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셋째 하늘 낙원
본문 말씀 : 고린도후서 12장 1~7절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낙원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보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동산이 낙원입니다. 마음도 즐겁고 육신도 즐겁고 모든 것이 즐거운, 슬픈 것이 없는 세계가 낙원의 세계입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를 주어 먹게 한다고 했는데 이 생명나무 실과는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에 있었던 나무입니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이기는 자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를 주어 먹게 하는데 그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어디에 좋으냐.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기록된 말씀과 같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으면 영생 하는 줄로 믿습니다.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 수 있는 장소가 낙원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고후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이 말씀은 셋째 하늘 낙원에 관한 설교입니다. 제가 지혜롭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손에 지금 주어져 있는 성경 속의 낙원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지적해서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적해서 알려주는 자를 지도자(指導者)라고 합니다. 어떻게 지적해서 알려주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가면서 지적하여 알려주는 사명자를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낙원에 관한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자랑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자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득불 자랑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환상이라는 것은 종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되는 것 또한 현실에 없는 것을 마치 현실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상황을 환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애인이 나와 내일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소문에 미국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날 저녁 꿈에 애인이 찾아왔는데 너무 실물 같아서 반가워서 껴안았습니다. 잠을 깨어서 보니까 베개를 껴안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상으로 미국에 간 애인을 바로 곁에서 껴안은 것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환상이라는 것은 실상으로는 존재하지도 아니한 즉 실상이 아닌 것이 너무 너무나 실상처럼 똑똑하고 정확하게 나타나는 것을 환상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의 스가랴서는 전체가 환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환상의 내용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미래적인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계시적인 내용을 실제로 있는 것 같이 보여 지는 것을 환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자랑할 것이 없지만 부득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문을 열어서 방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이 미래에 있을 것을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실상과 같이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을 계시라 하고 그 계시의 내용을 기록한 것을 계시록이라고 합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는 과거사적인 것이 아니고 미래사적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미래사적인 것이지 과거사적인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미래사적인 것이 아니고 과거사적인 것을 가지고 계시라고 말하면 무식한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啓示)라는 것은 미래의 것, 장래의 것, 앞으로 있게 될 일들을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육신이 치매가 들면 방금 말한 것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딴 짓을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치매 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읽고 확인하고도 딴소리 하는 자들입니다.
분명히 1절에“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이렇게 미래적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하니까, 사도바울이 십 사년 전에 낙원에 갔다 왔다는 허무맹랑한 과거사로 돌아가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사도바울이 십 사년 전에 낙원에 갔다 왔다는 과거사적인 사건으로 가르치고 있고 주석마다 전부 과거사적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앞에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는 내용을 잃어버림으로 치매에 걸린 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또 1절에 기록되어 있기를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하고 기록된 내용인데 이것을 과거사적으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상과 계시는 과거사적인 것이 아니요, 미래사적인 예언의 말씀으로 깨닫기를 원합니다. 과거사적인 것이라면 낙원에 실제 갔다 온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후12:1~2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내가’ 라는 사도 바울이 있고, 그리스도라는 분이 있고,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십 사년 전에 낙원에 다녀온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언적인 한 사람입니다.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라고 한 “그”는 사도 바울이 지칭한 인물로서 사도 바울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을 “그”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라는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입니다.
1절의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이 아니고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하였으므로 예수 안에 있는 미래에 나타날 계시적인 사람입니다. “그”라는 분이 셋째 하늘 낙원에 이끌려가서 앞으로 되어질 일을 보고서 증거 하게 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미래사적인 계시의 말씀으로 자세하게 기록 되어 있는데, 톰슨주석 성경에도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그”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도바울이 말하기를“내가 한 사람을 아노니” 라고 말씀 하였으므로 그 한 사람은 사도바울 자신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말씀함이요, 예수 안에 있는 그 한 사람이 셋째 하늘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계시를 사도바울이 본 것입니다. 그 낙원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환상적으로 볼 때에 그가 예수님의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만은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꿈이 아니고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면 마치 실상을 관광하고 온 것 같이 너무 생생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간증한 것이 있습니다. 압록 강변에 섰는데 백두산에서 ‘뻥!’하는 소리가 나더니 백두산의 물이 하늘로 샘솟아 올라가는 큰 물줄기가 구름 위에 올라가서 버섯 같이 퍼지더니 한 쪽은 동해 쪽으로 굵은 빗줄기가 되어 떨어지고 또 한 쪽은 서해 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해 쪽으로 떨어지는 물이 내 몸을 다 적셨습니다. 너무너무 상상을 초월한 큰 환상을 보고 ‘이게 무슨 뜻일까’하고 성경을 읽어보니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더라” 하는 스가랴 말씀이(슥14:8) 번개같이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계시적인 환상입니다.
