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17. 천국과 기름

본문말씀 : 마태복음 25장 1~12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성경의 마태복음 13장 34절에 보시면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심으로 이것은 천국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요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천국과 기름에 관한 내용을 밝게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나무가 봄에 싹이 날 때 보고 한 2, 3개월 있다가 보면 잎이 많이 나서 우거져 있습니다. 모양새가 다릅니다. 또 얼마 있다가 보면 감나무가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려서 없던 과일이 생겼습니다. 또 추수 때 가보면 파랗게 달렸던 감이 빨간 홍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때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다르고 때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알게 하여주시는 일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 섭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시면 열 처녀가 있는데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신랑은 예수를 상징한 것이요, 처녀는 바로 우리 신앙인들을 상징한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마는 오늘 이 말씀은 신랑 예수와 처녀 신부를 두고 한 말씀이 아니라 천국 자체를 열 처녀로 비유하여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에 관한 말씀으로 논술되어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느냐, 미련한 처녀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냐에 관한 말씀인 것을 말씀 안에서 증거 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의 비유를 지금까지는 신랑은 예수님이요, 여기 나오는 처녀들을 신부로 비유한 것이라고 알아왔는데, 이 말씀의 근본은 신랑 신부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천국에 관한 말씀으로 다시 수정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때에 천국은”이라는 것은 천국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천국을 비유로 말하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등과 기름을 갖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를 비유로서 열 처녀와 같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잘 듣고 천국에 관한 확실한 구원의 길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열 처녀가 있는데 절반은 지혜롭고 절반은 미련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알기로는 슬기로운 자들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서 기름 준비를 하고 미련한 자들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우지 않고 바닥에 아주 조금 채울 정도로만 갖고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슬기로운 자는 등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 더 가진 것이 있으니 기름통을 하나 더 들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등과 기름통, 두 개를 들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확인해 봄으로서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오던 말씀의 내용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아주 밝아지시기를 원합니다.

마25:2~4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한 손에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들고 또 한쪽 손에는 등을 들고 예비 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간 자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입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등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등과 기름통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등도 들고 기름통도 드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군인 지프차에 보시면 차 뒤에 기름통을 항상 달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전쟁 시에는 주유소가 없기 때문에 언제 기름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기름이 떨어질 그때 사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다닙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등불 외에 내게 기름통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는지 못 가는지가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라고 한 것은 천국이 이루어질 때가 되면 어딘가는 모이는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비유로 말했는데, 비유는 실상이 아닌 실상과 비슷한 것을 들어서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다 등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슬기로운 처녀가 깨어 있어서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슬기로운 처녀도 졸며 자고 미련한 처녀도 졸며 잤습니다. 지금 잘못 배우고 생각해 온 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자세히 보니까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습니다. 졸며 잔다는 것은 마음 편히 자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차를 타고 우리 교회까지 온다고 가정을 할 때, 교회 앞에서 내려야 된다고 머리에 입력을 하고서 가는 중간에는 끄덕끄덕 졸면서 여기가 아니구나 하지만 교회 앞에 도착하면 이상하게도 잠이 확 깹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기 마음에 기(氣)를 교회까지만 넣은 것입니다. 내가 가는 차가 교회까지만 편안히 가면 되는 것이지, 차에서 내리고 난 뒤에 내가 탄 차가 잘 갔는지, 가다가 교통사고 났는지 걱정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타고 가야 될 목적지까지만 잘 갔으면 그 뒤에는 차가 박치기를 하든지, 차가 큰 사고가 나든지 기억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졸며 자는 상태는 걱정하면서 자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원래 이스라엘의 풍습은 신랑이 밤중에 오는 것이 아니고 새벽에 와서“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고 신랑과 함께 온 자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신부가 미리 등을 준비했다가 등을 들고 문 앞에까지 나가서 신랑을 맞이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풍습과 비슷해서 대문 앞마당에 불을 피워 놓은 곳을 밟고 건너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옛날 풍습에 대문 앞에 불을 피워 놓으면 가마꾼이 신랑이나 신부를 태운 가마를 메고 밟고 지나갑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살아가는 복이 불같이 잘 일어나라고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같이 새벽에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러 나오는 것인데, 성경의 기록에는 신랑이 밤중에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고 외치며 신랑이 왔으니까 신랑이 예정시간보다 더디 온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보면 일찍 온 것입니다. 새벽에 와야 될 신랑이 새벽이 되기 전 밤중에 온 것을 보니 신랑이 예정시간 보다 많이 일찍 온 것입니다.

