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야곱의 예언과 예수의 탄생
본문말씀 : 창세기 49장 22~24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X-mas가 다가온다는 것은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세월이 너무나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시간은 금이라고 말하는데 시간은 생명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이 팔십 세를 살던 백세를 살던 하루 또 하루 살아가는 것이 내 생애의 생명을 잘라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참 소중하게 보내야 합니다. 성공하지 못한 분들을 보게 되면 헛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값진 시간, 인생의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명의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성탄을 증거한다는 것은 어떻게 잘못 생각하면 억지라고 볼 수도 있고 어렵다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증거할 말씀은 예수님 탄생 이전 약 천오백 년 전에 모세 선지자가 기록한 예언인 것입니다. 오늘날로 따진다면 약 삼천오백 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예수님이 성탄하기 이전에 있었던 그런 시절의 예언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성경에는 12월 25일이 성탄일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성경 상으로 볼 때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고 했는데, 이스라엘 풍습으로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리에서 양을 치고 4월부터 10월까지는 들에서 양을 친다고 합니다. 들에서 양치는 목자가 예수님께 와서 경배하자면 계절적으로 볼 때에 4월부터 10월 안에 성탄절이 있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에 보면「그 어리신 예수 꼴 위에 자네」이런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도 12월 25일 하고는 맞지가 않습니다. 지금 성탄 날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성탄이 야곱의 시대에 예언되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창 49:22~24) 백 번, 천 번을 읽어도 이것이 예수님의 성탄을 예언한 말씀인 것조차도 모르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의 성탄의 예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첩경의 축복인 것입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사람이 사람을 잘 아는 것도 친해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우리가 종이 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친구가 될 때에 친구는 친구의 사정을 다 아는 줄로 믿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는「나의 좋은 친구와 모든 것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이렇게 찬송을 부르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좋은 친구라면,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였다고 했으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잘 알아야 친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친구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자가(마 22:29) 친구라고 하면 그 친구가 뭐라고 그러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야, 아무개가 네 친구라면서?”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그런 친구 없어!” 이처럼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자기의 친구라고「나의 좋은 친구와 모든 것 되시는」찬송을 부르지만 예수님은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탄생에 관한 숨겨진 비밀을 깨닫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친구라도 서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지만 속으로는 먼 사람이 있습니다. 말에 신의가 없어서 가까이 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막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 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외식(外飾)하여 껍데기 신앙을 가진 자로서 예수님에게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을 만나러 온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신(神)과 교재를 하기 위하여 온 자들입니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가짜 성령 말고, 진짜 성령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여야 하는데 부흥집회 때 보면「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하며, 열나고 땀이 나도록 성령이 오셨다고 찬송을 실컷 불러 놓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물으면「난 알 수 없도다, 오늘 믿고 또 의지하며」이렇게 찬송을 부르면 되겠습니까? 성령은 그런 성령이 아닙니다.
참 성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神)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神)이 내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神) 곧 주의 성령이 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신이 내게 오셨다.” 대통령이 자기 집에 오지도 않았는데 “어제 대통령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이러한 말을 한다면 사기꾼들 얘기입니다. 참 성령이 왔다면 하나님의 신이 어떤 신인가 보시겠습니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기록된 말씀과 같이 여섯 가지 참 하나님의 신이 자기 자신에게 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받드는 일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만나고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요 4:24)을 만나려고 하는 자들은 마치 자기 집안에 가장 높은 어른을 받들듯이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와야 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받들며 오는 사람의 마음은 자기의 옷차림이라든지 모든 준비로 기본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 전에 당연히 먼저 와서 앉아있어야 되는데 선생님보다 학생이 나중에 들어오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헌금 예물도 깨끗이 준비해서 성경 속에 넣어있어야 되고 마음도 정돈해서 오늘 아침 하나님 만나 뵈러가는데 세수도 하고 얼굴도 예쁘게 다듬어서 정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런 기본적인 예의는 있어야 예배를 드리려고 오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지 보시겠습니다.