또 예를 들어서 하나 말씀을 드리자면 환상 중에 제가 설교를 하다가 보니까, 우리 교회가 예배 드리는 그 모습 그대로 붕 뜨더니 어디로 날아가는데 창 밖에 보니까,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아주 나지막하게 떠올라서 날아가는데 창 밖에 나무들이 보이고 어떤 산속 아주 넓은 평야 같은 곳에 교회가 있는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앉을 때에 무슨 소리가 난 것도 아니고 사뿐히 내려앉은 것입니다. 여기가 낙원이다! 하는 그런 환상을 봤는데 “여러분, 우리가 낙원에 왔습니다. 우리가 내리면 성경에 기록된 낙원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아이구, 어찌할꼬, 우리 아버지 오셔야 되는데 형님 오셔야 되는데…” 전부 그 말을 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중에 날아서 낙원으로 오기 전에 그때 제가 말씀을 증거할 때 별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그 날은 노아의 때와 같다.”이런 말만 한마디 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질 때는 별로 깊은 말씀 예언의 말씀을 많이 하지 아니하여도 한 말씀만 던져주면 사람들이 파도 같이 몰려올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가리켜서 환상이라고 합니다.
실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가상적인 일인데 마치 현재 실상으로 있는 것 같이 보여준 것이 환상입니다. 기록된 말씀은(고후12:1~7) 사도바울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는 전체가 환상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예수 안에 한 사람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환상 속에 있을 때에는 자기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그때는 새벽기도 해봐야 교인이 이십 명 정도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새벽기도 나가서 단상 앞에 무릎 꿇고 있는데 설교단상 발판이 붕하고 공중으로 뜨더라구요. 누가 기계장치를 했나하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 보니까, 붕 뜨는 그때부터 환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넓은 백사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찬송을 인도하면서 사람이 너무 많으니 몸을 비꼬면서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찬송을 부르는데 그 부르는 소리에 깨어 보니 제자리 단상 밑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교회에는 세 명에서 네 명이 와 있었습니다.
실상과 환상이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설교하게 될 것을 하나님이 미리 환상으로 보여 주셨구나.’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날이 있기를 원합니다.
제가 처음 느낀 것은 2003년도에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만 이천 명 초청 집회를 처음 하는데 ‘한 삼천 명 밖에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염려 하였는데 시간이 되어서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지 전화로 물으니 운동장에 사람들이 꽉 찼다고 해서 경호원들의 뒤를 따라서 들어가 보니 정말로 잠실 실내체육관에 꽉 차고 밖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하였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본 환상이 지금 이루어지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주의 환상과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에게 환상과 계시를 준 것이 바로 성경으로서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환상 중에 있을 때는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살을 꼬집어보면 환상 중에서도 꼬집힌 곳이 아파서 꿈이나 환상이 아니구나. 진짜 생시로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아팠어도 그것이 환상과 꿈이었습니다.
환상을 실상으로 보여준 것이 성경에 기록된 환상이므로 고린도후서 12장의 내용은 환상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는 문장의 내용이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너무나 실상 같이 봤기 때문에 강조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고린도후서 12장의 내용은 오늘날 신학자들이 말하는 사도바울이 십 사 년 전에 다녀 온 내용이 아니고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하였으므로 앞으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보았고 또 이 한 사람이 셋째 하늘 낙원에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이는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서 설명이 되지 않는 곳이 낙원입니다.
낙원에서 본 것은 너무나 엄청나고 놀라운 사실이므로 그것을 말하면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쳤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감히 말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말과 글로는 설명이 안되는 즐거움이 무한량한 하나님의 나라, 낙원의 세계가 얼마나 좋은지 천년의 즐거움이 하루같이 지나가는 곳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사랑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낙원 세계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다만 조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사야 65장 17절 말씀에 보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노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이 세상에 있던 것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생각할 시간이 0.1초도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원수가 있어서 생각나고 괘씸하고 “그 못 들어온 것들, 그것 봐라, 약오르지? 지옥에 간 맛이 어떠냐?”이렇게 생각이 들면 원수를 갚는 마음에서 좋을 텐데, 너무 좋아서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곳이 낙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총각들이 너무 좋으면 새벽 두 시가 되어도 부모님이 자식을 기다리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밤이 새도록 손목 잡고 둘이 돌아다닙니다. 세상에서 조금 좋아도 그런데 낙원에 가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설명이 되지 않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낙원에 가서 세상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면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아이구, 우리 아버지도 이 좋은 낙원에 오지 못하고 내 사랑하는 아들도 오지 못했구나,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나” 그런 슬픔이 있으면 낙원이 아니라 오늘날의 이 세상입니다. 낙원의 세계는 너무 좋아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사65:17).
