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16. 빛과 소금이 되라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13~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들도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왜 주님께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여러분 자신들이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13:10~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오늘 이 말씀도 빛과 소금에 관해서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막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어서 여러분이 아는 상식을 뛰어넘어 다시 해석된 말씀으로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요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비사로 기록된 빛과 소금에 대해서 밝히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빛이라고 말하면 햇빛을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실내에서는 전등 빛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빛은 이런 실상의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5월은 잔뜩 푸른 녹색 빛으로 온 세상을 바꿔놓았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새 빛입니다. 앙상하던 나뭇가지가 푸르고 싱싱한 꽃을 피우고 잎을 피워서 온 세상이 녹색으로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불과 한 두 달쯤만 해도 앙상한 나뭇가지들 뿐이었는데 온 세상이 푸른 녹색과 연두색의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자가 신문에 보니, 이 사람이 사법고시에 제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얼굴빛이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제 보던 얼굴빛하고 오늘 보는 얼굴빛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변화된 얼굴 모습을 가지고 변화된 빛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부 사람을 두고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비유한다면 천체로는 예수님을 하늘의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시고(계22:16) 광물질로는 머릿돌이라고 말씀하셨고(행4:11) 식물로는 참 포도나무라 말씀 하셨고(요15:1) 꽃으로는 산곡의 백합화(아6:2~3)로 비유를 했습니다. 백합화 향기는 바람이 불면 6㎞까지 날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로(고후2:15)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에 아주 비천한 자로 태어나셔서(사52:13~15)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함으로, 애굽으로 피난 가는 능력이 없고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자리에 있었지만(사53:2~3) 오늘날 이 시대에 그리스도에 대한 빛은 그리스도를 아는 일로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가득합니다(요8:12).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행26:18).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존경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빛, 존경의 빛, 많은 사람의 본이 될 수 있는 희망의 빛, 그런 빛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소금이 되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고 그 다음에 빛이 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금도 천일염이라고 있는데 바닷물을 모아 자연적으로 들어온 물을 말려서 증발되고 떨어져 나온 소금 즉 자연으로 만들어진 소금을 가리켜서 천일염이라 하고 인공으로 해수를 증발시켜 만든 소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석 소금이 있는데 필자의 방에 들기 힘든 큰 소금 덩어리가 하나 있는데 가로가 34cm, 세로가 55cm가 되는 소금바위로 그 속에다 구멍을 뚫어서 전깃불을 켜 놨더니 소금 빛이 붉은 색의 불빛으로 아주 멋이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이 제 방에 항상 있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한 것은 사람을 소금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소금은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랑할 때는 참 맛이고 조금만 비뚤어져 버리면 얼굴빛이나 말의 음성의 고조까지도 맛이 달라져 버립니다. 말하는 맛도 달라지고 얼굴 인상 맛도 달라지고 행동 맛도 달라지고 다 달라집니다. 그러나 소금은 변질이 없습니다.

자기 몸 덩어리가 크게 되어진 소금 덩어리가 다 녹아서 마지막으로 밤알 만하게 남아 아주 작아질 때에도 변질이 없습니다. 곧 죽는 순간까지도 변함이 없는 것이 소금입니다. 정말 소금 같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연애할 때는 “정말로 이 남자하고 살면 행복 하겠다” 생각해 놓고 신혼여행 가서 이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을 소금으로 비유한 것이지 진짜 소금을 가지고 소금이 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진짜 소금이 되면 롯의 처가 되는 것입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19:26). 그러므로 롯의 처가 되어서는 안 되고(눅17:32) 소금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신앙인격을 가진 참 맛이 성경이 말하는 참 소금의 맛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라고 경고한 것입니다(마5:13).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맛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떫은 맛, 어떤 사람은 달콤한 맛, 어떤 사람은 시큼한 맛, 어떤 사람은 떨떠름한 맛, 이같이 사람마다 맛이 있지만 같은 값이면 단 맛을 내는 사람이 좋은 소금의 사람입니다(벧전2:3). 기왕에 떫은맛을 내야한다면, 계속 떫은맛을 내면 그 맛 가운데에서도 또 맛이 납니다. 모과는 신맛을 내지만 모과차는 사람 몸에 정말 좋습니다. 모과가 신맛을 냈다가 단 맛을 냈다가 하면 모과로써 값어치가 없을 텐데 모과는 한 가지 맛만 냅니다. 마찬가지로 소금은 짠 맛을 냅니다. 그 짠 맛이 부패를 방지해 줍니다.

