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11. 속건제물과 씨

본문말씀 : 이사야 53장 10~11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님 앞에 드린바 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성경을 증거한다고 하고서 예수를 증거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증거하고 자랑을 하는 것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장관 하나만 알아도 허가내는 것이 참 쉽습니다. 세상에서 대통령만 알아도 하고자 하는 일이 아주 쉽게 이루어지는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시고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얼마나 축복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보화를 얻은 것보다도 더 큰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기록된 말씀에서 “주여! 주여!”하는 자들은 행함이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주여! 주여!”하는 무리가 백이든 천이든 만이든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들어간다고 하였으므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 뜻대로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이지만 목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책임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했다는 것은 그릇되게 생각했다, 잘못 생각했다, 틀리게 생각했다, 본래의 뜻과 다르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본의 아니게 다르게 생각하여 오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크게 오해 하고 있는 부분을 여러분들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오늘날 이 세상입니다. 친구라고 믿었다가 사기당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형제간에도 믿지 못해서 시기하고 다투고 싸움질하는데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神)을 믿는 자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믿음 가진 자가 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오해된 부분이 있으면 풀어야 됩니다. 풀지 않으면 평생 원수같이 지내게 되고 만나서 풀 때에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은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해된 부분이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하나님 내 형편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해 주십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20년, 30년 동안 평생 오해했다가 죽을 때까지 오해하고 간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13장 34절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게 될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눅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숨어있는 비밀의 말씀이 풀어지면 많은 기독교인의 큰 오해가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이 사형 집행하는 법으로 정해 놓은 방법입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고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악한 자들을 심판 했습니다. 차라리 참수하여 1,2분 만에 죽게 하는 것이나 약을 먹고 죽는 것이 죽는 사람에게는 편할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긴 시간동안 고통 받으며 죽게 하는 것은 약을 먹는 고통보다도 더 심한 것입니다.

굵은 대못을 양 발과 양 손에 박으면 몸의 무게에 의해서 밑으로 쳐져서 뼈가 쓰린 아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고통에서 순식간에 죽어 버리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그래도 고통이 좀 덜하겠지만 그 조금씩 흘러내리는 피로 사람이 피말라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못을 박아 놓으면 저녁에 가도 죽지 않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가도 죽지 않고 또 그 다음날 아침에 가도 죽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빨리 죽게 하기 위해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피가 쏟아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날 운명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서 살아 있을 동안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아픈 자를 고쳐주고, 소경된 자를 눈 뜨게 해 주고, 문둥병자를 낫게 해 주고, 저는 자를 뛰게 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픈 자를 낫게 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질이나 아무 욕심도 없이 많은 사람에게 봉사를 하셨습니다. 그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 길가의 보리 이삭을 주워 그것을 구워 제자들과 나눠 먹기도 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많은 사람을 위해 고기 두 마리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그 십자가의 흘리신 피로써 우리를 구원했다고 알고 있는 것이 기본 상식입니다. 또한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하나 그보다 앞서 우리 주님께서 행하셔야 될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양 옆에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 강도들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53장에 기록 되어 있는 말씀은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예언을 하신 말씀입니다. 