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30.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본문말씀 : 로마서 1장 3~4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우리가“하나님을 안다”혹은“예수님을 믿는다”하는 것은 신(神)을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신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흙으로 지음 받은 미물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사람 앞에서라면 외모를 잘 보여야 되고 아양도 떨어야 되겠지만 하나님, 신 앞에 나와서는 외모가 아름답다고 해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도 아니고 아양을 떤다고 해서 축복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신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선한 마음의 바른 정신과 정도(正道)를 가는 바른 마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초림을 하셨습니다.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셨는데 어떻게 오셨는지 보시겠습니다.

마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실 때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셔서 기록된 대로 가신 줄로 믿습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오셨다는 예수님이 실상으로 공중에서, 창공에서, 무슨 나무 잎사귀를 타고 온다던지 구름을 타고 온다던지 그렇게 오신 것이 아니고 마리아라는 여인의 몸을 통해서 이 땅 위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분을 하늘에서 오셨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말씀들이 비유와 비사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비유란 말은 실상과 비슷한 것을 들어서 설명한 것을 비유라고 말하는데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봐서는 하나님의 참 뜻을 알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유와 비사로 기록된 것을 우리는 성경의 문자대로만 알아야 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짝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이해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내용을 성경에서 참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3:10~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에“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천국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갈 수 없는 자들이 천국갈 자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까, 천국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주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략을 모르고 오늘날까지도 비유의 설교나 예화의 설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유와 예화의 설교를 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닫기를 바랍니다.

막4:33~34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혼자 계실 때에는 제자들에게 다시 설명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증거 되는 말씀들이 많은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요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오늘 비사의 말씀을 실상으로 깨닫는 큰 은혜의 놀라움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삼만 구절이 넘는 성경구절을 다 암송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 사람으로서는 다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이 지구상에서 틀림없이 이루어진다.”이런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신앙할 수가 없습니다. 믿을 것이 있어야 바랄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으로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간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절대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식언, 헛된 소리하지 아니하시고 틀림없이 실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고 했는데“내가 하나님이요.”하고 나타난 한국의 기독교 교주들은 정말로 가증한 인간들입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런 말씀 한 말씀만 봐도 내가 재림주니 혹은 내가 하나님이니 하는 자칭 재림주 감람나무라고 하는 자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결정하였으면 변경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취하실 줄로 믿습니다.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사람은 사정에 따라서 약간 변경할 수도 있고, 혹은 사정에 따라서 거짓말할 수도 있으며 거짓말하기 위해서 거짓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존자이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심으로 결코 변개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틀림없이 성취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이나, 예수님 때에 하나님이나, 말세의 하나님이나 다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하였습니다(계1:8).
하나님은 구약 때 하나님이 다르고, 신약 때 하나님이 다르고, 말세의 하나님이 다른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변하여 바뀔 수)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하나님이 되신(빌2:6)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동일한 분으로서 이 땅 위에 살아계실 때에 병든 자를 고치시고 고통당하는 자의 고통을 들어주시고 소경을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우리 주님, 그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주님이 어떻게 이 땅 위에 재림하시고 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인자되신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셔서 기록된 대로 가신 줄로 믿습니다.

시132: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찌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찌라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하게 맹세하였으니 변하지 아니 하시리라고 하셨고, 네 몸에서 난 자가 너보다 위(位)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자가 다윗보다 높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게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건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을 때에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롬1:3). 성경은 누가 변개하고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변개하거나 바꾸면 계시록 22장 18절에서 19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성경을 더하거나 빼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절대로 용서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변개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시게 된 것이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는 내용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롬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확인한다면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몸의 피가 통했다는 것이 혈통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실히 약속하시기를 네 몸에서 나온 네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한 성실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도행전 13장 22절로 보겠습니다.

행13:22~23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실히 맹세하신 대로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씨에서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기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예수가 사람의 씨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우리는 틀림없이 성경을 믿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혈통에서 사람의 씨로 이 땅 위에 오시고 성령으로 잉태를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를 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을 했고 그 예언은 아주 적중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야 하는데 왜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은 실상의 예언이 아니고“징조”로 주신 징조의 예언이기 때문에 예수라 하지 아니하고 임마누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인 줄로 믿습니다.

