혹여 다 마신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축복은 열 두 제자가 아니라 훗날에 다른 사람이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혹시 나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이 같은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재판 받을 때에 베드로 앞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예수님 재판 받는 것을 구경하던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당신 예수님 제자죠?” “아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니는거 봤는데요? 맞잖아요?” “아니다” 또 다른 아이가 찾아와서 “이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따라다니던 제자 맞는데” “아니다” 하니까 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걸 보고 베드로는 통곡하면서 뉘우침에 울었으나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겠다고 하던 자들이 아무도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받으신 육신적인 큰 고통을 안겨주는 십자가의 세례를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두 번째 받는 세례를(눅12:50) 받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십자가였으므로(벧전3:18) 이미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자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라고 이미 과거사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천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은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 생명 가운데 행한 자 되고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롬6:3-5).

이 말씀을 받기 전에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 누구하고 세례 받았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모두가 예수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답변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너희가 예수와 합하여 세례 받은 것을 왜 알지 못하느냐?”고 이렇게 기록해 놓았어도 오늘날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 까지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리스도 이후 오늘날까지 요한의 물세례(마3:11 회개)를 행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상의 세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십자가 찬송은 부르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한 자들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올 때에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눅18:8).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거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생명은 예수님과 함께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생명 가운데 여러분들이 거한다는 것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나 이렇게 많은 이십억의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마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변화산상의 그리스도의 옷은 얼굴이 변형되사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하였으며, 천오백년 전에 죽은 모세와 천년 전에 죽은 엘리야 같은 선지자를 만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옷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자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갈3:27).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러분! 성경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이미 믿은바 된 자가 될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은 자만이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의 귀가 열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자들은 하늘 문이 열리면 이 세상에 마땅히 앞으로 되어 질 일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깨닫기를 바랍니다.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본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사람, 예수와 함께 고난을 같이 받은 사람, 예수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을 함께 받게 된 자들 이런 자들이 바로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서 하늘보좌를 보게 되고 하늘보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귀가 열리고 영안이 열리고 입이 열려서 온 세상의 많은 죽어가는 중생들을 살리는 귀한 자들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