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13. 전의 산

본문말씀 : 이사야 2장 1~4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말일에 되어질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아서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참으로 눈에 섬광이 번뜩 빛나는 보석과 같이 찬란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눅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말일에 되어질 하나님의 작정과 모략이 숨겨져 있으나 밝게 드러나서 여러분들에게 큰 빛으로 즉 광명으로 또한 깨달음으로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눅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 문을 여는 자만이 오늘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이 한 말씀을 통해서 일평생의 신앙의 기호로 삼을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올림픽에서도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면류관을 얻을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후에라도 부정을 알게 되면 그 면류관은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법대로 경기한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법의 말씀을 따라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받는 축복이 있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성경의 약속대로 생활하지 아니하면 결단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천하에 모든 것이 때가 있음과 같이(전 3:1)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말일이 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단 12:4, 렘 23:20). 모든 과일 나무도 추수할 때가 되면 색깔이 다릅니다. 감은 녹색으로 있던 것이 빨간색으로 드러나고, 벼는 노란색으로 드러나며 모과도 노란색으로 드러납니다.

렘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그러므로 말일이 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도록 숨겨 놓았기 때문에 그 전에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헛일입니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지 온전히 안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씀 속에 있는 온전한 말씀이 여러분의 귓전에 큰 뇌성 소리로 또 아름다운 음악소리로(계14:2, 겔 43:2) 천사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으로(사19:1) 깨닫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유다 백성이라고(사5:7, 슥12:7) 결정을 해 놓았습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니 제가 며칠 전에 방송을 듣다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복이라는 것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온다는 뜻인데 지금 현재 있는 예루살렘에는 그 중심에 회교사원(回敎寺院)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성전이 아니고 마호메트교를 믿는 자들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가 예수로 오신 것이 확실한데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마호메트’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유대교의 예루살렘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다시 회복이 된다면 마호메트의 종교가 유대교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회복 된다는 것은 유대교의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로써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말의 설교를 한 것입니다. 상당히 어리석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받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전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이상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환상으로 보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이루어질 환상의 내용을 실상으로 있는 것 같이 기록 해 놓았기 때문에 환상의 내용이 기록된 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노(怒)는 말일에 가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였고(렘 23:20)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 2:5).

사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말일이라는 것은 이 세상 끝날을 말합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산으로 모여든다고 하니까 전부 산에 기도원을 세워 놓고 야단법석인데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무엇인가 보시겠습니다.

겔6: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만약에 산을 향해서 “관악산아, 도봉산아, 삼각산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이렇게 하면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짐승도 아니요 풀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고 그것은 곧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산이라는 것은 실상의 산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조직되어 있는 거룩한 모임들과 단체들을 산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 14절에 보시면 사람들을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조직체를 산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 속한 산이 있고 사단에게 속한 산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산을 거룩한 산이라 했고 사단에게 속한 산은 멸망의 산이라고 합니다.

렘51: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산이 어떻게 온 세계를 멸망시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으로 인해서 핵폭탄이나 전자폭탄 등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는 있겠지만 산이 어떻게 사람 곧 인류와 온 세상을 멸망시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인산인해라고 합니다. 따라서 멸망의 조직체 혹은 사단의 조직체를 멸망의 산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하나님 성전의 산을 높은 산이라고 했습니다. 이 높은 산에 온 세계만방이 다 모여들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 말씀과 똑같은 예언이 미가서에도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미4: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이사야서에는 만방이 모여들 것이라 했고, 미가서에는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가 주전 약 육백팔십년이고 미가서는 주전 칠백십칠년쯤 되니까 미가서는 이사야 이후 약 사십 년 이후에 예언이 된 것입니다. 이같이 이사야와 미가서는 비슷한 시대에 예언이 된 것으로서 같은 말씀으로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성전의 산은 바로 거룩한 산입니다. 거룩한 산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산이 제일 높은 산이지만 실상의 산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마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이 올라가신 산은 감람산입니다. 감람산은 높이가 해발 818m로서 우리 교회 뒷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높은 산이 아닌데 무슨 만방이 모여드는 산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가신 감람산을 가리켜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변형되었다고 했는데 높은 산이라는 것은 실상의 높은 산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 가면 태산(타이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 라는 말이 있어서 실제로 얼마나 높나 하고 버스 타고 태산 중턱에 올라와서 걸어가니까 10분 정도 걸어가면 꼭대기에 다 올라갑니다.

태산에 올라 가보니 산 높이가 중국 산둥성에 있는 1,532m의 산으로서 백두산의 높이인 2,750m보다 높지도 않은데 왜 높은 산이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태산에서 중국에 유명한 공자님이나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왔다고 해서 높은 산이라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계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크고 높은 산은 실상으로 산이 높아서 크고 높은 산이 아니라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큰 비밀이 숨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런 장소의 산을 높은 산이라고 한 줄 믿습니다. 그래서 행운동에 서 있는 우리 교회가 지대 상으로 보아서는 높은 곳에 있지만 지대가 높다고 높은 산이 아니라 여기에서 아주 높은 말씀이 나와야 높은 산이 되는 줄 믿습니다.