약 팔백육십년 전에 예수님에 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아서 예언해 놓은 말씀입니다. 약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 있을 예언을 하였는데 그 예언은 너무나 적중을 했고 또 빠짐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 53장 10절을 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이사야 53장 1절부터 잘 기록이 되어 있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요12:36~40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 말씀의 내용은 이사야의 예언이 요한복음에 가서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 팔이 바로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팔이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대통령의 오른팔이다.” 성경은 이와 같이 비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팔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손의 능력은 하나님의 손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팔이 나타난 것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기를 연한 순 같고’ 라고 하였습니다. 연한 순 같이 조용하게 돋아난 새싹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도 임금의 집안에 아들이 태어나면 수많은 사람이 와서 찬양하고 대단하다고 떠들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올 때에는 들썩이지 않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가 없었습니다.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던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은 그날 밤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멀리서 동방 박사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별을 보고 찾아와서 경배를 했고 저 들판의 이름 없는 양 치던 목동들이 찾아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연한 순같이 소리 내지 않고 조용하게 오셨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그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양이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라고 하였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는 아주 가늘고 힘이 없습니다. 수분이 많은 곳은 살도 통통하게 찌고 새 순이 날 때에 보기 좋은데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니까 예수님이 바싹 말라서 별 인물 없이 나신 것입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예수님은 아주 피부가 곱거나 얼굴이 예쁘거나 하지 않고 풍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진을 보면 특히 천주교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찐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성경 상으로는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 사람을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없고 사모해서 연애 한 번 해볼까 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 곁에는 사람들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디 공원에 놀러 갔다가 침을 질질 흘리고 때 묻은 거지가 앉아 있으면 그 옆에 앉는 것보다 차라리 다리가 아파도 서 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연예인 같이 멋있게 생긴 남자라면 그 옆에 여자가 앉아 보고 싶고 미스월드같이 아름답게 생긴 여자라면 남자가 그 옆에 앉아 보고 싶겠지만, 예수님은 너무 못 생겨서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많은 고생과 생활의 어려움)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고생과 아픔)를 아는 자였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이 멸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천대 받도록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육신적으로 잘 생긴 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아주 못 생긴 분으로 오셨던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잘 생긴 것 보고 좋아하다가 큰 일 납니다. 그 사람 속에 천사가 들어 있는지 이리가 들어 있는지 늑대가 들어 있는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비록 못 생긴 얼굴이지만 예수님 속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예수님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저것 봐라! 잘난 체하고 병 고치고 하나님의 아들인 체하더니 저 십자가에 달린 것 봐라! 죄인인 주제에 자기가 만왕의 왕 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 라며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방하는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도 “주여, 저는 죽어도 주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해 놓고(요13:37) 재판 받는 도중에 조그만 계집 종 하나가 찾아와서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죠?” 라고 하자 베드로가 “아니다!” “내가 봤는데요” “아니다!” “베드로잖아요?” “아니다!” 하고서 예수를 안다는 그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한 그 말씀이 생각이 나서(요13:38) 그때서야 통곡하고 울었지만 뉘우침에 울어도 때는 늦은 것입니다(마26:69~75).

