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천국과 팔 복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1~12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장 3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천국을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6장 25절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비유의 말씀으로 알려주었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한 말씀과 같이 오늘 비사(比辭=비유로 쓰인 말)의 말씀을 밝게 실상으로 알고 깨달아서 팔복을 다 받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도 보면 꼭 복 받을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 집안을 청소하고, 옆집 골목까지 다 청소 하는 사람의 그 집은 틀림없이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익혀온 말씀에‘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을 일찍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는 말인데 한 마을에서 제일 먼저 대문을 여는 사람의 집에 제일 큰 축복이 들어온다고 할 때‘개문만복래’라고 합니다. 이는 마을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이 말처럼 우선 자기 집안에 문을 열기 전에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만 가지 복이 다 들어올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복을 참 좋아합니다. 무식한 무당 신앙에 빠진 자들은 복을 받는다고 하면 돌에도 절을 하고, 나무에도 절을 합니다.
인도 같은 나라를 보더라도 소에게도 절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버스가 지나가다가 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아 ! 신이시여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하고서 버스가 빵빵거리지도 않고 소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가를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우민정책(愚民政策=백성을 어리석고 무식하게 하는 정책)을 쓰는데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함으로써 무조건 말만하면 따라오도록 하기 때문에 무식한 자들이 많고, 글을 모르는 자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선거를 할 때 표를 얻기 위해서 소에게 절을 하지만 뒤에 앉아서는 소고기를 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모순이 어찌 인도에만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고, 오늘날 종교 사회에도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너무나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복 받기를 좋아 함으로 성경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순종하면 아주 소중한 복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복된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한 구절만 보시겠습니다.
신28: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기록된 말씀의 아홉 가지의 복이 ① 성읍에서 ② 들에서 ③ 몸의 소생과 ④ 토지의 소산과 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와 ⑥ 네 광주리와 ⑦ 떡 반죽 그릇 ⑧ 들어와도 ⑨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많은 복을“순종”하면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이런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습니다(빌2:8).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도 복을 받고, 들에 가도 복을 받고, 산에 가도 복을 받고, 어디가든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多幸)한 일입니까?
옛 성인의 말에‘보수방인(寶樹芳隣)’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 앞 마당 옆에 향기로운 보배나무가 있으면 자기 집 마당에 있는 향기가 옆집에도 날아간다는 말입니다.
‘접맹씨지 보수방인(接孟氏之 寶樹芳隣)’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집이 맹자하고 담이 붙어있으니 우리 집도 양반의 집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맹자님의 그 훌륭하신 말씀의 향기가 이웃집까지 날아오는 것과 같이 훌륭한 유명인의 옆집까지도 유명인의 축복이 날아온다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복을 잘 받음으로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친척과 이웃집까지 다 복을 받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출19:16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구약시대 최고 위대한 선지자는‘모세’라는 선지자입니다. 모세라는 선지자가 산에 올라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하늘이 진동하고,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지가 벼락 치는 소리를 내고, 산에 있는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돌이 여기저기 뒹굴고 날아다님으로 머리통에 맞아 죽을까 겁이 나서 아무도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세 외에는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서 감히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지만(히12:18~21),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모세가 산에 올라간 것과 신약시대 예수님이 산에 올라간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산은 종교를 탄생시키는 곳이라고 봅니다. 불교의 사찰은 산에 주로 있고, 또 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산에 가서 도를 닦지 들판에 가서 도를 닦거나 강변에 가서 도를 닦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로 보건대 모든 종교는 다 산에서 탄생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산에 오를 때는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 있었고, 모세 자신도“하나님이여 제발 좀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옵소서, 하나님이 무섭고, 너무너무 두렵습니다.”이렇게 말을 했습니다(히12:21).
모세도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했는데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워했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시내산에 올라간 자가 없었습니다.“만약에 시내산에 너희들이 허락 없이 올라가면 시내산에 있는 돌이 네 머리를 칠 것이다.”해서 아무도 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른 산은 어떤 산이었는가 하면 시내산 같이 공포와 두려움이 있는 산이 아니라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야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신 산을 한번 보겠습니다.
