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이단

이만희씨…교주가 되기까지

*자칭 이겼다고 주장하는 이긴 자(이만희)의 출생과 어린 시절

-1931년 음력 7월 13일(음) 경북 C군 P면 H리 7**번지,
이만희(혹은 이*재)씨는 아버지 이*문과 어머니 고*금 사이에서 11남매(10남 1녀) 중 여섯째로 태어남.
-형제 중 맏이는 일본에서 사망, 두 아들 일본, 셋째 부산에서 사망. 여덟째가 딸임. 현재 7명 생존. 현재 이만희씨 양자로 입적한 이*근(가명 이*우, 현 부평 마*지파장)은 셋째 형님의 아들임.
-부친은 농사와 참외 원두막 농사, 매를 날리며 물레방아 찧고 삶.
-P면에서 현재 부인 유*순을 만나 결혼함.
-일곱째 이*대가 제일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건축업에 종사하였고, 이만희씨도 뒤따라 상경하여 함께 일함.
-이만희씨 조부(이*봉)는 이만희씨가 5~6세 때 이미 사망함.
-초등학교 재학시절 급장(반장)을 하기도 함.

 

*이만희씨의 병력과 전도관 입문

-11남매 중 이만희씨를 비롯한 몇 명이 선천적(모계)으로 한센병(문둥병) 환자임. 그 중 바로 윗형인 이*용씨가 가장 심한 상태였고 이만희씨는 언뜻 보면 표가 나지 않을 만큼 심하지 않으나 의사가 보면 쉽게 알 수 있음. 그래서 동네에서는 이만희씨를 “보얀 문둥이”라고 불렀다고 함.
-총을 직접 만들어 꿩을 잡기도 했다고 함. 한센병 때문에 모자를 즐겨 쓰고 다녔고, 이를 비관하여 직접 만든 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음. (이 같은 사실을 이긴 자는 자신의 간증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핍박으로 자살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함)
-27세경 자칭 이긴 자, 감람나무, 두 증인이었던 박태선의 전도관에 만병통치 생수교리를 전해 듣고 한센병 치료를 위해 풍각전도관에 나감.(이를 본인의 간증록에는 성령의 인도로 전도관에 가게 되었다고 말함) 당시 박태선은 생수를 떠다놓은 병에 자신이 세례를 베푼 후 이 물을 먹거나 피부에 바르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사람들을 현혹하며 고가에 판매하였음.
-한센병으로 눈썹이 없고(상단에 눈썹모양 굵은 테가 들어간 안경만을 쓰는 이유가 이 때문임), 원래 모발이 희며, 수염이 없고, 치아가 의치이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고 있음.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지금 봐도 동일함.
-P면에서 살림을 정리한 후 경기도 소사 박태선의 신앙촌으로 입교함.
-전도관에서 10여 년간 벽돌 굽는 기술을 익혀 본처 유*순과 함께 많은 고생을 하며 노역함.

 

*과천 장막성전에 입교 및 출교

-1968년 가을경 유재열의 설교를 듣고 감동되어 장막성전에 입교함. (장막성전은 호생기도원 출신의 유재열 부자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 뿌리 또한 전도관임)
-이만희씨는 장막성전에서 입주자를 위한 건축과 경비일을 맡는 등 역군으로 노역하며 헌신함.
-장막성전 창립 1966년 6월 1일로부터 3년 반인 1969년 11월 30일 시한부 종말설이 끝나갈 무렵 통일교 출신의 목영득이 장막성전에 은밀히 잠입해 들어옴.
-이만희씨는 전도대장이었던 송*원, 역군대장이었던 갈렙 심*권 등의 인도로 자칭 하나님이자 자칭 실로였던 목영득을 따르고 장막성전 교주였던 어린 종 유재열은 이들을 당을 지은 배도자로 규정하여 공개적으로 출교함.
-이들과 6개월 정도 함께하다 이탈하여 70년 경 시골로 낙향하였다.

참고) 장막성전 시작일은 1966년 6월 1일임. 현재 이긴 자의 다단교에서 장막성전의 전신으로 부르는 초막은 1966년 6월 1일부터 24일까지 지었음. 1966년 당시 사람들은 이 초막을 ‘장막’이라 하였고, 그 후에 건축한 예배당을 ‘성전’이라 함. 그래서 두 이름을 합쳐 ‘장막성전’이라고 함.

 

*이긴 자 이만희씨의 낙향과 사이비 교주를 위한 준비

이만희씨는 낙향하여 성경공부에 전념하며, 성구 암송을 즐겨하고 다녔으므로 동네 사람들이 ‘할렐루’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함. 이는 이만희씨가 성경책을 받아먹고 한 번에 계시를 받아 성경을 통달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학습을 통하여 성경을 암송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는 지금까지도 아전인수로 성경을 해석하고 외워 써먹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음.

 

*70년에서 77년

이 시기에 서울을 왕래하며 70년에 자칭 재림예수로 출현한 구인회(천국복음전도회, 초막절 교회)의 교리를 접하면서 후일 자신의 사이비집단에서 모방 도용함.

 

*백만봉의 제자가 된 이긴 자 이만희

-장막성전 7천사 중 한 천사였던 백만봉은 유재열과 결별 후에 심*권, 송*원의 인도로 수유리에 설립된 목영득의 제8일 창조교회’(목영득은 자칭 하나님과 실로/송*원은 재림 예수/신*철은 카인/심*권, 이*길은 두 증인)에서 강사로 잠시 몸 담았다가 77년 서울 만리동에 ‘재창조교회’(유재열은 처음 창조-백만봉은 재창조)를 설립하고 자칭 ‘주의 이름으로 오는 보혜사’, ‘이긴 자’, ‘두 증인’, ‘하나님 아버지’임을 선포하고, 77년 1월부터 80년 3월 13일까지 시한부를 선언한다.
-이만희씨는 76년도에 아직 교회가 없이 도봉동에 있던 백만봉을 찾아갔으나, 백만봉이 이만희씨에게 자신이 부를 때까지 시골에 내려가 있으라고 해서 다시 시골로 내려간다.
-77년 말경 백만봉은 자신의 제자로 있었고 이만희씨와 친했던 전*인과 조*환을 고향인 C군에 보내어 다시 이만희씨를 서울로 올라오라고 명을 내려 이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백만봉의 제자가 된다.
-백만봉은 지*섭(현재 신천지 베드* 지파장), 김*원(지*섭의 자형), 홍종효(2013년 사망), 이*길 등을 7사자에 임명하고, 이만희, 이*춘(이만희의 형, 11남매 중 아홉째), 조*환(12사도 수장) 이*선, 심*권, 심*식 등을 12사도에 임명하고, 24장로도 임명하였다.
-79년 9월 사당동에서 약 120명 모였을 때 백만봉은 이만희를 지칭하여 12사도 중 ‘단 지파’ 같고, ‘가룟 유다’같은 자라고 예언하듯 설교한 적도 있고, 그 후 인덕원에서 한 번 더 그 같은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백만봉이 예언한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시한부 마지막일인 1980년 3월 13일 정오 12시에 약 120명이 경마장 앞산에 천막을 치고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뒤늦게 나타난 백만봉은 “여러분 수고 많았다. 나는 오늘부로 주의 역사를 끝낸다. 그리고 나는 3일 내로 하늘에 올라간다. 그간 낸 헌금은 다 돌려주겠다” 선언했고, 이에 분개한 이만희의 처 유*순은 강하게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으며 갑자기 돌변한 자칭 이만희씨의 태도에 분개한 백만봉은 차를 타고 가던 중 내려 이만희씨의 뺨을 3차례나 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