고전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사람의 사정을 서로 아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영이 가는 것입니다. 내가 말할 때 내 영이 상대방에게 가고 상대방의 영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한참 말하다보면 말과 말을 할 때에 영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잘 통하게 되면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게 되고, 그것을 또 잘 이해하게 되면 몸짓만 봐도 알게 되고, 손가락 끝만 봐도 알게 되고, 눈썹만 봐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게 알아야 되겠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말씀의 영을(요 6:63)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인격의 신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른 즉 알려준 이 성경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알 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귀한 자들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슬기롭다 해도 사람의 말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것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귀한 자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동생 요셉이 먹을 것을 가지고 형들을 찾아왔는데 보자마자 “이놈아, 너는 형님의 보릿단이 네 보릿단을 보고 절한다고 했는데 아주 버릇이 없는 놈이다. 너는 해와 달과 열 한개 별이 너에게 절한다고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이 너를 보고 절하라는 말이냐. 그 예언이 어떻게 되는가 한번 두고 보자.” 하고서 잡아 꽁꽁 묶어가지고 구덩이에 쳐 넣어 버렸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애굽의 상인이 있어서 “그래도 형제를 저렇게 죽게 하는 것보다도 팔아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종으로 팔아버리자” 이렇게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 있을 때에 꿈 해몽을 잘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서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하여 7년 풍년이 들고, 그 뒤에 7년 흉년이 질 것을 꿈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내용인즉 살찐 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더니 조금 있다 보니까 비쩍 마른 일곱 마리 소가 오더니 살찐 소 일곱 마리를 다 잡아 먹고도 배가 고파 비틀거립니다.
잘 익은 곡식 일곱 이삭이 나와 토실토실한 그 일곱 개의 이삭이 바람에 흔들거리더니 조금 있다 보니까 비쩍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 토실토실한 이삭들을 다 삼켜버리고 여전히 또 빈곤해서 흔들거렸다는 비밀을 깨닫고 칠년 풍년 후에 칠년 흉년이 질 것을 알아서 그 비밀을 알게 된 바로왕이 요셉을 총리로 기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칠년 풍년이 들었을 때 많은 양식을 곡간에 쌓아두고 전 세계에 기근이 들었을 때에 요셉의 형들도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찾아왔습니다. 감히 총리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요셉은 자기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러 온 줄 알고서 자기를 팔아먹은 것은 생각지 않고, 우선 반갑기도 하고 아버지 소식도 알고 싶었지만 간첩으로 몰아서 감옥에 가둬놓고 말을 했습니다.
요셉이 말하기를 “사실대로 말해라. 너희 형제가 몇이냐?” 하니까 “열두 형제입니다.” “지금은 몇이냐?” “동생은 집에 있고 열 형제입니다.” “그럼 하나는 어디 갔느냐?” “짐승에게 물리어 갔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계시냐?” “아버지는 잘 계십니다.” 하여 요셉은 가족의 소식을 다 알게 되었고, 형들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야곱의 가족 칠십 명이 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요셉이 가족을 기근에서 구하고 칠십 명의 가족이 애굽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왔을 때에 요셉은 이미 장가를 들어서 아들을 둘 낳았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는데 아버지가 보시더니 “네가 말도 없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느냐?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는데 너는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런데 네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아들로 하자.” “제 아들은 둘 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이에 야곱은 아들의 아들인 손자를 친 아들 반열로 입적시켰습니다. 이로써 요셉은 아들이 없는 무자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48:5~6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이후에 아들을 낳으면 그때 네 것으로 하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 후로 영영히 아들을 낳지 못해 무자한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곱이 나이가 많아서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축복을 주고 장래에 되어질 일에 대하여 예언을 합니다(창 49:1).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을 때 “네가 눈으로 둘러봐라. 네가 눈으로 보는 저 땅을 네게 주리라, 아브라함아,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보이느냐. 네 자손의 수가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창 26:4). 모래사장의 모래가 보이느냐? 네 자녀의 수가 저 바다 모래같이 많으리라.”
그런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는데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하나만 낳았습니다. 이후에 이삭의 시대에도 이러한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 이삭에게 다 넘어 갔는데 이삭에게도 이뤄지지 않고 이삭이 또 야곱에게 그 축복을 다 넘겼습니다.