또한 낙원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면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는 곧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고후12:4).
제가 만약에 낙원에 갔다 왔다고 설명을 해도 여러분들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낙원에 대한 사실을 말하여도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 관해서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행13:40~41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낙원의 세계를 말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멸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와서 알려 줄지라도 도무지 믿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그런 일이 혹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멸시하지 말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멸시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놀라고 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선지자가 와서 낙원에 관한 어마어마한 말을 하여 줄 때에 멸시하지 말고 그 말을 믿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만약 낙원에 한 사람만 들어간다면 우리는 신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이기는 자 모두가 다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인지 말씀 가운데서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자격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한 것을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 낙원에 들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낙원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낙원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인지 성경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죄에서 해방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죄인의 사상에 묻혀 있지만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여러분이 듣게 됨으로 죄와 사망의 법, 율법에서 해방 받은 자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해방 받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이러한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15:5~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랑하는 사람은 저 지구 끝에 가 있어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딱 떠오릅니다. 또한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감옥에 가둘 수가 없습니다. 감옥에 있는 자의 생각은 온 세상에 다닐 수 있고 원하는 모든 자는 마음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전도 열매가 많은 자입니다. 전도 열매가 없는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요15:7).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지는 곳이 낙원인 것입니다.
과일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고 수분을 흡수하여 햇빛을 잘 받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이지, 열매 맺을 때 “나 하나 달렸다. 나 배 세 개 달렸다.” 이렇게 말을 합니까?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그 사람이 어떻게 잠잠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된 이 사람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자요, 낙원에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자들인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좋은 말씀, 신선한 말씀, 신령한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감동이 오고 그 감동이 오는 그 말씀이 있을 때에 나가서 전하고 싶은 것이지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오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전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요4:24) 말씀을 증거하는 참 목자가 신령한 말씀이 있어야 말씀을 듣는 자가 감동을 받으며 진정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신령한 말씀을 듣고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요, 말씀이 약동하여 거듭난 사람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가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됨으로서 전도를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도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은 저절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형제를 이 좋은 말씀으로 인도할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딱 앉혀놓고 교회에 등록하면 영적으로 자기 아들을 하나 낳은 것 아닙니까? 자식이 얼마나 귀합니까? 전도 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면 자기 신앙이 저절로 올라가서 기분이 너무 좋아 큰 기쁨을 가질 때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가면 스스로 작아지고 어린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마18:3).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기록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될 때에 우리의 죽을 몸이 예수님처럼 변화 받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영광의 몸의 형체는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령한 몸입니다(고전 15:42~44).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방문 닫아 놓은 가운데 나타나서 “너희들 편안할지어다.” 하고 나타나니까(요20:19) 예수님을 육체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귀신 나온 줄 알고 상 밑으로 기어 들어간 것입니다. “귀신은 만져도 만져지지 아니하노라. 나를 만져보라.” “주여, 제가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겠습니다.” 하고서 예수님 곁에 살금살금 가서 창자국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 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요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몸이 방문 닫아 놓은 가운데 나타나는 신령체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큰 성(城)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벽을 그냥 걸어서 나갈 수 있는 그런 몸이 시공간을 초월한 부활체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빌3:21).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큰 구원을 주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고전15:53~54).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성경에 전한 말씀 복음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계11:15).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없게 임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눅17:20). 