마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기록된 말씀과 같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다 이루리라고 하심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하신 말씀은 성령의 잉태하심을 말한 것으로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예수를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나심의 과정이 처녀의 몸에서 메시아되신 그리스도가 잉태할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이루어졌다는 사실 또한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으로 잉태하시사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말씀을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 길을 따라서 이 땅 위에 성탄을 하셨기 때문에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탄한 장소에 관해서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지 보시겠습니다.

미 5: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상고 곧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이스라엘을 다스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실 것을 하늘이 정하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신 것이 상고(上古), 태초(太初) 곧 천지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모략입니다. 나사렛에서 사시던 예수님이 헤롯왕 때에 호적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호적하러 천리나 되는 그 길을 임신한 마리아가 아기를 낳으러 간 것이 아닙니다. 호적하러 갔다면 등록만 하면 됩니다. 어디에 살고, 남자는 누구고, 여자는 누구고, 등록만 하면 간단하게 처리되는 것인데 간단하게 처리하고 돌아왔더라면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눅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때에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을 하러 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때를 딱 맞춰서 마침 가던 날 여관에 들어갈 데가 없었습니다. 왜 머무를 장소가 없겠습니까? 그 때에나 지금이나 돈만 있으면 안되는게 없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강도도 무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예수님과 바꿔치기 했는데 당시에 2배나 3배 돈만 주면 여관주인이 안방까지 내 줄 판인데, 요셉과 마리아에게 돈이 없으니까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리아는 해산할 때가 되어 산통이 오는데 산모가 들어갈 곳이 없어서 급한 나머지 마굿간에 간 것입니다. 아주 천한 자로 이 땅 위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때를 맞추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신 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때 만약에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영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베들레헴에서 성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성탄했더라면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나게 하기 위해서 호적하러 가라고 한 게 아닙니다. 때를 적절하게 맞추어서 호적하라고 할 때에는 그저 로마의 법에 따라서, 인구 파악도 하고, 그래서 시작한 것인데 그것은 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법이 다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쓰여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령을 받고 복음전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성탄 육백팔십 년 전에 예수님이 성탄하셔서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61:1~ 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기록된 말씀은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주의 신을 받은 것 같이 예언했는데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한테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한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눅4:17~18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는 사람이 이것은 이사야시대에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이 성경을 보니까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것이 성경으로 확인된 줄로 믿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복음을 전한 것까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던 것이 예수님 때 와서 다 이루어짐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 위에 오신 것이 입증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사장과 장로들이 가룟 유다를 유혹해서 은 삼십냥에 팔렸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이 있는 장소를 가리켜줘서 예수님이 붙잡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미 스가랴 선지자로부터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는 가룟 유다는 배신자, 가증한 자, 죽일 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가룟 유다같은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슥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고 돈궤를 맡고 있는 가룟 유다를 유혹해서 은 삼십냥의 고가(고용의 댓가, 품삯)를 받고서 예수님을 팔아먹을 것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적중해서 마태복음 27장 3절로 보면 그 예언이 성취된 줄로 믿습니다. 또 그 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까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사53:4~ 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채찍을 맞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고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그런 고통과 고초를 당할 것을 성경은 이미 예언을 해 놓았고,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과 고초를 당하셨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런 내용이 마태복음 27장 3절에서 8절까지 은 삼십 냥에 팔릴 것이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 26장 24절에는 예수님이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오실 때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하면 성경에 기록된 예언대로 오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땅에 이만희라는 사람이 교인을 수만 명 모아서 자기 자신이 재림예수라 하며 굉장히 큰 교회를 짓는다고 세상이 떠들썩한데 진짜 재림예수가 그렇게 올 수 있는 사람인지, 진짜 재림예수는 어떤 분이 재림하신 예수로 오셔야 될 것인지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로 답변을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야 성경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기를“죽었던 예수가 육체 그대로 살아났다.”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 것처럼 그 머리 노랗고 눈 노란 예수님이 그대로 육체로 살아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대로 살아나셨다면 문제가 됩니다. 성경하고 차이가 많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한 여인들이 제일 먼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보니까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삼일 전에 무덤을 보고 갔고 병정들이 지키는 걸 보고 갔는데 가보니까 무덤이 환히 열려 있고 무덤은 텅 비어 아무도 없습니다. 마리아가 밖에 나와서 울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마리아 앞에 선 것을 보고 동산지기인줄 알고 말하기를“혹시 우리 주님의 시신을 어디 두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우리가 가져가리다.”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때에 마리아 앞에 그 서 있는 분이“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삼일 만에 만났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착각했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이 저를 보고 있는데 삼일 후에 어디서 만나서 “아 저 분은 지난주에 설교하신 목사님이시다.”이렇게 알 수가 있는데 삼년 동안 같이 따라다녔던 사람이 삼일 못 봤다고 그 다음날“누구시더라”하면 둘 중에 누구 한 사람은 정신 이상자 같이 돈 사람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삼년 동안 자기를 가르친 학교 선생님이 계셨는데 역전에서 만나서 선생님을 보고서“누구세요?”한다면 둘 중에 한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고 돈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 내용을 성경을 통해 한번 보겠습니다.