“신랑이로다. 신부들아 맞으러 나오라!”하고 광고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랑이 올 때에 광고해 주는 사람이 좋겠는가? 신부가 더 좋겠는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랑이 오는 것은 신부가 제일 좋아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온다고 광고해 주는 심부름꾼이 아니면 신랑이 오는 것을 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왔다고 광고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면 신부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새벽에 올 줄 알았던 신랑이 밤중에 왔으니 당황하고 난리가 난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고 광고해 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광고 나팔, 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교회가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 할 때 메시지를 들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로 작정된 축복받은 자들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밤중에 와서 맞으러 나오라 했습니다. 밤중이라는 것은 실상의 낮과 밤을 말하는 밤중이 아니라 초저녁에 왔어도 성경에 신랑이 더디 왔다고 했으면 더디 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을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이 밤중이란 의미에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상의 비밀도 밤중에 다 이루어집니다. 국가 정치인들도 비밀리에 무엇을 할 때 밤중에 여관이나 호텔에서 사건을 만들고, 남녀의 비밀도 전부 밤중에 여관이나 호텔에 가서 사건을 만듭니다. 전쟁도 낮의 전쟁보다 밤중의 전쟁이 더 치열합니다.

기록된 말씀에서의 밤중은 어둠이 아주 짙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밝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 누가 말하기를“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다면서?”라고 놀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둠에 속한 어두움의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 되어 진 일을 모르고 있었던 캄캄한 어둠에 있던 사람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 칠십 명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야곱이 가족 칠십 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사백삼십 년을 지내는 동안 그 자손들의 인구가 많아져서 이십대 이상의 장정만 육십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숫자가 많아지니까 애굽의 바로 왕이 생각하기를 혹시 적군이 쳐들어 올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합세를 한다면 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대적자가 될 것이 아닌가 하고서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에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 민족이 앞으로 아들을 낳으면 산파를 통해서 아기를 죽이게 하라고 지시 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아기가 태어날 때에 아들을 낳으면 죽이기도 하고 산파가 감추기도 하는 사건들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이후 사백삼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위하여 애굽 땅에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축복이 어떻고 이삭의 축복이 어떻고 야곱의 축복이 어떻고 그런 축복에 관한 메시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인지 여호와가 누구인지 이름도 들어 본 사실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애굽에서의 사백삼십 년의 캄캄함이었습니다.

영의 세계가 어두운 밤중인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사백삼십 년 동안을 간악한 바로의 말굽과 채찍 아래에서 종으로 살아 왔던 것입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보면 사백삼십 년 간 지속된 한 밤중에 나타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모세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그렇게 말하였을 때 애굽에 있는 형제들이“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게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답변을 하리이까?”이렇게 문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땅에 선지자들을 보내지 아니하여 모세 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캄캄한 밤중이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천국이 이루어질 때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밤중에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한 외침이 있다는 것입니다(마25:6). 열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리며 졸고 있는 밤중은 실상적인 낮‧밤의 밤중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으시기를 원합니다.

출3:13~14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모세는 애굽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스스로 난 자가 보냈다고 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스스로 나신 분입니다.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자기가 축복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았고 부름 받고 선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백삼십 년 동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흑암 중에 있다가 모세가 애굽 땅에 나타남으로써 자기 조상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빛이 누구로 왔는가 하면 애굽 땅에 나타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빛으로 온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조상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세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정만 육십여만 명, 여자가 육십여만 명, 어린아이들까지 해서 이백만 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출애굽을 해서 고향 땅을 향하여 출발한 것입니다.

