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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때의 異端(이단)과 오늘날 이 시대의 異端(이단)

대한예수교장로회만 하여도 130여개의 교단이 있으며 교단마다 이단대책위원회가 있다. 이들이 과연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단 감별사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 중에도 이단이 없다고 아무도 보증할 수 없다. 사설 이단 감별사들도 상당수가 있다. 이들 중에는 소위 한국교계에서 대표적으로 지명된 이단 교파에서 충성 봉사하던 자가 나와서 가증스럽게도 이단 감별사가 된 자도 있다.

진리를 거역하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와 스스로 재림주가 된 가증한 이단자들을 속출하여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자도 있겠지만 가증스럽게도 생활의 방편으로 “이단감별사”가 된 사이비 “이단감별사”들의 상당수가 예수님 초림때 율법사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에는 무식한 처지에 있으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두고서 남의 눈의 티를 들보처럼 드러내어 비방하는 자들을 성경은 용서치 아니할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아무라도 알 수 있는 ○○○감별사는 마치 하늘로부터 받은 기독교계의 경찰마냥 엄포를 놓다가 돈을 주면 이단에서 잠시 빼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돈을 요구하고 이에 거절하면 전보다 더 큰 거짓말로 이단을 만드는 사이비 이단 감별사에게 수많은 목회자들이 수난을 당한 사실은 한국 교계가 알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사 바리새인들에게 귀신들린 “바알세불”이라는 이단 왕초로 지칭 받았으나 오늘날 이 세대는 20억(천주교 9억, 기독교 11억)인이나 되는 많은 신도들로부터 생명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사도 바울은 율법사 바리새인들에게 이단 괴수가 되었으나 오늘날 이 시대에는 신약의 최고 선지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이같이 시간이 지나면 이단이 참단 되는 경우가 있고 이단 중의 이단이었으나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함으로서 누구도 이단이라고 할 수 없는 참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단의 잣대가 어느 교단에 소속되어 있느냐 어떤 신학을 하였느냐에 따라서 참단과 이단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런 성경의 근거 없이 남을 비판하여 이단시하는 사이비 “이단 감별사”들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영적으로 그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많은 박해가 있을 것을 각오하고 염려하면서 성경을 올바르게 정해(正解)하여 선악을 분별함으로서 악에 속한 이단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돌이킬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여 기독교인들로부터 정의롭고 의로운 사명자들로 세움을 입기를 바라며, 매서운 회초리를 받을 각오를 하고서 이 땅에 참 이단자 곧 자칭 재림예수, 감람나무, 이긴 자, 보혜사 성령으로 나온 자들을 뿌리째 뽑아서 그리스도의 재림할 때에 칭찬받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 11장14절~15절

벧후2:1~3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先生(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異端(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否認(부인)하고 臨迫(임박)한 滅亡(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好色(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道(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貪心(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遲滯(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1. 예수님 때의 異端(이단)과 오늘날 이 시대의 異端(이단)

異端(이단)의 정의

異端(이단)이란? (異: 다를 이 , 端 : 끝 단 )

가는 길의 끝이 다르다는 뜻으로서 자기가 信奉(신봉 : 믿고 받듬)하는 길과 달리 別途(별도)의 길을 가는 자들을 異端(이단)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예수교와 佛敎(불교)는 신봉하는 길이 전혀 다르므로 서로가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신봉하는 일에 反對(반대)하는 자들은 자기편에서 볼 때에 자기들을 除外(제외)한 모든 宗派(종파)의 宗敎(종교)가 全部(전부) 이단으로 보인다.

벧후 2:1∼3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先生(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異端(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否認(부인)하고 臨迫(임박)한 滅亡(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好色(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道(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貪心(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遲滯(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1) 歷史(역사)적인 異端(이단)

① 예수는 율법사와 바리새인 앞에서 바알세불이 들린 이단자였다.

마12:22~25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예수에게 데리고 왔을 때 예수께서 즉시 고치심을 보고 놀란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아니하고는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다고 强辯(강변)함으로서 예수를 귀신 들린 이단자로 내어 몰았다.

이는 예수님이 ①귀신 들리고 ②눈 멀고 ③벙어리 된 자를 단번에 고쳤으니 이러한 表迹(표적)을 행할 수 없는 바리새인들로서는 예수에게 신도들을 다 빼앗기게 되었으므로 이를 防禦(방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은 이단자로 내몰았던 것이다.