그렇게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파도같이 물밀 듯이 몰려오더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자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 세상이 그런 것입니다. 돈 있고 권세 있을 때는 개만 죽어도 손님이 문전성시로 모여 들어서 슬퍼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죽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행할 때에는 수 천 명이 몸을 용신할 수 없도록 모여 들었으나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수제자 베드로마저 배신한 상황에서 심지어는 강도로부터도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기록된 말씀에서 우리 주님의 고통은 자기를 위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만민의 모든 허물과 죄를 인하여 예수님이 친히 질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지구상에 이십 억이나 되는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롬9:27).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한 그 말씀대로(요12:24) 오늘날에 와서는 이십 억이나 되는 수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혼자였으나 오늘 이 세대는 이십 억이나 되는 사람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주님을 믿고 그를 기다리는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고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양은 순수하고 좋지만 시기, 질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떨어져 자면 서로 시원할까봐 꼭 붙어서 자고 겨울에는 다른 양이 따뜻할까봐 서로 떨어져 잔다고 합니다. 순하긴 하지만 양들은 그렇게 시기와 질투가 많습니다.

털을 깎다가 살점이 베이면 염소는 들이받지만 양은 가만히 있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앞에 가는 양을 따라가기를 잘해서 앞에 가던 양이 개울을 건너다가 돌에 발이 부딪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건너가면 성하고 멀쩡한 양도 따라 가다가 앞서 간 양이 돌에 발을 부딪힌 곳을 지날 때면 절뚝거리고 지나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은 순하고 착해서 남 따라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방법의 시기와 질투로 발전하고 성장해야할 줄 믿습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심으로서 천하 만민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 번의 십자가로서 우리를 구원시켜 주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죄 없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담당이라는 말을 지금까지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조시대 때에 양반의 아들이 죄를 지으면 매를 맞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양반집 아들이 잘못을 하여 곤장 20대, 태형 30대의 벌을 받게 되면 종이 아들을 대신해서 매를 맞으러 갑니다. 매를 대신 맞는 종은 보상으로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댓가로 받기로 합니다. 그렇게 종이 양반 아들 대신에 매를 맞고 오면 양반의 아들은 매를 맞으러 갈 일이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 옛 조상들의 풍습 가운데 초상이 나면 가족 대신에 울어 줄 사람을 사 와서 가족을 대신하여 슬피 잘 울어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초상집에 가족을 ‘대신’하여 울음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죄 값을 담당하셨습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예수냐?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사람들이 온갖 욕을 하고 손가락질해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눅23:35~38). 재판 할 때에는 재판관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하자 그때 가서 예수님이 “네가 말하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나라와 너의 권세는 땅에 있지만 나의 나라와 나의 권세는 하늘에 있느니라.” 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당해도 고통의 소리를 내지 않고 참았습니다.

사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만민의 죄를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를 죽이는 자에 대하여도 도리어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눅23:34).

이와 같이 예수님은 아무도 원망치 않고 인류를 죄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보고 욕하고, 침 뱉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을 보고 “주여, 나를 찌르고 욕하고 창으로 찌르는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나를 알지 못함이니이다.” 도리어 그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구세주였습니다.

사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깡패 짓을 하거나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거나 자기의 유익을 위한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이 악인들이 묻히는 것 같이 부자들의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이 팔백 년 후에 이루어져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빠짐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원하셨습니다. 왜 원하셨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은 만세 전에 작정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비밀한 가운데 있는 지혜의 비밀 중에 비밀입니다.

고전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것은 만세 전에 정하신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이렇게 예언되어 있고 우리 만민의 죄를 위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할 것을 예언해 놓았는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사야의 예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아 구세주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셨고(미5:2) 이렇게 고난당하실 것을 이사야서에 자세하게 예언하고(사53:6~8) 기록하였으며 다윗 선지자를 통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할 것과(시41:9)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은 삼십 냥에 팔리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슥11:12).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빠짐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눅24:27). 본문 말씀을 보시면서 깊은 말씀 깨닫기를 원합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바꿀 속(贖), 허물 건(愆), 속건제물(贖愆祭物)이라는 것은 천하 만민의 허물을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 예수님을 제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살 때에 돈과 물건을 바꾸듯이 많은 인간의 허물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물로 바꾼 줄 믿습니다.

그런데 속건제물이 예수님의 육체에 대한 속건제물로만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육체가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와 바꿔치기 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된 예언은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영혼이 속건제물(贖愆祭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속건제물 된 것을 이천 년 동안 몰랐습니다. 영혼이 속건제물로 드린 것을 모르고 예수님의 육체가 속건제물로 드린 것으로만 알아 왔습니다.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릴 때에 육체는 따라간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올 때 여러분의 마음을 주관하는 영혼이 교회에 갈 것을 생각하고 난 뒤에 육체가 정신의 영혼을 따라간 것이지 아무 생각 없이 오다 보니까 교회에 온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렸다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생각에 생각을 다해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수님이 친히 각오하시고 작정하셨을 때에 그 영혼이 벌써 하나님 앞에 속건제물로 드리신바 되신 것입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며 큰 소리로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라고 부탁하면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도 조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십자가를 당당하게 지시고 약하게 보이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그 동안에 그리스도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속건제물이 된 줄 믿습니다.

만약에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영혼의 속건제물이 없었다면 우리의 참 구원이 될 수가 없으며 아무런 값어치가 없습니다. 순교할 믿음과 신앙이 없는 자가 악인에 의하여 죽었다고 ‘순교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또한 육체도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가족이나 친지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로써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해야 됩니다.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은 자들의 영혼을 조물주에게 부탁하라고 하였습니다. 운명을 하기 직전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는 “하나님, 이 분의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을 드립니다.” 하고서 기도를 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의 축복입니다.