요 20:15~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그렇다면 왜 삼년 동안 같이 생활하고 먹고 잠자고 했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육체의 예수님과 부활한 예수님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육체의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방안에 모여서 로마 병정들이 잡으러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방문이 닫힌 가운데“너희들 편안할지어다.”하고 예수님이 나타남으로 제자들이 귀신 나온 줄 알고 있으니까 “나의 손과 발을 만져보라. 귀신은 만져보면 만져지지 아니하되 나를 만져보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부활 예수님을 직접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활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리를 들은 도마는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나는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발의 못자국과 또한 허리에 창자국을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잃어버린 아들이 귀 밑에 사마귀가 있는데 귀 밑에 사마귀 보고 찾아야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귀 밑에 사마귀는 다른 사람도 나 있을 수 있습니다. 얼굴을 보고서 사람을 찾아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창자국은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 예수님 혼자 달린 것이 아니고 강도도 그 옆에 달렸는데 강도도 창자국, 못자국, 다 있습니다. 창자국, 못자국 보고 찾으려 하는 것은 부활 예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입니다.

요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흔적이 있는 손과 옆구리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제자들이 기뻐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얼굴을 보고 기뻐서“아이고, 주님”하고서 기뻐해야 되는데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니까 기뻐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 좌우편에 달린 강도도 손과 옆구리에 십자가의 상흔(傷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주님을 뵐 때는 손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알아야 합니다.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요20:24~25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제자 중 도마가 가장 의심이 꽉 차 있는 자였습니다. 꼭 예수님의 창자국 못자국을 보고 만지므로 주님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팔일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도마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가정예배를 보고 있는데 당회장 목사가 갑자기 방 가운데 나타나서“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러면 다 깜짝 놀라 기절하고 넘어질 일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제자들의 방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으니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미 예수님의 손의 창자국과 못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고 한 소리를 예수님이 다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를 만나자마자“너 이리 와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마가 겁이 나서 살금살금 가서 옆구리를 만져보니까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하기를“나를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시고 너는 보는 고로 믿느냐?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꼭 무슨 증거를 보고 확인을 하고 해서 주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한 줄로 믿습니다.