마10:24~26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 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기록된 말씀에서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하였고 제자가 선생과 같고 종이 상전같이 되면 족하다고 하였는데 집 주인(예수)을 바알세불이라 하였으니(막3:22, 눅 11:15~19)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가 귀신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었으니 예수의 제자들도 전부 귀신 들린 자들로 매도된 것이다. 그러나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것이 없는 것과 같이(눅8:17) 정말 귀신들린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선민으로만 자부하고 있었으나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라고 하였으니 바리새인 율법사들이 마귀의 아들인 것을 분명히 하였고 진리가 없는 자들로서 거짓말쟁이 라고 하였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사단의 자식들이 하는 짓이라고 분명히 하였다.

진술한 말씀을 종합하면 마귀에게서 난 마귀의 자식들이 곧 진리가 없는 거짓말쟁이요 異端(이단)이다. 이러한 자들이 도리어 예수에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들린 자라고 비방하였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진리가 없는 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들을 이단으로 내어 모는 참 이단들이 있으니 예수님 당시와 같이 교권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숨은 것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다(눅8:17)라고 말한 것과 같이 참과 거짓은 흰 것과 검은 것이 비교되듯 밝게 드러날 것이다.

②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율법사들 앞에 이단의 魁首(괴수)였다.

행24:5~9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사도 바울은 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와 한 辯士(변사=연설이나 말을 잘하는 사람)에 의하여 총독에게 고소당하였으며(행24:1) 바울은 염병 들린 자로서 천하에 퍼진 유대인들을 다 騷擾(소요)케 하는 異端(이단)의 괴수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행24:14~18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 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바울 자신은 바리새인들이 異端(이단)이라 말하는 道(도)를 좇았다는 것은 자신이 증거 하는 말씀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으로 지목당한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이단의 도가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의 기록된 율법을 다 믿는다고 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졌으며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을(요5:25-29) 당당하게 양심에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은 당신들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지만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성경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내용이다.

바울에 대하여 온 유대인을 요동하는 이단의 괴수라고 하였으나 바울은 아무 요동 없이 민족을 구제하기 위한 제물을 정결하게 드린 것을 성전에 있었던 자들은 다 안다고 증언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증거 하는 자에 대하여 아무리 이단 괴수라고 매도당한다고 할지라도 교파적인 유전이나 신학적인 유전이나 또는 교리적인 유전에서(마15:3, 막7:8)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를 기쁘게 하는 바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정의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교리와 유전적인 異端(이단)과 성경적인 이단

①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대한 유전과 교리(교파)적인 異端魁首(이단괴수)였으나 유대교는 하나님을 대적한 성경적 이단이었다.

행 24:5~9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 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때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합세하여 바울을 異端(이단) 魁首(괴수)라고 逼迫(핍박)하니 바울이 나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復活(부활)로 인하여 심문을 받노라 하니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 하고 당을 지은 40여명이 소동하므로 바울은 백부장의 保護(보호)를 받되 밤 3시에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호송할 마병 70명과 槍(창)을 가진 자 200명을 준비한 가운데 가이사랴 총독 벨릭스에게 이송되었으니 얼마나 큰 騷動(소동)이 일어났으면 이만한 兵力(병력)을 動員(동원)하였겠는가.

이때에 유대인들이 총독 벨릭스에게 抗訴(항소)한 내용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왜? 나사렛 이단 魁首(괴수)라고 하면서 바울을 告訴(고소)하였는가. 바울이 나사렛 예수를 만나기 전에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는데 敎籍(교적)을 바꾸어서 나사렛 예수를 證據(증거)하므로 나사렛 異端者(이단자)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나사렛 이단 괴수라고 한 것은 이단의 두목이란 뜻인데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두목이 되지 못하고 왜 바울이 두목이 되었는가. 베드로는 육신적으로 보면 무식한 자였으나 바울은 그러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길리기아의 다소 出身(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律法(율법)의 엄한 敎育(교육)을 받은 자요 열심 있는 자였다(행22:3). 聖潔(성결)한 良心(양심)으로 선조 때부터 섬기던 하나님을 섬기고(딤후1:3) 割禮(할례)를 받았으며 자랑할 만한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예수를 先頭(선두)에 서서 逼迫(핍박)하였던 사람이니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缺陷(결함)이 없는 사람이었다(빌3:5~6).