지금 이 깊은 말씀이 나오는 것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입니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비로소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눅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자들이 예수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요15:7).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육신적인 정신도 함께 하므로 헌금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충성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에 가도 자기 마음이 아프면 이 세상의 풀들과 꽃들이 다 슬프게 보이고, 자기 마음이 즐거우면 꺾어진 꽃도, 떨어진 장미 한 송이 작은 잎사귀라도 ‘마지막 살아남은 향기가 있구나.’ 하고 꺾어서 코에 대면 장미향기가 나지 다른 꽃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자기 보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물들은 잃어버릴 수가 있고 또한 아쉬울 때 팔아먹으면 없어지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보물은 누가 훔쳐갈 수도 없고 영원히 우리를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골2:2~3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기록된 말씀에 진정한 보화나 보물은 세상이 말하는 금과 은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마음이 즐겁고 몸이 건강하면 별로 아름답지 못한 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여름철에 홍천테마파크에 있으면 개구리 소리가 얼마나 와글와글하고 요란하게 우는지 ‘야, 너희들 여름이 한 철이라고 제 때에 난리가 났구나!’ 굼벵이란 놈이 칠년 동안 땅 속에 있다가 나와서 매미가 되어 가지고 나무에 붙어서 ‘씨룩 매룩 7월 8월’ 하고 우는 것 보면 매미우는 소리가 시원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씨앗은 싹이 나고 싹은 잎으로 변하고, 잎은 꽃으로 변하고, 꽃은 열매로 변하고, 그 열매는 다시 싹으로 변하고, 계속 끝도 한도 없이 변하고 진화(進化)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일로 변하고 내일은 다음날로 변하고 매일매일 변해서 우리의 정신과 신앙은 매일 젊어지는 것으로 변하고, 이제 젊어지는 사람으로 변하고,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으로 변하고, 영생의 세계로 변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결국 육체가 건강하여야 소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바로 이것입니다. 기록된 말씀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잘 보전되어야 합니다. 몸을 함부로 타락시켜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기성신앙은 금식기도로 몸을 타락시키고 쇠약하게 되고 잘못하면 죽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단적인 행위입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영과 혼과 몸이 잘 보전 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굼벵이가 살아 있어야 매미가 될 것이 아닙니까?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말4: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악인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발바닥의 재와 같이 짓밟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보시겠습니다.
말4:4~6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의 심판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떠한 축복이 있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쪽에서는 짓밟아서 심판을 베풀어서 발바닥의 재와 같이 만들고 또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의로운 해가 떠오르고 치료하는 광선을 발해서 그 광선이 쫙 비추면 인간의 몸이 만병통치가 되어버립니다.
과학적으로도 빛으로 치료하는 시대가 온다고 입증되어 있습니다.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면 인간의 몸이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영생의 몸으로 확 바뀌는데 이러한 일은 성경에 예언된 큰 축복의 말씀입니다.
치료하는 광선의 빛, 생명의 빛(요1:4)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깨끗함을 입고 건강함을 찾게 될 때에 치료하는 광선의 빛이 실상의 태양의 일곱 배 빛으로 비춰서 사만 이천 도의 빛이 비추이면 사만 이천 도의 빛이 도착하기 전에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료하는 빛은 태양빛이 아니요,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이므로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치료되는 구원의 빛입니다.
사30:25~26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치료하는 광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치료해 주는 놀라운 변화의 세계가 있을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 빛을 비추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정한 때에 일곱째 나팔을 불 때에 홀연변화의 역사를 이루시고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성취케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사람을 보낼 것이니 그 사람이 너희에게 알려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그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치료하는 광선의 빛을 통하여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고전15:53) 홀연변화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욥33: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홀연변화를 받아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이루어질 때는 살이 어린아이 살보다 연하여져서 젊은 청소년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욥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홀연변화를 받은 인간의 몸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 자기가 거울만 봐도 자기 얼굴이 너무나 잘 생겨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본다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내 얼굴과 용모가 그렇게 잘 생겼는지 요리 봐도 잘 생겼고, 저리 봐도 잘 생긴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하게 될 세계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기록된 성경을 믿을 때에 신앙으로만이 깨닫게 되고 신앙으로만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을 시키느니라” 사람에게 가장 큰 의가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 최고의 의입니다. 만약에 나이가 백세가 되었는데 청소년 이십 대 같이 젊고 건강하다면 그 사람의 의가 천하를 덮을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때까지 이천년 동안 평균수명이 912.2세였습니다(창5:25~27). 당시 백세가 오늘날 이십 세 보다 더 젊고 아름답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이 땅위에 낙원의 세계를 이루어주실 때 그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사도바울이 본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 낙원에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같이 성경에 기록된 지상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요15: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기는 자들로서(계2:7) 과실을 많이 맺은 자들이요, 예수의 제자가 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서 셋째 하늘 지상낙원의 세계를 유업으로(갈4:7) 이어 받을 수 있는 축복받는 귀한 자들로 약속받은 자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