높은 산에서 높은 말씀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사 2:2~3). 성경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큰 말씀이 나오는 이 장소가 높은 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미 4:2). 변화산, 높은 산에서(마 17:1~2) 예수님의 얼굴이 변해 해와 같이 되고 옷은 빛과 같이 빛나고 그 곳에서 예수님이 신령한 몸이 되시고 나니, 천오백년 전에 죽었던 모세를 만나고 천 년 전에 죽은 엘리야를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죽은 영인(靈人)들과 대화를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인들(모세와 엘리야)과 대화하기 위하여 얼굴이 해 같고 옷이 빛과 같이 희게 된 것입니다. 이곳을 높은 산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높은 데서 왔다고 합니다. 높은 데서 왔다는 것은 청와대나 지위가 높은 데서 왔다는 것입니다.

서울 대학교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들어가기만 해도 대단한 영광이며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합니다. 그래서 신림동 서울대학교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가봤더니 그냥 평지하고 똑같았습니다. 이는 실상의 대학교 문턱을 말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성경의 높은 산도 실상의 산이 아니요 영봉(靈峰)의 높은 산입니다.

실상으로 여러분이 상상을 초월하는, 어디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높은 말씀을 듣게 될 때에 이 장소가 높은 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말일에 나타나는 하나님 전의 산은 성경에서 최고 경지의 말씀이 나올 때에 높은 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산입니다(계21:22). 하나님이 제일 높은 성전에 계시니 높은 산 즉 영적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시27:1~4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전쟁이 두렵지 않고 환난도 두렵지 않고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하나님께 바라던 한 가지 사실을 구하리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집을 만나서 그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바라보고 사모하며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곳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의 산입니다.

사66: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훤화라는 것은 시끄러울 훤(喧), 떠들어댈 화(譁), 시끄럽게 막 떠드는 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 소리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는 목소리인데 참 하나님의 성전에서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역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계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인 줄 믿습니다. 이 성전에서 심판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 말일에 하나님의 성전이 서게 될 줄 믿습니다.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그 성전이 서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중에서 제일 마지막 심판이 첫째 인, 둘째 인, 셋째 인, 넷째 인, 다섯째 인, 여섯째 인, 일곱째 인 심판이고, 그 다음에 첫째 나팔,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의 심판 그 안에 첫째 대접,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대접, 마지막으로 일곱째 대접으로 심판이 끝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일곱째 대접의 심판이 끝이 나는 순간 성전에서 들리는 세 마디의 소리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되었다” 입니다. 그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계16:17~18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그래서 악한 자를 다 진멸하고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되었다’ 하니 바벨론 성이 무너지는데 만국의 성이 다 무너진다고 하였습니다.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되었다’ 하는 날은 끝나는 날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이 되었다 하는 소리가 났을 때에는 이 세상 심판이 끝이 나고 이 지구상에 평화의 나라, 지상 낙원이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전이 높은 산꼭대기에 말일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전이 얼마나 존귀한 성전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말일에 하나님 전의 산이 높은 산꼭대기에 선다는 비밀을 아는 자들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만방이 하나님의 성전에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슥8:20~23). 몰려오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그들의 인도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전에 이르자고 하던지 이삭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하던지 하지 왜 ‘야곱의 하나님 전에 이르자’ 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전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고 이삭의 하나님 전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야곱의 하나님 전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야곱의 하나님 전에서‘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죽은 자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고 구약시대에는 조상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조상의 하나님입니다. 조상이란 죽은 자의 족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조상은 죽은 자를 말합니다. 조상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의 역사는 산 자의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산 자의 하나님의 역사는 살아 있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산 자는 일단 육체가 살아 있어야 되고 육체가 살아 있는 자 중에서 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따라서 또 산 자가 있고 죽은 자가 있습니다.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인 상태가 어떤 사람의 상태인가 하면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코에 숨 쉬는 호스를 끼고 혈관 주사를 놓고 입은 막아 놓아서 말도 못하고 눈만 깜빡하며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산 사람인데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와 같은 자입니다.

이와 같이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정신의 혼과 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있지 못하고 죽은 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입니다.

눅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죽은 자가 어떻게 죽은 자를 장사(葬事)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장사할 수 있는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그 영혼이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를 말합니다.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는 것은 신앙이 죽은 자가 있고 신앙이 산 자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기쁨이 차고 넘치는 산 자가 있고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은 여러분들은 살아 있는 자이고 같은 장소에서 다 같이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을 화합하지 못하고 이 비밀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상징한 자입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상징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예수님을 상징한 인물입니다. 야곱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며 이 축복을 입은 야곱은 택함을 입은 자요, 축복을 받기 위해서 거짓말하기도 하고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기도 하고 이런 못된 짓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은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롬 9:12).