조상의 遺傳(유전)에 대하여는 더욱 熱心(열심)이었으며(갈1:14)나면서부터 로마의 市民權(시민권)을 가졌고(행22:26~28)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채찍질하는 謙遜(겸손)한 자였다(고후12:7).

이러한 바울을 감히 누가 이단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율법에 어긋남이 없는 바울에게 율법적인 이단으로 몰아칠 수가 없으므로 교리와 유전적인 이단자, 곧 나사렛(예수) 이단의 괴수라고 한 것이다. 이는 유대교인들의 가는 길과 나사렛 예수의 가는 길이 교리적으로 다르므로 이단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유대교는 하나님을 對敵(대적)한 뱀들이었고(마23:32) 곧 성경적인 이단자였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또한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②루터에 의하여 개혁된 개신교는 천주교에 대하여 교리와 유전적인 이단자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루터는 카톨릭을 信奉(신봉)하는 父母(부모)에 의하여 카톨릭 신앙을 배우고 익혔으며 마크데브르크와 아이제나호에서 학교 敎育(교육)을 받았고 1505년 에르푸르트 대학을 卒業(졸업)하고 다시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루터는 여행 도중 갑작스런 벼락에 놀라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수도사가 되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갔다.

오캄주의의 신학교육을 받고 1508년 당시 신설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일반교양 과목을 가르쳤으며 1512년에 신학 박사가 되었다.

聖書(성서)를 강의하는 중 죄의 사면을 위하여 제정(1483∼1546 Martin Luther)된 告白聖事(고백성사) 곧 告解聖事(고해성사)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독일 작센지방에서 販賣(판매)하기 시작한 교황의 免罪證書(면죄증서)에 대하여 학문상 討論(토론)을 할 목적으로 1517년 10월 31일 95개의 논제를 대학의 게시판이라고 할 수 있는「비텐베르크 성교회」문에다가 게시 부착함으로서 이 내용이 전 독일에 순식간에 퍼져 종교 개혁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告白聖事(고해성사)란 죄를 지은 신도가 자기의 모든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기 위하여 告解所(고해소)로 가게 된다. 고해소란 성당 안에 있는 聖所(성소)로서 죄를 지은 자의 고백을 듣기 위하여 만든 場所(장소)이다.

신부와 고백자 사이에 작은 창이 있으며, 창은 창살로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신부에게 은밀한 모든 죄까지 告解(고해)를 하면 신부는 神(신)을 대신하여 고백을 받고 고해한 일에 대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는 免罪符(면죄부)를 주게 되는데 免罪符(면죄부)는 고백하는 죄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값이 많고 적으며 金錢(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자에게 그 죄를 免(면)한다는 뜻으로서 교황이 발행하는 免罪符(면죄부)의 證書(증서)를 주게 된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교황의 사절인 카예타누스의 심문을 받고 95개 조항에 대한 철회를 요구 당하지만 거절하게 된다.

루터는 신학자「에크와」의 토론에서 교황도 사람이므로 과실을 범할 수가 있으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사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법임을 선언하고 카톨릭에서 결별하였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이단으로 단죄한 후 破門(파문)칙령을 받았으나 1520년 12월 10일 많은 公衆(공중)이 보는 가운데서 칙령을 태워 버림으로 자신의 결의를 나타내 보였다.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추방처분을 받았으나 작선 선제후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면서 고해성사에 의한 면죄부의 부당함을 主張(주장)하고 그리스도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지지하는 많은 세력들이 일어나고 본의 아니게 루터파 교회가 세워지게 되므로 카톨릭에서는 루터를 중심한 단체를 완전 이단시 하고 단죄하여 종교 재판에 의하여 이단으로 매도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나 오늘날 기독교가 루터에 의하여 탄생된 것은 分明(분명)하다.

루터는 자기 생명이 다하기까지 설교, 강의, 권고 저술에 종사하였으며 루터의 저작은 전무후무 방대하여 600쪽 이상의 큰 책이 100권이 넘었고 그 중에는 개혁문서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종교 개혁의 모든 프로그램을 提示(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의 사상은 후에「프로테스탄트의 3원리」라고 일컬어지고 요약되었는데 이는 신앙에 의해서만이 만민의 司祭性(사제성)을 말하며 이것은 교황주의자들을 가리켜 말한 로마주의 성벽을 공격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오직 신앙에 의하여서만이 義(의)를 주장하였고 교황의 免罪符(면죄부)를 사고파는 것은 悔改(회개)도, 의식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 머물면서 종교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1520년대 후반부터 독일 각 領邦(영방)을 비롯한 북유럽 여러 나라에 새 교회의 組織(조직)을 推進(추진)하였다.