요 20:27~29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중요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창자국, 못자국 있는 예수님이라면 예수님 믿을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창 자국, 못 자국 있는 예수님이라면 스데반 같은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서 골이 터지고 창자가 터져 나와 죽었는데 부활할 때 골이 터지고 창자가 터진 채로 부활해서 살면 뭐하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차라리 부활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창자국 못자국이 깨끗이 없어지고 골이 터지고 창자가 터진 것도 없어져야 합니다. 더 좋고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하여 구원 받아야 참 구원이 될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팔 잘리고 다리 잘리고 눈알 빠진 채로 부활하면 뭐합니까? 예수의 부활은 창자국, 못자국 있는 육체의 예수로 부활한 주님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너무나 불신하니까 십자가의 상흔(상처의 흔적)을 표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창자국, 못자국 보여준 표적 말고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상흔(傷痕)을 표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재림 주는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주님이 재림하여야 재림주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사람이 오면 가짜 주요, 적그리스도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주님은 어떤 주님이었는가 하면 방문 닫아 놓은 가운데에서 나타나신 시공간을 초월한 주님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청년과 대화를 하고 가다가 해가 져서 배가 고프니까 주막에 가서“뭐를 좀 먹고 갑시다.”하고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이 두 청년은 하루 종일 예수와 함께 다녔지만 예수님인 줄 모르고 다만“이 분이 성경을 많이 아는구나”생각하고 있다가 빵을 떼어서 주니까 받으므로 영안이 열려서 부활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주님”하니까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눅24:30~31).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신 부활 주님이 오셔야 재림주로 믿을 수 있는 주님입니다. 방문 닫은 가운데 나타나고 방문 닫은 가운데 나갈 수 있는 그런 주님이 참 재림 주이심을 성경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육체의 예수님은 죽을 수 있는 주님이었으나 부활 주님은 다시 죽을 수 없는 시공간을 초월한 주님입니다. 지금 재림주로 나온 자들은 모두가 죽은 자들이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는 가짜들이요, 인간 쓰레기요 가증한 자들입니다. 성경으로 볼 때에 재림주는 시공간을 초월한 주님이 재림주님인 줄로 믿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기는커녕 새끼줄로 묶어 놓으면 풀지 못하고 나올 녀석들이 재림주로 나와서 큰 교회를 짓는다고 온갖 소문을 퍼뜨리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므로 초림예수는 육체로 오셨지만 재림예수가 육체로 온다고 하는 자들은 전부가 이단자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주님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체는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성경에서 확인하여 보시겠습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육체의 몸이 썩을 몸으로 죽었으나 부활체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였습니다.

고전15:43~44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신령체의 부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육체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서 신령체로 바뀐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썩지 않을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칼로 물을 쳐도 칼만 지나갈 뿐이지 물은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는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고전15:44) 부활하신 분이 부활체의 주님인 줄로 믿습니다.

구인회가 재림예수로 자칭하여 1982년 11월 10일 오전 11시에 과천에 육천도의 불이 떨어지고 지상에 천국이 과천에서 이루어진다고 호언장담하였고, 만약에 천국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기 시체를 서울 시청 앞에 매달아 놓고 저주를 하라고 큰소리 쳤습니다. 구인회를 재림예수로 믿는 자들은 1982년 11월 10일 오전11시 천국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서 모두가 재산을 탕진하고 영혼을 망쳤습니다.

사기행각으로 감옥에서 형을 살던 재림 예수 구인회는 소문에 의하면 감옥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재림 예수가 왜 죽습니까? 성경에는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오신 주님이 재림주인데, 만약에 구인회가 재림주로 와서 감옥에 갇혔다가 저녁에 나와서 교인들하고 예배보고 또 새벽에 슬쩍 감옥으로 자진하여 들어가면 “진짜 재림주구나.”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도 있을 터인데, 육신의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은 자가 재림예수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에 재림주로 온 자들은 모두가 가짜요, 적그리스도입니다. 재림주로 온 이유성, 안상홍, 조희성, 구인회 같은 자들이 모두가 다 죽었고 현재 재림주 행세를 하고 있는 김민석, 정명석, 이만희, 홍종효, 백만봉은 가짜 재림주요, 적그리스도가 된 모든 자들도 나이 들고 병들면 반드시 다 죽을 것입니다.

재림주가 와서 죽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도 예언도 없습니다. 부활체의 주님, 시공간을 초월한 주님으로 오지 아니한 모든 자들은 가짜요 적그리스도요 천당 사기꾼들로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입니다.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를 구별하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진짜 재림예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은 여러분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 당하는 자들이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일곱째 나팔 때에 홀연 변화를 받아 신령한 몸이 되어서(고전15:51~54)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존귀한 자들이 되시기를(빌3:21)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