야곱시대에 가서 열두 아들을 낳게 되고 열두 아들의 장래에 관해서 예언을 하게 되는데 그 예언 중에서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 관한 장래의 예언을 보겠습니다.
창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샘 곁에 있는 무성한 가지니까 가뭄이 들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성한지 울타리를 넘어갔습니다. 사실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 학교의 울타리를 넘는 것은 불량한 학생이 되고 군인이 군인의 울타리를 넘는 것은 군법에 회부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부부지간에도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되고 부자지간에도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되는데 요셉의 가지가 너무 번창해 담을 넘었습니다.
창49: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담을 넘어서 가지가 무성하니까 활 쏘는 자가 활을 쏘고 군박(핍박)했으나,
창49: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요셉과 함께한 무리들의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대단한 권세를 가졌습니다. 애굽의 세계적인 바로왕의 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견강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셉으로부터 이스라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예언했습니다. 대단한 예언입니다. 이런 예언을 했는데 요셉은 아무 자식도 낳지 못하고, 이 엄청난 축복의 예언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성경은 어떻게 예언하고 있으며 이 예언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보시겠습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대상5: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야곱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해서 이겼다고 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칭호를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은 다시 말해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옆에 보면 한 줄이 쳐 있습니다. 한 줄이 쳐진 것은 사람 이름이고 두 줄 쳐진 것은 지명을 말합니다. 민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48:12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이스라엘 민족아 내 말을 들으라” 이런 뜻이고 역대상 5장 1절에 있는 이스라엘은 야곱이란 사람의 이름입니다. 참고로 꼬불꼬불 줄을 쳐놓은 것은 영명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비밀이 숨어있는데 참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싶어서 꼬불꼬불하게 줄을 쳐놓은 것입니다.
창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가 오신다는 실로의 글자 옆에 꼬불꼬불하게 줄이 쳐 있습니다. 실로도 두 줄 쳐진 것이 있는데 두 줄 쳐진 것은 지명입니다. 한 줄 쳐진 것은 이름이고 꼬불꼬불 쳐진 것은 “난 알 수 없도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원래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 수 없으면 하나님이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알아서 지킴으로 복 받도록 기록된 말씀입니다.
대상5: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는 장자인데,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혀서 그 죄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창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기록된 말씀은 예언적인 말씀으로 장래에 되어질 미래적인 일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창49:2~3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찌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위광이라는 것은 르우벤의 얼굴에 나타난 위엄의 광채가 아주 월등해서 얼굴만 봐도 무슨 장군 같고 위대한 사람 같고 임금 같은 것입니다.
창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물의 끓음이라는 것은 성경에 감춰놓은 것입니다. 정욕이 물의 끓음 같아서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를 너무 좋아하면 지혜롭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다는 것은 장자가 아버지의 서모, 그러니까 르우벤의 계모를 덮쳤다는 것입니다.
창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서모 빌하와 큰 아들 르우벤이 관계한다는 소리를 아버지가 듣고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알아야 예수 성탄의 비밀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상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찌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이와 같이 장자 르우벤의 범죄로 말미암아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고 장자의 주권은 유다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평생에 노력한 피와 땀으로 기업체를 하나 만들었는데 온 세계를 지배하는 큰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아버지는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앉고 회사는 아들보고 하라고 했습니다. 명목상은 회장이 높지만 실제 권한은 사장인 아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명분상으로는 장자 권한이 요셉에게 돌아갔는데 주권은 유다에게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희한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르우벤이 범죄 함으로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돌아가고 주권은 유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넷째 유다 앞에는 아들 셋이 있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보겠습니다.
창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성경은 우회적으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지혜롭게 기록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8절을 보겠습니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요 아비의 아들들이 유다에게 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비의 아들들은 자기 형제인데, 형제들이 너에게 절할 것이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는데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게 절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도록 우회적으로 해석되어 기록 되었습니다.
