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5.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제사장 되라

본문말씀 : 히브리서 7장 11~21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광산의 종류에 따라 철이 나오는 광산이 있고 순금이 나오는 금광의 산맥이 있습니다. 철이 나는 광산이나 순금이 나는 금광은 다 산 속에 숨어 있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산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 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산에 나무가 없고 바위만 있다고 해서 금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은 신구약 성경의 큰 산맥 속에 묻혀 있는 아주 깊게 숨겨진 순금과 같은 즉 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모략적인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모략을 잘 아는 기적이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소돔 왕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 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니까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4개국 왕이 소돔 왕을 쳐 들어옵니다. 이를 대비했던 소돔왕은 자기와 함께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던 다섯 나라의 왕과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4개국 왕에 대항하게 됩니다. 이는 9개국이 전쟁을 하는 국제적인 큰 전쟁이었습니다. 이 큰 국제 전쟁에서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왕들이 소돔왕과 함께 한 다섯 나라의 왕을 완전히 제압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가고 여자와 지식인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그때 소돔 땅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는데 롯의 가족도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당시 “아브람” 곧 아브라함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전쟁 포로로 잡혀 간 조카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서 잘 훈련시킨 군사 삼백십팔 명을 이끌고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네 왕의 군진으로 쳐 들어가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네 왕을 잡아서 죽여 버리고 승리하였습니다.

다섯 나라가 대항하여도 이기지 못한 전쟁을 개인 군사 삼백십팔 명으로 승리를 거두고 자기의 사랑하는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하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시 네 개의 연합군을 쳐서 이긴 아브람의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한 기적의 승리였습니다.(창14:1~16)

히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여러 왕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것도 국제 전쟁에서 승리한 그돌라오멜 왕과 함께 한 네 왕을 불과 군사 삼백십팔 명을 데리고 가서 쳐서 죽이고 돌아왔다는 것은 어느 전사(戰史)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대단한 전쟁의 승리였으며 하나님의 모략이 함께 하지 아니하고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승리에는 하나님의 깊고 깊은 모략이 처음부터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 사웨 골짜기에서 제일 먼저 소돔 왕이 달려와서 영접하였고 또 놀라운 것은 아브람과 상관이 없는 이름 없는 작은 고을의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제사장으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람을 영접하고 난 뒤에 아브람에게 축복을 하여 주었습니다(창14:19).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이라는 최고의 축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이 더 이상의 복을 받을 필요가 없는데 이름 없는 살렘이라는 작은 고을의 제사장, 살렘 왕 멜기세덱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감히 아브람에게 축복을 한 것입니다. 살렘이란 지명은 예루살렘에 아주 옛날에 있었던 지명입니다. 그 조그마한 동네에서 제사장을 하고 있던 멜기세덱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에게 축복을 줍니다. 그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창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멜기세덱은 더 이상 높은 제사장이 없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당시 여러 마을에 있었던 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한 제사장이었으나 멜기세덱은 비록 작은 고을의 제사장이었지만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아브람에게 축복을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레위 족속에 속한 자들로서 백성을 위한 제사장이었으며 그들은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해서 제사 지내는 자들인데 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제사장과 백성을 위한 제사장을 구별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갈 제사장도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계20:6).

창14:19~20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하나는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이 왜 복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아브람에게 이름도 없는 멜기세덱이란 자가 나타나서 아브람에게 축복을 주고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이 모든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갖다 바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략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십일조는 원래 하나님께서 받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만이 십일조를 받을 수가 있는데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으로부터(창12:2) 어떻게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자인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원래 복(福)이라는 것은 폐일언(蔽一言)하고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히7:7).

높은 자가 낮은 자로부터 상이나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에게(창12:2) 멜기세덱이 복을 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할 수 있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 딱 한 번 아브람에게 축복하고 난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에 어떤 장소에서도 출현한 사실이 없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지극히 높은 제사장이 되었고 또한 나타났다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족보가 있으되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는 사람입니다(히7:1~3). 누구 집안의 아들인지 족보도 없고 성(姓)도 없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불소미명(不所未名)한 사람이었습니다.

히7:2~3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 지구상에 아비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이 태어났다면 신(神)의 사람입니다. 단 한 번만 아브람에게 나타나고 난 이후에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해서 논한 사실도 없고 성경에 어떠한 기록도 없는데 다만 다윗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으로 훗날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날 것을 시편에 예언하였습니다.

시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기록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맹세하고 변치 아니한다고 하였고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멜기세덱의 길)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다윗을 빙자하여(호12:10)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의 길을 좇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히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5:5~10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길)를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칭함을 받은 것입니다.