옛날 얼음이 없던 시절에는 고등어를 바다에서 육지로 가져오는 동안에 다 썩어버려서 소금에다 아예 푹 담가 가지고 와서 어쩔 수없이 생선이 절인 소금같이 되는 것입니다. 안동 같은 곳은 바다하고 육지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소금에 절인 생선을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지 연구하다 보니까, 안동 간 고등어가 유명해진 것이지 바닷가에 있었으면 유명해 질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금은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오늘 한 말 다르고 내일 한 말 다르면 누가 그 사람을 따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1987년 9월 14일에 지상 천국이 온다고 신천지 이만희 씨가 말해 놓고 천국 날짜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맛이 가 버린 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도 정신 이상이 된 사람을 보고 맛이 갔다고 하는데 맛이 변질이 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맛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사람이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인면수심(人面獸心) 즉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데도 쓸데가 없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밟히며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 사람은 변하지 않는 맛을 가진 자로서 천일염 같은 소금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생활은 지금 어렵고 가난해도 반드시 일어나서 성공할 사람입니다.

큰 기업체를 운영하고 많은 돈이 있고 직원들이 많아도 맛이 변하여 변질된 사람, 오늘 이 말했다가 다음날 말이 바뀌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 할 수 없습니다. 변하고 거짓말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재산이나 돈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부분을 잃어버리는 자가 되지만 신용을 잃으면 인생의 절반을 잃은 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여기서 밟히고 저기서 밟히는 인간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성공을 하려면 젊을 때 열심히 피나는 노력을 해야지 인생 말기에 가서 작은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데, 성경의 약속대로 홀연변화를 받아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마음의 약속이 확실하게 있다면, 맛을 잃은 소금을 음식에 사용할 수 없는 것 같이 변질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천일염 같은 소금인지 아니면 맛을 잃은 소금이 아닌지를 자신이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신앙 인격의 소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소금이 변질 되었으면 구제의 길이 없으므로 여러분 자신들이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민18:19)의 생활하는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바닷물이 햇빛을 받음으로 증발하고 자기 몸을 증발시켜서 남은 것이 소금이 되는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리 말씀의 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알차고 단단한 소금으로 축복되시기를 원합니다.

야외 숯불구이를 하면 양념 숯불 고기가 맛있을 것 같아도 소금구이 맛은 당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의 맛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만약 소금이 없다면 이 세상을 무슨 맛으로 살아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도 맛이 있습니다. 북한 땅에 사는 맛하고 남쪽 땅에 사는 세상의 맛하고 그 맛이 다른 것입니다. 며칠 전에 평양에서 온 예술 단장이 왔는데 그 어머니가 한국에 온 지가 얼마 안 돼서 남한 땅에 와서 느낌이 어떠한지 물어보니 천국에 온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남쪽에서 전단지가 날아오면 전단지에 작은 사탕이 몇 개 붙어 있어서 그것을 먹으려고 하면 그 속에 독약이 있어서 큰 일 난다고 하여서, 사탕을 전단지에 달지 않고 미화 1달러씩 붙여서 전단지를 북한으로 날려 보냈더니, 그 전단지를 북한 경찰서에 신고하지 아니하면 흔적도 없이 그 사람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전단지가 공중에서 떨어지면 그것을 보기만 하고 곁에 가지도 말고 가서 신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전단지를 보기만 해도 형사 처벌을 받으니까 아무리 친해도 언제 누가 고발했는지 모르게 잡혀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여행 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가자면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갑니다. 평양 사람들은 평양을 벗어나서 아무 곳도 가지 못합니다. 평안북도에 사는 사람이 평안남도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이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 지방 사람들은 평양에 가서 사는 것이 소원들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배급도 없고 피눈물 고생하다가 탈북하여 한국에 와서 보니까 여기가 천국인가라고들 합니다. 평양에 사는 맛하고 북한 땅 시골에 사는 맛하고 서울에 사는 맛이 다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의 말씀을 증거하고 간증의 말로 은혜를 받는 교회의 맛하고 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하는 교회의 맛하고 신앙하는 맛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은 천년만년이 가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소금 같은 말씀이고(마5:13) 세상 이야기와 자기 간증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하나님 말씀과 같지 않은 맹물 맛입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한 것은 그 소금이 된 사람을 하나님이 완전히 인정해 준 것입니다. 소금만 되었다면 이 사람은 천국을 맡아 놓은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처럼 자기 자신을 녹여서 상대방에게 맛을 전달하는 자를 소금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날 가증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자랑하여 다른 사람보다 유명인처럼 높여서 사람을 끌려고 하지만 참된 양 떼의 목자가 된 사람 소금이 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신도들에게 믿음과 소망의 맛을 주는 자입니다.