이후 독일 국가 권력과 상당히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루터파가 국교회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스킨디나비아 여러 국가들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모두 루터교를 국교 삼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루터교는 개신교 최대의 교파로 성장하였으며 카톨릭 교회로부터 이단 중의 이단으로 낙인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재판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잃게 되어 순교자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루터는 1546년 귀족들의 분쟁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아이슬랜드에 갔다가 그 곳에서 병을 얻어 64세로 사망하였지만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은 오늘날 개신교를 있게 한 근거가 된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삼고 신앙인의 양심을 건 루터의 용감한 교황권 비판은 상당히 무모한 일처럼 보였지만 당시 桂冠詩人(개관시인)이기도 한 U.von 후텐을 비롯한 독일 인문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에라스무스를 존경하는 신학자 P. 멜란히톤은 1518년이래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루터의 동료교수로서 개혁운동의 협력자가 되었다.

루터의 복음주의는 널리 시민층으로부터 농민층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7聖事(성사) 중에 다섯을 부인하고 洗禮(세례)와 성찬 2가지만을 인정하는 교리적인 이단자였다. 루터의 주장을 따라 카톨릭의 일곱 성사중 2가지 聖事(성사)만 인정하는 오늘날 개신교(그리스도교)는 루터와 함께 카톨릭에 대한 이단이 분명하다.

카톨릭(천주교)에서 지금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이단이라고 하겠는가? 기독교가 이단이라고 카톨릭에서 지금도 단죄 할 수 있겠는가? 교인의 수가 적을 때에는 이단이요 교인의 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이단이란 말이 들어가고 참단이 되는가? 루터가 종교 개혁할 때는 이단이요 세월이 많이 지난 오늘날에는 참단이 되는가?

국가와 국가의 전쟁에서 상대방의 적을 서로가 傀儡(괴뢰)라고 한다.

괴뢰란 “꼭두각시” “허수아비”란 뜻이다. 싸울 때에는 서로 괴뢰군이라고 비방하였으나 다른 한쪽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면 패망한 나라에서 승리한 나라를 괴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쟁에서 패망하는 자는 스스로 傀儡(괴뢰)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후 개신교(그리스도교)의 발전은 서로가 이단시비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단이라고 다른 종파를 단죄하는 자는 감히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단죄 받을 것이 없는 완전한 자라고 생각하는가? 반문하고 싶다.

과연 다른 종파를 이단이라고 임의로 단죄하는 자들이여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이단이라고 단죄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이 특출하면 이단이라고 단죄하고 교인을 빼앗기면 이단이라고 단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여(마7:1~5) 단죄할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는가?

예수님은 율법사 바리새인들로 “바알세불”이 들린 이단자로 단죄 당했으나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만민의 구세주였다.

사도 바울은 이단 괴수로 단죄 당했으나 그리스도를 위한 세계 복음에 주역이 되었으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카톨릭에 의하여 이단으로 단죄 당했으나 오늘날 개신교가 있게 한 주인공이었다.

개신교회의 간판으로 목회하는 자가 카톨릭의 교리로서 치리한다면 이단 중의 이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카톨릭을 왜 이단이라고 하지 아니하는가?

이단이란, 교리나 교파가 다르다고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자기 교권을 지키기 위하여 남을 단죄하는 큰 죄인이다(마 7:1~5).

前述(전술)한 바와 같이 이단이라고 단죄한 교파보다 단죄 당하였던 교회의 신도가 많아지면 단죄하였던 교회가 도리어 이단이 되며 비진리를 가진 자의 立場(입장)에서 진리를 가진 자를 보게 되면 진리를 가진 자가 이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歲月(세월)이 지나서 진리가 진리로 인정되는 때가 되면 진리에 대하여 잘못 알고 이단이라고 하였던 자들이 도리어 이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③ 교리와 유전적인 이단과 성경적인 이단

마15:1~3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막7:1~9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오늘날 교회와 교파들을 생각하며 기록된 말씀에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말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보다 유대인들의 유전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손과 그릇을 씻고 먹는 것이 유전적인 교리로서 지켜온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음으로 유전을 범하는 자라고 비방하였다.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이에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사29:13)을 인용하여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나 마음은 멀도다 라고 책망하였으며,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자라고 叱責(질책)하였다.
오늘날 개신교와 천주교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전혀 저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할 자는 아무도 없다.