얍복강을 건널 때에 형을 두려워하여 많은 선물을 보내고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야곱을 이기게 하심으로 형 에서로부터의 보호를 받고 환난을 당하지 아니한 것은 야곱을 승리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의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한 것입니다.

사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에 대한 주해란에 보시면 교훈이라고 적어놨습니다. 여기 나오는 율법은 십계명의 율법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율법이 교훈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를 말합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해야 될 예의가 있고 부모가 자식한테 행하여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성실하게 키워야 할 책임이 있고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효도해야 될 은혜의 책임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또한 스승에게 항상 고개를 숙이는 그런 예의가 필요한 것과 같이 시온에서부터 율법 곧 기본적인 예의가 나올 것입니다. 이 예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예의가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러니 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이슬람” 교도들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에 마호메트를 모시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묻지마 살인을 하는 자들에게 무슨 말씀이 나올 것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는 것입니다.

사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하나님이 다시 택하는 이스라엘은 저 중동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 이 이스라엘 즉 여호와 전의 산은 따로 있습니다.

호세아 10장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는 요한복음 15장 1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포도나무이십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는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열매가 참 이스라엘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인줄 믿습니다.

또한 스가랴 1장 16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택한다고 했습니다.

슥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집이 건축 될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이 건축될 줄 믿습니다.

슥2:12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다시 택한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이 오실 것입니다.

슥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진리는 요한복음 17장 17절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하였으므로 진리의 성읍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읍이 된 곳이 바로 영적인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진리가 있는 곳이고 진리는 말씀이니까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오는 곳이 영적인 예루살렘인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만방이 모여들고 하나님이 오실 장소인데,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슥 8:3)을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구원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생존한 자는 산 자를 말합니다. 영육 간에 살아있는 신앙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예루살렘이라도 죽은 자가 있고 산 자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살아 있는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을 것이라고 한 줄 믿습니다.

이런 영적인 예루살렘 성전에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고 그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 안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다고 약속했습니다(계 21:22). 만방이 앞으로 몰려 올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 줄 믿습니다.

이런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이 지구상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보시겠습니다.

사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사4:3~4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더러움을 씻어 주시기 때문에 전체가 다 깨끗한 자들로서 죄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슥 8:3) 즉 하나님이 계신 곳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4:5~6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종말에 하나님께서 시온에 오셔서 진리의 말씀이 있는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에(슥 8:3)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예수님이 계신 성전이 바로 피난처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지구상에 평화의 시대가 올 수 있도록 하는 것, 칼은 전쟁의 무기이며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보습은 농기구로서 쟁기를 말합니다. 전쟁의 큰 무기 탱크를 부셔서 농기구로 만들고 사람을 죽이는 창을 쳐서 낫을 만드니까 전쟁의 무기가 평화의 농기구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 저 북한에서 무기를 준비하는 재정만 줄여도 북한 주민이 먹고 살고도 남습니다. 이렇게 서로 전쟁 준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남북이 전쟁준비를 하지 않고 전쟁의 군수물자와 병력 양성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이 평화를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군대 생활하는 시간 동안에 기계를 연구하고 과학을 연구하고 나라가 잘 사는 길을 연구하고 갈고 닦아야 됩니다. 그리고 군대에 간 젊은이들을 나라의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청춘을 바치게 하여야 하는데 사람 죽이는 훈련만 하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방지하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성읍 예루살렘이 구원의 처소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사 2:4).

“천안함”사건을 보면, 남쪽에서 미국하고 해양훈련을 하는데 북한에서 화가 나 여러 가지 사건이 터져 가만히 있는 “천안함” 을 폭파 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론적으로 북한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우리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예루살렘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주님을 모신 성전을 건축하여(계 21:22)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기로 한다면, 전쟁 상태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전쟁의 무기를 부숴버리고 평화의 농기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남북이 이와 같이 군비 축소를 하는 그날이 오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워(단 2:44) 주실 줄 믿습니다.

호2:18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하나님이 곤충과 새와 들짐승과 언약을 세워서 이 땅 위에 전쟁을 없이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종말의 구원의 역사인 평화의 나라가 올 때에는 사자나 짐승이나 곤충이나 사람이 서로 잡아먹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 말씀은 전부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 언약을 세울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장가든다고 했습니다(호 2:19).

호2:18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때 모든 짐승들의 독이 다 없게 하시고 육식동물이 다 채식 동물로 바뀌게 되니까(사 65:25) 어린 아이들이 호랑이를 타고 놀고 사자를 타고 놀며 독사와 함께 장난할 것입니다(사 11:7~8).

호2: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가오시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인간 세상에 강림하셔서(계 21:3) 신천신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계 21:3~4).

호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장가오시는 그날 전 세계에 전쟁이 없는 평화가 선포되며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계11:15)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때에 신천신지 새 세상으로 새롭게 되는 그날(마19:28)에 여호와 전의 산 곧 거룩한 성전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아내로서(고후11:2) 신부가 되시기를(사 54:5)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