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아 목사 특별기고]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⑮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신천지특별대책위원장 김노아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신천지특별대책위원장 김노아 목사.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계6:5-6
이단 신천지의 거짓 증거

저울은 성경이요, 밀과 보리는 구원받을 성도이며, 저울에 달아 본다는 것은 말씀으로 성도의 믿음과 행실을 척량하는 것을 의미한다
밀 한 되 보리 석 되는 심판 때 남은 자로서, 새 나라 창조의 씨가 된다(잠 24:12, 마 13:38, 사 1:8-9)


이단 신천지의 모순된 해설

본 장의 저울은 영적 저울로서, 믿음과 행실을 달아 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삼상 2:3, 잠 24:12 참고). 그리고 데나리온(은전)은 주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요(계 3:18, 마 25:15 참고), 밀과 보리는 말씀의 씨(눅 8:11)로 맺은 알곡 성도들을 가리킨다(렘 23:28). 한 데나리온은 초림 당시 근로자의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며(마 20장 참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보리 석 되라는 것은 물가가 매우 비싸서 적은 양의 양식을 살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보리 석 되라는 말은 범죄한 하나님의 장막에 주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행실을 달아 건진 자들이 아주 적었다는 뜻이다(사 1:7-9, 사 17:4-6 참고). 이들은 계 7장의 영적 새 이스라엘 창조의 씨가 된다. 이는 계시록을 보고 들은 자의 증거이다(계 22:8).

이단 신천지 핵심 교리에 대한 반증

인(印)을 떼는 것은 형(刑)을 집행하는 심판을 말한다.「계6:1-8」에 인을 떼는 때에 출현하는 백마 탄 자, 각종 말들은 단 한명도 구원하는 자가 아니다. 여섯째 인을 뗄 때 어린 양도 진노만 있을 뿐(계6:16) 단 한명도 구원하지 않으며 일곱째 인의 일곱 나팔을 심판하는 천사들도(계8:1-13), 단 한명도 구원하지 아니한다.

재판 도중에는 죄인에 대하여 판사가 죄를 더할 수도 있고, 죄의 형벌을 아주 적게 낮출 수도 있지만 판사의 심판이 끝나면 형(刑: 형벌의 준말)을 집행하는 심판만 있을 뿐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인(印) 떼는 심판은 판결이 끝난 형벌의 집행을 말한 것이므로 인(印)을 떼는 때에 출현하는 백마 탄 자나 감람나무나 예수님이나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한 명도 구원하지 아니하고 심판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심판의 집행이 인을 떼는 심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계 6장의 저울과 한 데나리온의 밀 한 되 보리 석 되라는 것은 한 데나리온은 하루의 품삯이요, 하루 품삯이 겨우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 밖에 되지 아니하는 지상 최대의 기근(饑饉)의 저주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인을 뗄 때의 일이므로 형 집행에 해당된 심판의 말씀이다.

신천지는 밀과 보리가 구원받을 알곡 성도를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성경의 맥을 전연 모르는 어불성설(語不成說: 말도 안 되는 말)로서 동문서답 하는 거짓말이다.

형(刑)을 집행하는 날일뿐이요, 구원받을 알곡 성도들은 등단 할 수 없다. 밀 한 되 보리 석 되는 죽음에 가까운 하루 품삯이요, 구원받을 알곡 백성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보리 석 되라는 것은 한 데나리온이 하루의 품삯을 말함으로(마20:2) 하루 품삯이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라는 것이다.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가 현재 12,000원 정도인데, 12,000원으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이는 지상 최대의 기근이 있을 저주를 예언한 말씀이다.