말(통)아래 둔 등이 되지 말고 등경 위의 등불이 되라고 했습니다(마 5:15). 등불은 기름을 녹여서 자기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양초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태우고 녹여서 세상에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소금이나 등불이나 혹은 촛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불태우고 녹여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자기 자신을 세우지 말고 그리스도를 세우고 자기 자신을 녹이고 낮추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그 사람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마 5:16). 이는 세상 사람으로부터 본받을 만한 일,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는 그 자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여러분이 참다운 소금이라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착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착한 행실이 나옵니다. 착하다는 것은 마음이 곱고 어질고 선(善)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에 초창기 때 교만한 사람들이 왔다가 갔는데 어떻게 전도 받아서 왔냐고 하니까 시간 있으면 따라가자고 해서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 왔다고 합니다. 와서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지만 그런 식으로 전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소금처럼 녹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소금이 되는 것이지 옛날 권세와 기백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복음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진 천국의 씨가 됩니다.

“너희는 소금이니” 한 것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진리의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나님의 참 사람으로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선 세상 사람들 보기에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 도와주고 옆집의 불쌍한 사람의 힘이 되어 주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난 뒤에 하나님의 교회에 빛이 되는 것이지 세상에도 빛이 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에 무슨 빛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에게 전도하러 온 사람이 십 년 전에 돈 떼어 먹고 와서 자기 다니는 교회에 가자고 하면 사기꾼이 다니는 교회가 오죽하겠냐고 하면서 따라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상에 빛이 된 자가 아니요 사기꾼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이 된 사람은 내가 참 좋은 목사님을 만났는데 같이 가자고 하면 볼 것도 없이 자동으로 전도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난 뒤에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한 말씀을(요15:8)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빛을 창조하실 때 창세기 1장 3절에 보시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라고 했습니다. 이 빛은 태양빛이 아닙니다. 태양빛은 넷째 날에(창1:14~19) 만들었습니다. 첫째 날에 만든 빛은 생명의 빛이었습니다(창1:1~2).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 안에서의 생명의 빛이 참 빛이요 사람의 빛입니다. 그래서 좋은 말씀은 이 세상의 어떤 훌륭한 분과도 바꿀 수 없는 말씀 곧 인생에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생명의 빛을 먼저 지으신 것입니다. 첫째 날의 빛이 바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빛입니다(요1:3~5).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빛은 세상에 비치는 생명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빛은 곧 예수님의 빛입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새로운 생명의 빛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받으면 활기가 차고 마음이 젊어지며 살맛이 납니다.

이 말씀을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야지 생명의 빛을 받는 것입니다. 반만 믿고 반은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진주를 캐는 사람이 바다가 무서워서 뛰어들지 못하고 배에서 한쪽 발만 내렸다가 올렸다가 하면 십 년을 가도 진주를 바다에서 캘 수가 없습니다.

진주는 바다 밑에 있는 조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다이빙을 해서 들어가 하루 종일 아니면 몇 날, 며칠 간 조개 여러 개를 줍다보면 그 중에서 한 두 개의 진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바다에 투신하는 자가 진주를 캐는 것과 같이 예수의 바다 곧 성경의 바다에 투신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큰 회사에서 이사의 직분을 받게 되고 사장이 되고 전무가 되는 사람은 그 회사에 투신한 자입니다. 몸을 던져서 희생 봉사한 모범된 빛과 소금을 다한 자로 인정되었을 때에 중요한 직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회사의 주인공이 된 자가 되었을 때에 그 회장이 볼 때 “아! 이 사람을 사장시키면 되겠구나.” 하고 사장이 되는 것이지 회사에 대하여 투신하지 아니하고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을 누가 사장을 시키겠냐는 것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이 세우는 사명자들은 하나님께 투신한 자입니다.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학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생명의 빛과 소금이 된다면 하나님이 능력 주시고 쓰지 아니할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빛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이 오면 생명의 빛을 저절로 받기 마련입니다. 빛의 말씀을 받아서 빛의 아들이 된 자가(살전 5:4)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정신을 다하면 감동을 받고 감동 받은 사람이 믿음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하다가 포위를 당하여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살 길이 없는지 큰 근심 중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있다가 “내가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다. 여기 산 밑에 가면 굴이 하나 있는데 이 굴로 들어가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나를 따라 오라” 이와 같이 살 길을 찾았을 때에 살 길을 인도하는 사람은 바로 육신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빛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들은 환난 중에서도 피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피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생명의 빛이지, 햇빛이 비치는 것이 생명의 빛이 아닙니다.