시110:2~4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10:12~13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이와 같이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바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반차라는 말은 멜기세덱이란 사람이 걸어간 법통의 길을 말하고 품계(신분의 계급)를 말합니다.

공무원도 1급, 2급, 3급… 품계가 다릅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가지고 있는 품계는 어떤 품계인가 하면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줄 수 있는 신(神)과 같은 존재의 품계를 가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시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요3:16) 하나님의 본체(빌2:6)입니다. 이런 분이 어떻게 육신을 입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아브라함에게 손을 얹고 축복을 해준 멜기세덱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다는 것은 더 이상 높은 자가 없는 제사장(창14:18, 히7:1)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니 그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어 받고 품계를 이어 받은 영원한 제사장이 나올 것을 예언했는데 그 영원한 제사장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을 통해서만이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레위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에서 셋째 아들입니다. 레위 계통에 들지 아니하면 제사장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성전을 받드는 일을 할 수도 없는데 예수님은 레위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 계통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라 유다 족속에서 나온 사람인데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히7:14~19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유다로 좇아나신 것이 분명하신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을 보니, 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된 것이 분명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에 상관된 계명(율법)을 좇지 않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별다른 제사장이 분명함과 같이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레위)를 좇지 않고 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예수님은 이단(異端)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레위 계통에 있던 자들인데 레위에 들지 아니한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단(異端)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9:32~34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바알세불(귀신의 두목)로 이단시 하고 저주한 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히7:10~11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십계명 율법을 받은 제사장이 제사 지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은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이라고 말한 것은 율법에 의한 제사로서는 온전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반차를 좇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특히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이유는 레위 지파가 집행하는 모세의 율법으로써 온전함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야 된 줄로 믿습니다(히7:11).

그러나 이 시대가 멜기세덱의 반차의 신앙을 좇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멜기세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히5:1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을 자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기성 교회는 아론의 반차를 좇는 모세 율법에 의한 제사장(목자)만 있을 뿐입니다.

히7:12~15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좇는 레위 계통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유다지파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고 제사직분이 변역(변하고 바뀜)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히7:12).

짐승을 잡아서 짐승의 피로 제사 드리던 제사장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으로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가 폐지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사 직분이 변역(변하고 바뀜) 되었으므로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라”고 하였는데 제사직분이 변역 곧 변하고 바뀌어졌음에도 현재의 기성교회는 율법(십계명)은 변하지 않고 제사 직분만 변역하였으므로 율법도 반드시 변역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시대는 과거의 율법을 변역하여 “새 언약”의 시대로 바뀌어져야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율법도 변역하여 반드시 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변역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아야 될 것은 성경에서 멜기세덱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은 전부 어린아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히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너무나 깊고 오묘해서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히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때가 오래 되었으면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하는 것은 때가 오래 되었어도 멜기세덱에 관하여 잘 설명 할 수 있는 선생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곧 멜기세덱의 법통, 반차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었다고(히5:12) 하였습니다.

고전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의 법통을 모르면 지혜를 가진 장성한 자가 되지 못하고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이 오늘날 이 세대의 지도자들이 멜기세덱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20년, 30년 믿어도 멜기세덱의 법통의 비밀을 모르고 반차의 비밀을 모르면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멜기세덱에 관한 말씀을 깨닫게 되므로 예수님에게까지 자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온전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예수님에게 까지 성장해야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기 위하여 아론의 법통인 율법에서 벗어나고 레위의 제사직분에서 벗어나서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야 예수님에게까지 자랄 수 있는 장성한 자가 되고, 지각(知覺) 있는 슬기로운 자가 되려면 육체의 상관된 계명(율법)을 좇지 않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간 그리스도와 같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히7:16~19).

우리는 멜기세덱에 관한 비밀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갔는가 하는 그 증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백성의 제사장이지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들만이 천년왕국에 들어간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믿는 많은 제사장들은 백성의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자들로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걸어가신 것은 우리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먼저 앞서 가셨다고 하였습니다(히6:20).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지금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무리들이 탄생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입니다.

히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앞서가신 것은 우리에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가는 축복이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이 세상에서 복을 많이 받아도 멜기세덱의 복 이상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도(창12:2)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같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히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성경의 모든 율법은 전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입니다. 십계명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이고 오늘날 교회의 법도 전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가신 예수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였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우리 또한 무궁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다 보니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법을 따르거나 어떤 규칙에 의해서 제사장이 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시편 110장 4절에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기를 하나님께서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고 하시고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질 것을 이미 예언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고 한 예언대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왕 중의 왕으로서 하늘의 제사장이 된 것 같이 우리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계 20:6) 존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