애굽의 광야의 길은 천국 노정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약성경 말라기와 신약성경 마태복음은 한 장 차이지만 사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한 흑암 시대였습니다. 모세 이전 애굽의 사백 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등불(선지자)없는 흑암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지도자가 없는 세상 곧 흑암의 세상이요 흑암의 세상이 결국 개판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보낸 율법이 아무런 효력을 발하지 못하고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이려고 하는 율법만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빛의 선지자로 나타나는 자가 아무도 없는 그때에 작은 등불로 나타난 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요1:6~8). 더 큰 빛으로 나타난 자가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요1:9~14).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신랑을 맞이하는 것은 실제로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을 신랑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마25: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이와 같이 천국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자는 천국 갔다고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밤중에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밤중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굽의 사백삼십 년 밤중과 말라기 선지자 이후 사백 년의 밤중과 같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때에 상상도 못하는 영적 흑암의 밤중에 신랑(천국)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하는 메시지가 들리게 될 것입니다.

천국이 언제 이루어지겠는가? 하고 상상도 못하는 밤중인 것입니다. 천국이 새벽에 열리겠느냐? 이런 것은 믿지도 아니하고 믿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때에“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것은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하는 뜻은“천국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메시지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천국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것을 비유로“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였기 때문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때의 비밀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때의 한밤중에 하나님의 나라, 지상천국이 별안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때가 한밤중입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이 죽는 즉시 천국에 가는지 심판 때에 천국에 가는지 예수 재림 때에 천국에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한밤중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천국을 신랑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밤중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지 아니한 때에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나라 지상 천국이 오게 될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엄청난 하나님의 모략과 약속이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틀림없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축복이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마25:7~8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등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무엘이 나타났을 때가 이스라엘이 최고로 타락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사무엘 같은 선지자를 등불로 세워 주셨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21장 17절의 말씀에 보시면 다윗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죽기 직전에 마침 아비새라는 부하가 지나가다가 자기의 왕 다윗이 포로가 된 것을 보고 도와서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고 다윗을 구원하고 말하기를“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도 등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등불이라는 것은 지도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 때의 지도자 등불은 모세였고, 예수님 때는 지도자가 세례 요한이었으며 예수님은 온 세상의 등불이셨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등불이 꺼져가니 라고 말한 것은 천국에 들어갈 기름을 비유로 하면 신랑을 맞이할 밝은 빛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를 세상의 등불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한다면 이순신 장군 같은 분, 세종대왕 같은 분은 나라의 백성들이 본받을 만한 민족의 등불이 되신 분들인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통을 가진 지혜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만 들고 간 것이 아니라 기름통을 들고 갔습니다.

마25:6~7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의 입장에서 봤을 때“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였을 때는 신랑이 오기 전에 이미 깨어 있었습니다. 깨어 있었으나 등에 기름이 없으므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잤으나 기름 준비만 되어 있으면 졸며 잤다고 할지라도 신랑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파수대라고 하는 여호와 증인들을 보면“깨어 있으라”라고 하는‘파수대’책을 가지고 전도하러 다닙니다. 육신이 깨어 있고 안 깨어 있고 하는 것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슬기로운 자나 미련한 자나 천국이 올 때에는 다 깨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사11:9, 히8:11, 합2:14).

“깨어 있으라”하는 것은 천국이 올 때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외치지만 미련한 처녀도 신랑이 오기 전에 깨어 있었지만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깨어 있지 아니하여도 기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신랑(천국)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기름 준비 되었느냐, 되어 있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여 천국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름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무슨 기름이냐 하는 것입니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안다고 했으므로 기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기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아는 것은 여러분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요일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

모든 것을 아는 것이 기름이라고 했는데 안다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을 받으면(요 16:13~15)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2:10~11). 그러면 진리는 무엇인가 보시겠습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기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는 일입니다.

이렇게 오늘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신랑을 영접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름 부음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됨으로써 신랑 천국을 영접하는 귀한 자들로 축복 되셔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자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