교파의 헌법과 교리의 유전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상반한 것을 확인하고 신학적인 遺傳(유전)과 교리적인 유전을 저버린다면 당장 이단이라고 난리가 난 듯 질책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오늘날 교권이 성경적인 이단이 될 가능성이 충만하다고 하겠다.

예수님 당시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교리적인 이단자요 유전적인 이단자로 단죄하였지만 그들은 도리어 성경적인 이단자들이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인들 앞에서 교리적인 이단 魁首(괴수)였지만 성경적인 이단은 바리새인과 율법사요 유대교인들이었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받기를 願(원)하는 學位(학위)가 있다면 신학박사 학위와 철학박사 학위이다. 철학박사의 학위를 가진 목사를 가장 고상한 지식을 가진 자요 휼륭한 목사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목사의 인격을 학벌 위주로(예를 들어 서울대를 나와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가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이에 대하여 聖經(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위의 기록된 말씀과 같이 哲學(철학)은 성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헛된 속임수요 세상의 지식은 사람의 유전과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세상지식을 좇는 자들은 세상의 유전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대개가 유전적인 신앙을 따라서 세상의 유전을 좇아 세상의 지식과 학벌을 좇는 것이 성경을 아는 고상한 지식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들이 있으나 이는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다.

유전적인 신앙은 성경을 폐하는(마15:3) 성령 거역죄를 짓는 자들이다(마12:31~32). 교파와 교리의 유전과 세상의 유전(학벌과 철학적인 지식)을 좇는 자들은 성경적인 이단인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와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교파 교리에 대한 유전적인 이단 괴수였으나 오히려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성경적인 이단자로서(뱀, 독사=마23:32) 천벌을 받을 자들이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자들이 없다고 누가 保證(보증)하겠는가?

文化(문화)와 文明(문명)이 高度(고도)로 발전되고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를 旅行(여행)하는 時代(시대)가 되었고 성경에 숨겨진 秘密(비밀)이 빠진 것 없이 나타나고 있는 이때에(눅8:17) 유전적인 이단, 교파적인 이단, 교과적인 이단을 論(논)하는 者(자)들이야말로 성경에 無識(무식)한 이단자들이다.

참으로 異端(이단)을 논하여 定罪(정죄)하려면 성경적인 이단을 논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적인 이단을 논하려면 論(논)하고자 하는 자의 성경 지식이 相對方(상대방)보다 위에 있지 아니한 자들은 감히 이단을 논할 資格(자격)이 없다.

聖經(성경)에 無識(무식)한 자가 성경에 能通(능통)한 자(고전2:10~11)를 이단이라고 論(논)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 능통한 자만이 성경에 무식한 자에 대하여 이단적인 말이라고 敎訓(교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筆者(필자)의 著述(저술) 내용 全體(전체)는 오늘날 카톨릭과 일부 잘못된 개신교의 立場(입장)에서 볼 때에 유전적인 이단자요 교리적인 이단자가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입장에서 보면 이단 괴수라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서술한 내용을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필자 以上(이상)으로 성경에 관하여 越等(월등)하고 能通(능통)한 자만이 필자에 대하여 논할 값어치가 있다.

筆者(필자)가 敍述(서술)한 내용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反論(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진리로서 順從(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마다 遺傳的(유전적)인 信仰(신앙)과 교파와 교리적인 신앙과 세상의 유전에서 벗어나기를 眞心(진심)으로 所願(소원)하는 바이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성경적인 이단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神學者(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대처(성경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참 진리는 교파와 유전적인 교리를 앞세우는 자들로부터 이단이라고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가을이 되어서 丹楓(단풍)으로 변하는 色(색)을 누가 綠色(녹색)으로 바꾸겠는가?

봄의 꽃소식을 들은 겨울의 나무들이 봄소식을 듣고서 거짓말이 라고 하는 것은 무식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當然(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무식한 자는 亡(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호4:6).

성경에서 나무들은 사람을 象徵(상징)하고 있다(렘5:14). 봄이 되었으나 겨울잠을 깨지 못한 나무 들이여! 에덴의 봄소식에 귀를 기울여라! 敎派(교파)의 敎理(교리)와 遺傳(유전)적인 異端(이단)에 빠진 자들이여! 律法(율법)의 사슬을 풀고 나와서(롬7:6) 眞理(진리)로서 自由(자유)함을 받아라!(요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