마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갈릴리 큰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 같은 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 앉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마15: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큰 무리,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에 눌린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 있었던 산이 바로 우리 주님이 함께 계셨던 산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서는 다리가 성하고 건강한 사람도 감히 올라갈 수 없었고, 모세조차도 두려움으로 산에 올라갔지만 예수님이 계신 산은 아주 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푸른 풀밭, 맑은 물, 초장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였을 때에 거기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에 눌린 어려운 자들이 산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 야산에는 마치 봄바람 같이 부드러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렸으니 아주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고, 순박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전파한 말씀마다 금보다 귀하고 보석 같은, 그야 말로 쌀자루에 쌀이 쏟아지듯이 술술술 쏟아냄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복된 말씀을 예수님께서 쏟아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양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여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앉은 산과 구약시대 모세가 앉은 산은 전혀 상반되는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신 것은 영적으로 보면 산에 오른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산들은 세상이야기, 정치이야기, 자기 간증이야기, 부자 되는 이야기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산이지만 하나님을 받드는 봉천동,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까치고개, 새 소식을 알려주는 우리 교회 산은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생수의 말씀과 잔잔한 호숫가와 같은 산으로써 푸르고, 싱싱한 생명의 꼴이 하나님의 양들에게 살찌우는 산이 된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말씀은 강력하고도 힘이 있는 말씀이었지만 그것은 율법과 저주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율법과 저주에 억눌려서 죽어갔고, 자유를 잃었고, 많은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그런 투기적인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마치 말라 죽어가는 풀에 소낙비를 쫙 내리고, 빛을 내니 그 풀이 살아서 새싹이 나고, 움이 돋게 하고, 양들이 와서 꼴을 먹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오르신 산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낮은 산이요, 모세가 올라간 시내산은 산중턱 이상에 나무 한그루 없는 삭막한 바위산으로써 감히 환자들은 올라갈 수가 없는 큰 바위 더미의 높고 험준한 산이었습니다.
필자가 성지순례 중에 시내산에 낙타를 타고 올라가 보았는데 2시간정도 올라간 것 같습니다. 새벽 4시쯤 되면 캄캄해서 걸어서는 못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내려가는데도 낙타를 타면 되는 줄 알고 낙타를 탔더니 앞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조금 가다가 그냥 내려서 걸어왔습니다. 정말 높고 험준한 산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구원의 산은 아름다운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니라도 올라갈 수 있는 평지 같은 산이요, 모든 것이 쉽고, 또한 기쁨과 즐거움과 소망이 넘치는 그런 생명의 꼴이 있는 산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생명의 꼴은 영생의 양식인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은 다 썩는 양식 아닙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먹으면 다 뱃속에서 썩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우리는 영생의 양식, 곧 영생의 말씀을 귀로 먹고, 마음으로 소화하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나님의 영산 곧 거룩한 성산에 올라온 줄로 믿습니다.
마15:29~3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병자들 그리고 큰 무리들이 병 고침을 받는 이러한 역사가 영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봐도 알지 못하는 소경이었으나 성경을 볼 줄 아는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활짝 열렸습니다.
교회에 30년, 40년을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증거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영산(靈山)이 된 교회에 몇 달 다니고, 입이 열려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전할 수 있으니 벙어리가 입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이 영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죽은 송장과 같았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함으로써 생명의 말씀의 꼴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귀한 자들로 복되시기를 원합예수님께서 오늘 팔복의 말씀을 주신 곳이 바로 감람산이며 이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마5:1~3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소유한자를 말합니다. 타락하고 퇴폐된 인간의 심령 속에는 쓰레기통 같이 잡다한 욕심과 타락한 탐욕의 더러운 것들이 꽉 차있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은 그런 잡다한 쓰레기통 같은 마음 안에 시기와 질투와 살인적인 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만 가지 악을 다 가지고 태어나서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있으면 즉시“하하”하며 아부하고, 자기에게 조금 불리한 것 같으면 즉시 안색이 변하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 차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부지런히 뛰어도 생기는 것이 없는데 바쁘기는 말죽거리 같이 바쁩니다.
이런 잡다한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통을 다 긁어서 씻어 내버리고, 심령을 생수로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한 심령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인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집이 아름답게 잘 지어져 있어도 그 안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으면 거기에다 무엇을 전시 하겠습니까 ? 다 드러내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해서 전리품을 갖다 놓아야 멋있는 전시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먼저 찾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아름답고 깨끗한 마음이 되는 것이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천국이 오는 줄로 믿습니다.
천국은“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눅17:21).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마15:18).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필요없는 욕심과 필요없는 시기와 질투, 순식간에 벼락부자 되겠다고 찾아다니며 그런 횡재를 바라는 혼탁하고 잡다한 마음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후손으로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서 아주 많은 지식과 학식과 철학적인 도를 닦은 자입니다.