더 큰 은혜의 축복을 하자면 주님께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드린 것 같이 “하나님께 부탁드리오니 이 영혼을 하나님이 받아 주시고 천국 길을 인도하여 주소서(눅23:46)” 이렇게 짧게 기도해도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가 고인에게 큰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면 그 결과로 무엇이 생기는가 하면 당연히 세상 만민의 죄를 대속하는 것입니다 (엡2:15~18, 히10:12).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이 속건제물 드린 것은 육체가 드린 십자가의 피만이 속건제물이 된 줄 알았지만 영혼이 먼저 속건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육체와 함께 속건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십자가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예수)가 그(예수)의 씨를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식물이 다 자라고나서 씨가 되면 자기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놓고 난 그 다음에 죽습니다. 모든 채소는 씨가 나왔다고 하면 본체는 다 죽는 것입니다. 채소들의 생명은 씨를 만들기 위해서 성장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마당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솔방울이 많이 달렸습니다. 수분도 없고 빗물이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죽을까 싶어서 씨라도 남겨야 되기 때문에 솔방울이 많이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솔방울이 많이 달린 나무는 “나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와 같이 식물도 자기 새끼를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씨’로 남기는 것이 식물의 본성입니다. 죽어가는 소나무에 물을 많이 주었더니 솔방울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수분이 많고 살기가 좋으면 솔방울이 없고 소나무가 죽을 때가 되면 솔방울이 많이 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씨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님께서 속건제물을 드리면 그가 그 씨를 본다고 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씨가 누구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물(贖愆祭物)로 나온 씨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서 우리의 죄를 또한 친히 담당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끝날이 되면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릴 날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사람의 씨로 뿌림을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고 짐승의 씨로 뿌림을 받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바로 마지막 때입니다. 이 말씀에 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렘31:27~2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린다고 했는데 이 사람의 씨로 뿌려질 것은 어떤 것이며 짐승의 씨는 어떤 것인지 먼저 사람의 씨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행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예수님이 사람의 씨입니다. 사람의 씨를 뿌릴 날이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씨앗이 뿌려질 날이 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4: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마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예수님과 같은 구원 받을 하나님의 씨를 성경에는 사람의 씨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맏아들로 오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눅2:5~7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니까 형제도 없는 외아들 독자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셨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맏아들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아들들이 되게 하는 역사를 이루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어야(롬8:19~25) 예수님이 맏아들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에 맏아들로 오셨고(눅2:7) 재림하실 때 또한 맏아들로 오시게 됩니다.

히1: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찌어다 말씀하시며

처음 태어나실 때 맏아들로 오셨으니까 재림하실 때에도 맏아들로 오실 줄 믿습니다. 맏아들은 많은 아들 중에서 맏이가 된 아들이 맏아들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맏아들로 오신 줄 믿습니다.

갈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많은 사람이 종의 반열에 있었다가 주님이 오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줄 믿습니다. 이전까지는 종이었으나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들로 축복될 줄 믿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사람이 사람의 씨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짐승의 씨는 사단에 속한 이단자들로서 “내가 하나님이요, 내가 재림주요, 내가 감람나무요” 하고 나올 자들 전부가 다 짐승의 씨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딛1: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그레데인들을 악한 짐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절에 뱀을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이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뱀들,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짐승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짐승입니다(계13:18).

기록된 말씀과 같이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가는 자들이 사람 짐승들인 줄 믿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뿌려질 때입니다. 예수님이 속건제물(贖愆祭物)로 드려지면 예수님이 그 씨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의 속성된 사명자입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님의 씨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사명자로서 “그의 날은 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속건제물의 씨가 된)의 손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이후에 예수님의 씨로 나오는 사명자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큰 일을 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요14:12). 이 일은 그리스도 이후에 세상 끝날에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마6:10)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계11:15, 계20:6).

사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기록된 말씀에서 속건제물의 씨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함으로서 자기(예수) 영혼의 수고한 것을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수고한 것은 속건제물을 드려서 인류의 죄와 허물을 예수님의 제물과 바꾼 십자가의 승리를 말합니다. 영혼의 수고한 것을 만족히 여긴다는 것은 속건제물로 인한 “씨” 를 보게 됨으로서 씨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그리스도의 나라,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건제물의 씨로 나온 사명자가 이 땅 위에 출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하여 속건제물의 씨가 된 큰 구원을 유업 받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