하루 품삯이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 밖에 되지 않으니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계6:6)’ 라는 말씀에 대하여 신천지는 이만희 씨의 저서 「계시록의 진상」(1985년 12월 12일 발행) p95쪽 19줄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다.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이는 믿음이 사단으로 기울어진 모두를 해하고 포도주인 예수의 말씀과 감람유인 증인 곧 요한(이만희)이 증거한 역사와 그 말씀을 보존케 한다는 말이다. 결국 모두가 원수 대적에게 다 먹히고 사도요한적인 인물로 오신 자(이만희)와 그 속에 두세 명(밀 한 되 보리 석 되)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것을 보여준 내용이다.’ 라고 저주의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이만희 씨의 저서 「계시록 진상2」(1988년 5월 31일 발행) p105쪽 26째줄 이상의 내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신다. 이 감람유는 증인(이만희, 홍종효 두증인)의 말씀이요, 포도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네 생물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증하고 거짓된 것을 심판하기 위하여 온 것이지 참 증거를 멸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밀 한 되의 말씀과 보리 석 되의 참 증거는 해치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같은 내용의 이만희 씨 저서라도 ‘계시록 진상1’에서는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였고, ‘계시록 진상2’에서는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의 참 증거(이만희)를 해치지 말라는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뱀(이단) 혓바닥의 끝이 둘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같은 제목의 말에서 이단들은 처음의 한 말과 나중에 하는 말이 다른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는 성경의 본뜻은 무엇인가? 공동번역 성경에서 쉽게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있다.

‘그러자 “하루 품삯으로 고작 밀 한 되, 아니면 보리 석 되를 살 뿐이다. 올리브기름이나 포도주는 아예 생각하지도 마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공동번역 계6:6>

이는 하루 품삯으로는 올리브 기름이나 포도주를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알곡 백성을 축복한 말씀이 아닌 것이다.

기록된 공동번역의 말씀과 신천지 이단의 교주 이만희 씨의 말을 비교하여보라! 이만희 씨가 성경 기록에 없는 허황된 거짓말로 성경을 얼마나 변조하고 조작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벧후1: 20~21)

계22:18-19을 자세히 읽어보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언의 말씀을 신천지 이만희 씨와 같이 가감하여 변조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다 받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저주는 신천지 신도들의 받을 몫이라고 하겠다.

이단 신천지의 새 노래 해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3
이단 신천지의 거짓 증거

노래는 말씀이요(신 31:30, 시 119:54, 172), 새 노래는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된 계시 말씀이다(계 14장)


이단 신천지 핵심 교리에 대한 반증

신천지 교회는 새 노래를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알리는 실상의 복음 계시 말씀이라고 하였다. 노래라는 것은 가사가 있고, 곡조가 있을 때에 노래라고 한다. 가사만 있는 것을 노래라고 말하는 자는 없다. 사전에는 노래를 목소리에 곡조를 붙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새 노래를 새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무식과 무지가 고도로 발달된 거짓 선지자의 말장난이다. 계7:4에서 인침받은 14만 4천명이라고 하였고, 시온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 14만 4천명이 새노래를 배워서 부른다고 하였다.(계14:3) 14만 4천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로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로서 정절이 있는 자라고 하였으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계14:3-5)

신천지 이만희 씨의 교인들은 한명도 새 노래를 부를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이만희 씨가 1974년 9월 14일 지상천국이 온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니 거짓말을 따라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만이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라고 하였는데, 신천지는 14만 4천이 찼다고 주장하지만, 그들 모두는 거짓말을 한 이만희 씨를 따르는 자들이므로 사9:16에서‘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다. (사9:16을 보라!)

시40:3에서 많은 사람이 새 노래의 가사를 보고서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이는 새 노래의 가사 중에서 심판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새 노래의 가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26:1-7」에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고 한 가사가 기록되어있고,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라고 가사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계15:3-4)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부른 노래의 긴 가사는 출15:1-18까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신구약 성경에 많은 새 노래의 가사가 있다. 계5:9-10, 창9:26-27 등등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사로 한 노래가 새 노래요, 이만희 씨를 찬양하는 가사는 새 노래가 아니다.

출처 : 크리스천월드(http://www.christianworl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