빌3:5~7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기록된 말씀과 같이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킨 자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으며,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害)로 여겼다고 한 열성분자였습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고상(高尙)하다는 것은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지조가 높고, 마음이 깨끗하고, 속되고 어리석은 것에 굴복하지 않고, 학문과 예술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지식을 겸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고상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학문을 갖추고, 예의가 바르고, 지조가 있고, 남의 것을 공짜로 먹으려는 헛된 마음이 없고, 잘못된 것, 거짓된 것으로 남을 해롭게 하여 자기가 유익을 보려하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어느 부분을 봐도 부족함이 없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고상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고상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빌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옛날에 어떤 임금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길가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더러운 옷을 입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임금이 데리고 와서 나중에는 그 여자아이가 임금의 부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지같은 사람이라도 임금의 눈에 띄면 출세하고, 하나님의 눈에 띄면 거지, 바보라도 지도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심령이 깨끗하고 마음이 고상한 사람 곧 정직하고, 진실하고, 깨끗해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함을 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율법사와 제사장,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서 죽기 살기로 그 율법을 지키고 율법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전부 잡아서 돌로 쳐 죽이는 만 가지 만행을 행했습니다. 너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살인자들이었습니다.
세상 적으로도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삼강오륜시대, 공자 맹자시대를 찾으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딱딱하고 굳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이천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이미 화석(化石)화 된 자들로서 성경에 기록된 신비로운 새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광석들이 딱딱하지만 제일 부드러운 광석은‘금’입니다. 금은 아주 물렁물렁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광채 나는 광석입니다.
사람도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일 뻣뻣하게 굳은 사람은 누구인가 ? 하면 성씨는‘송’이고 이름은‘장’입니다. 송장은 뻣뻣하게 굳어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부드럽지만 죽은 자는 굳어있습니다.
신앙이 죽은 사람은 입도 뻣뻣하고, 행동도 뻣뻣하고, 몸도 뻣뻣하여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살아있는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안녕하세요? 저희교회 처음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저는 어디 사는 김 집사입니다.”이렇게 사근사근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굳은 마음을 제해서 부드러운 마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겔11:19).
이렇게 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한 자입니다.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가난해서 밥만 먹고 살아도 큰 축복입니다.
“주일날 오늘은 무슨 말씀이 나올까? 집에서 테이프로 또 들으니, 더 좋다.”하나님 말씀을 위해서 사는 그 사람은 사는 것이 천국입니다. 밥을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틀어놓고, 찬송가를 틀어놓으며“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이런 아쉬운 마음이 있는 사람은 생활이 아주 즐거운 사람입니다.
이같이 부드러운 사람이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자들 입니다. 오늘 아침에 TV를 보니까 나이가 80세 된 유명한 코미디언이 나왔는데 80세가 되었는데도 왜 그렇게 젊은지 물었더니, 자기는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웃고 즐겁게 사는 사람은 암이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암이 들어오기 시작한 사람은 아주 강력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암은 피부를 딱딱하고 굳게 만듭니다. 간에 돌이 들어가면 돌같이 단단해지는데 그것이 간암입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여 마치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 순수한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할 때에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기뻐야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걱정 근심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무엇이 행복하겠습니까? 지옥문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세상에는 애통한 사람이 많습니다. 자식을 잃고 애통한 사람, 연인을 잃고 애통한 사람, 돈과 재물을 잃고 애통한 사람, 명예나 권세를 잃고 애통한 사람, 그러나 이 말씀은 이런 애통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애통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진리를 알게 해주려고 몸부림치는 자가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을 전도해야 되는데 내가 무슨 방법으로 전도를 하지?’하며 점심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과일도 사가지고 가서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을 들을 땐 좋다고 해놓고 교회는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하러 다니는 이 사람은 애통한 일을 많이 당하는 자, 곧 주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잠을 자다가도‘어떻게 하면 전도를 할까?’걱정하는 사람이 참 애통하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더 가난한자를 도와주는 자, 나보다 더 못 사는 사람이 있으니 난 행복하다 권력이 없어도 행복하다,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요 바로 의인을 위해서 애통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애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눅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많은 여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따라가며“주님 이 길을 가면 어떡합니까?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여자들이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께서는“나는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고생을 하여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는데 너희들은 왜 육신대로 생각하고 왜 나를 위해서 우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네 자신이 하나님 앞에 구원 받는 자인지 네 자신을 생각해서 울고 네 자녀들이 지금 나쁜 짓하고, 못된 짓하고, 하나님 앞에 벌 받는 짓을 하는데 네 자녀들을 어떻게 하면 바른길로 돌아가게 하고 바른 생활을 하며 행복한 장래를 계획하는지 쳐다보며 네 불쌍한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지 왜 나를 불쌍하다고 나를 위하여 우느냐? 나는 괜찮아, 나는 지금 천국 가는 길이니 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애통도 다른 세상 사람보고 애통하는 것보다 그래도 주님을 위해서 애통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애통하기는커녕 다 도망가 버렸는데 그런 제자들 보다 나은 것이 여자들의 신앙입니다.