증거 되는 이 말씀은 천국 가는 생명의 빛의 길과 인생 길 가는 교훈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갖게 되면, 틀림없이 여러분이 생명의 길을 가게 될 것인 줄 믿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버지의 독생자(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빛이 된 자에게 해당된 말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육신화 되었을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내가 부족한 것이 있을 때에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채워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은혜가 있는 진리의 말씀이 곧 생명의 빛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빛이 여러분은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공한 사람에 대하여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에다가 반디를 잡아서 넣으면 반디에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읽고 공부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나 하얀 눈밭의 빛으로 책을 읽어서 성공한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어렵고 가난하게 살 때에 반딧불과 눈밭의 빛으로 공부하여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을 말합니다. 정녕 빛이 없다면 개똥벌레의 빛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빛의 사자가 되고 빛의 자녀가 될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빛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들은 이 말씀이 큰 빛의 말씀으로서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오는(행26:18)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요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기록된 말씀의 “밤” 이라는 것은 낮 밤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도둑놈, 사기꾼, 깡패, 소매치기 이런 사람들은 저 쪽에서 경찰이 나타나면 혹시 자기 잡으러 오나 싶어서 슬쩍 기어서 도망갑니다. 그런 사람은 대낮이지만 밤의 사람으로서 어둠에 다니는 자들입니다. 범법을 하여 법관이 찾고 있는 사람들, 지명수배 된 자들, 이런 사람은 낮이라도 어둠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밤이 더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존경 받는 훌륭한 인재로서 당당한 자들은 법과 경찰과 검사가 무섭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밤에 다녀도 낮의 사람이요 빛의 사람입니다. 이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원래 빛이 된 사람은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마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이 변화산(감람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초청했는데 왜 초청했는가 하면, 별세 할 것에 관해서 대화하기 위하여(눅9:28~31) 초청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주님, 제가 누구입니까? 제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올 때 제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모압 광야에서 육십만 명이 보는 가운데서 죽고 제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주님 걱정 말고 십자가 지십시오. 우리 주님은 저와 같이 시신이 없어집니다.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님은 너무나 감격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왜 나타났는가 하면 “주님, 제가 누굽니까? 제가 바로 하늘의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가 아닙니까? 그리고 말라기 4장 5절에 보시면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승천한 것과 같이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고 다시 이 땅 위에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 승천하시고 재림하신다는 비밀의 말씀을 엘리야가 자기 자신을 빌어서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얼굴이 활짝 펴서 해 같이 빛이 나신 것입니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서 합격하면 입고 있는 옷이 작업복을 입었어도 때 묻은 그 옷이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대학 시험을 쳤는데 떨어져도 아주 낭떠러지에 떨어진 부자집 아들이 아무리 멋있는 양복을 쫙 빼 입고 있어도 그 옷은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니요, 창피를 당한 더러운 옷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참 빛이 되고 변하지 않는 소금의 빛이 있을 때에, 여러분은 세상 사람을 지도하는 선지자가 되고 선각자가 되고 지도자가 될 줄 믿습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문서를 가지고 다메섹에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로부터 나온 빛이 사울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사울만 쓰러진 것이 아니라 사울과 함께 한 자들이 소경이 되어 다 쓰러져 버렸습니다. “사울이 나를 넘어지게 한 자가 누굽니까 하니까” 공중에서 소리가 나기를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그러나 내가 시키는 곳에 다녀오면 네가 눈을 떠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오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행26:13~18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울이 그 전에도 밝은 눈을 가졌지만 영안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빛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을 받은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어서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영안이 열리게 하는 예수의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영이 열리고 귀가 열렸을 때에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오는 축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았으면 이미 소금이 된 것이고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지도자로서 축복된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