우리교회도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여인들의 신앙이 열심이 있고 정이 많은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위하여 애통하는 것도 좋지만 내 자신의 부족한 것을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애통하는 자는 반드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는 축복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위로 해준다는 것은 돈이 없어 궁핍에 빠졌을 때 엉뚱한 사람이 찾아와서 도와주는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짓거나 교회가 성장할 때 돈 가지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우리 이사 갑시다.”해서 모두 믿음을 연합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고 전국에 지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믿음의 말 한마디만 전해도 자동으로 전도 열매가 맺혀질 줄로 믿습니다.
내가 좋아서 전하다보면 전도 열매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지 않으면 전도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주를 위해서 한번 애통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함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아무것도 없는데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그런 감사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대단한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물질의 축복입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말을 해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있고, 말을 해도 아주 얄밉고 괘씸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말 한마디 잘못해서 만 냥 빚을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온유하고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어려움을 봤을 때는‘아이고, 어떡하지? 내가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데’하지만 남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온유하지 못합니다. 온유하지 못한 것의 반대는 뻣뻣하다는 것인데 죽은 시체는 뻣뻣하고 살아있는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나무도 살아있는 가지는 가지를 휘어서 놓으면 튕겨져서 쫙 뻗어지는데 죽은 가지는 뻣뻣하고, 휘면 뚝 부러집니다. 그래서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자나 마찬가지라서 무슨 말 한마디만 하면 뚝 부러져서 뛰쳐나가게 됩니다.
죽은 자의 시체는 온유하지 못합니다. 신앙이 죽은 자는 한마디만 싫은 소리를 해도“나 교회 안 나가!”하며 탁 내 뱉는 모습은 바로 죽은 자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온유한 마음의 심성을 가질 때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음이 굳은자는 얼굴도 굳고, 몸도 굳어지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음성도 굳어져서 말을 들으면 말이 잘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암에 걸리기 쉽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말이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참으로 온유한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사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뻣뻣한 사람이 있습니다. 목의 힘줄에 무쇠가 박힌 자들입니다. 절대로 남이 인사하지 않으면 인사하지 않는 뻣뻣한 사람이 있습니다. 장사꾼은 그저 손님이 오시면“안녕하십니까 ? 어서 오십시요.”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밖에 나가면 전도도 잘하고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신문에 나온 것을 보니, 1년에 천명 전도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천명을 전도 했는지 물어봤더니 자기는 직장도 없고 할 일이 없어서 전도나 해야겠다 싶어 그냥 골목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조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도 인사를 잘하니까 그 사람을 동네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그 사람을 따라서 교회를 나와 1년에 천명이 전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끄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사업도 잘되고 모든 하는 일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반면에 뻣뻣한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경화되어서 화석같이 되어 있는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아서 마음이 굳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성질이 그렇게 강퍅했고, 잘못한 것은 심판을 내렸지만 모세의 본래의 마음은 엄청나게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시76: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 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모세도 마음이 온유했고, 예수님도 마음이 온유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인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인정이 많은 사람은 사기를 당하기 쉽습니다.
자기 처신을 항상 온유한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육신의 복을 주사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값이면 땅을 팔아도 온유한 사람에게 팔지 뻣뻣한 사람에게 팔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한다고 하였습니다(시 76:9). 온유한 사람은 어려운 일도 쉽게 풀어지는 것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불쌍히 여긴다, 가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자를 도와주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거반 죽게 되었는데(눅 10:30~37) 제사장이 이를 보고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 또한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자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지나가다가 그를 불쌍히 여겨 자기의 가지고 있던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임시 응급치료를 하여 주막에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고“이사람 치료 좀 해주시오 만약에 치료비가 모자라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눅10:35).”
이에 강도 만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긴 사람을 성경에는 참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눅10:25~37).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 답변하시기를“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라고 한 줄로 믿습니다.
이웃이 있어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옆집에 산다고 이웃이 아닙니다. 아파트 위층에 사는 사람도 누구인지 모르고 앞집에 사는 사람도 누구인지 모르면 한 아파트에 산다 하여도 이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베푸는 자가 이웃으로 형성되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자비를 베푼 일이 있거나 자비를 베푼 사람이 있을 때 이웃이 형성되는 것입니다(눅10:23~24).
교회를 다녀도 이웃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있어도 소식만 들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에게 참 이웃이 있습니까?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기록된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는 없다고 했는데(출33:20)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 준비 없이 급히 와서 단상에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정신을 통일 시키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맑으면 잃어버린 생각도 떠오르는 것입니다.
물이 파도를 치면 산 그림자가 보이지 않듯이 물이 잔잔하면 얼굴도 보이고, 산 그림자도 보이고, 얼굴의 점, 티까지도 다 보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모든 악을 버리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남에게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자 애쓰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순종하므로 영혼이 깨끗하여지고 형제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그림자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영혼이 깨끗하고 맑은 자들인 것입니다.
사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게 된다면 진심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간 자가 됐다면 우리가 마음에 청결함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참 하나님의 자녀라면 화평케 해야 됩니다. 이 사람하고, 저 사람하고 잘못되게 일러주어 시비가 생기도록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종입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항상 일러바치기 일쑤지만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에게 형제를 일러바칩니까?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예수님의 육체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헐어버리셨다고 하였습니다(엡2:15~18).
막힌 담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 담이 쌓여 있으면 화평할 수가 없습니다. 담이 막히면 저 멀리서 봐도 보기 싫어서 이쪽 골목으로 빠져 나갑니다. 반면에 반가운 사람은 저 쪽에서 그림자만 봐도 서로 달려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화목제물로 하나님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 분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사이가 안 좋았을 때 A라는 사람에게“야, 그 B란 친구가 너를 굉장히 생각하던데”“그럴리가 있어? 그자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데”“아, 그것이 아니고 너를 굉장히 생각하더라고, 말하는 것 보니 너를 보고 진실하다던데”
“그래, 하기야. 내가 성질이 못되서 그렇지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서로 삐끗했는데 앞으로 좋게 지내 볼꺼야.”
이렇게 화평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A라는 사람에게“아, 그 사람이 너를 너무너무 좋아하던데, 언제 같이 만나서 식사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가 뻣뻣해서 잘 안 만나 준다며?”이렇게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못된 소리를 듣고,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말하지 않고 나쁜 것은 덮어두고 좋은 것만 가서 전하는 사람이 화평케 하는 자입니예수님은 화목제로서 하나님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벽을 헐어버리고, 육신과 영혼사이에 철조망을 다 헐어버리고 제거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하는 자 곧 십자가로써 담을 무너뜨리고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무너뜨린 자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흙으로 빚음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음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음 받은 자는 화평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화평한 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감을 입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서로 미워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아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아주지 않으므로 가인은 시기와 질투가 나서 미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교회 나왔는데 한 사람은 권사 직분을 받고 한 사람은 집사 직분도 못 받았으니 같이 나온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은 목사가 주었는데 먼저 올라갔다고 직분 받는 날부터 미워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요일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니라 눈이 먼 자이며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여러분,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 보셨습니까? 제일 괘씸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전도해서 데리고 오면 말씀이 좋다고 하다가 주일날 이단이라고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말로 빙자해서 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던지 행실이 좋지 않다고 말을 해서 방해하는 자들이 있으면 얼마나 전도한 사람이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또 그것을 알고 보니, 재림예수로 나온 자나 감람나무로 나온 자들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핍박하는 자가 있다면 핍박 받는 것을 여러분은 피해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핍박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마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러분 혹시 핍박 받는 일이 있거든“고맙습니다. 오늘 복 많이 받았습니다.”하시기 바랍니다. 핍박 받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핍박이 되지 않겠지만 핍박 받는 것을 핍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환난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전하다가 핍박을 하거든 핍박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를 향해서“주여,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몰라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릴 때는 혼자의 몸이었으나 오늘날 이 땅에 이십 억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고 그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핍박을 받고도 즐거워 할 줄 아는 팔복의 믿음을 행한 자들로써 큰 믿음으로 성장되어 천국을 선물로 받는 귀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