창49:5~6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시므온과 레위가 왜 잔해하는 기계라고 했는가 하면 야곱의 아내가 둘이 있었습니다. 자기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7년 동안 봉사하여 예쁘고 잘 생긴 라헬과 혼인하겠다고 했습니다. 봉사를 마친 그날 저녁 밤에 아가씨가 들어와서 잠을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라헬이 아니고 언니 레아였습니다. 얼마나 기절초풍할 노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삼촌 보고 왜 칠년이나 무상 봉사한 나를 속였냐고 하니까 원래 풍습이 언니를 먼저 시집보내고 그 다음 동생을 보내는 것이라며 라헬을 가지려면 칠년을 더 봉사하라고 해서 다시 외삼촌 라반에게 칠년 동안 종노릇했는데 성경의 기록을 보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칠년이 하루같이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세월이 빨리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다 라헬의 언니 레아에게서 나왔습니다.
창34:1~2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히위 족속의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이 시므온과 레위의 동생 디나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강간을 하였습니다.
이에 시므온이 군대를 동원하여 히위 족속 하몰의 가족을 처벌하려고 하니까 하몰이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였고, 이왕 젊은 애들이 서로 좋다가 저리 됐으니까 혼인을 시키면 우리 넓은 땅을 당신들에게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또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예물을 보내겠다고 하니까 시므온과 레위가 계략을 꾸몄습니다. 우리와 혼인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할례 받을 때 돌칼로 살을 베는데 3일째가 되는 날이 제일 고생이 되고 아픈 날입니다. 3일째가 되는 날 못된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빙자하여 하몰 족속들을 다 죽이고 세겜도 죽이면서 여자들을 잡아가고 온갖 못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것을 다 빼놓고 뭐라고 말했는지 보시겠습니다.
창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성례였는데 그 거룩한 할례를 빙자해서 살인을 하여 하나님께서 대노한 것입니다.
창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소는 일꾼을 말합니다. 발목의 힘줄을 잘라버리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창49: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여기서 하나 알아야 될 것은 레위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이전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아론이 레위의 자손이었습니다. 레위의 자손은 세 부류로 구분이 됩니다.
아론과 함께한 아론의 가족이나 친척이 된 자손은 전부 제사장이 되고, 그 다음 아론의 제사장이 되지 못한 자들은 레위 자손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여 십일조를 받아먹도록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세 번째 등급에 해당되는 레위의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자손과 그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등록이 됐는데 이 사람들은 사실상은 레위의 심부름이나 하고 이름만 레위일 뿐이지 실상은 레위의 족속도 아닙니다.
그래서 원 레위 족속은 아론과 함께한 자들만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지배자의 대표가 된 것이 바로 레위 자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레위 자손은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십일조를 받아먹었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낸다고 하지만 실상은 레위 자손이 다 받아먹었습니다. 성읍 조그만 것 몇 개 받고 다른 유산은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일 권세 가진 자가 바로 레위 자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누구인가 하면 제사장된 레위 자손들입니다. 레위 자손은 이미 창세때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시므온과 레위가 있는 그곳에는 하나님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집회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참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백정은 과거에 시험도 치지 못하고 백정하고는 혼인도 되지 않고 나이가 많아도 젊은 애들에게 하대를 받습니다.
창49: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저주 받은 레위입니다. 오늘날 목사 가운이 저주받은 레위 족속이 입었던 가운입니다. 그래서 지금 성지 순례를 가보면 레위 족속이 입고 있었던 가운하고 똑같은 가운들입니다. 레위 족속의 법이 십계명의 법이었습니다. 이 레위는 저주받은 족속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첫째 르우벤은 위엄과 탁월한 지혜가 있지만 아비의 침상에서 서모 빌하를 범하여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할례를 빙자해서 히위 족속들을 살인했으므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제 넷째를 한번 보겠습니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가 형제들의 찬송이 된다는 것은 많은 형제들이 유다를 우러러보며 존경한다는 것입니다.“우리 넷째 형님은 무슨 장관이고 머리도 좋고…”형제들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가 된 사단 마귀의 목을 잡고 형제들의 절을 받는 엄청난 권세를 받은 자가 바로 유다입니다.
창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짐승 중의 왕입니다. 사자가 움킨 것을 누가 감히 뺏을 자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유다 지파에서 사자 같이 강하신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계 5:5). 예수님이 유다에서 나왔다는 것을 한번 보겠습니다.
히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이 유다 족속에게서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이 당시에 제사장은 레위 족속입니다. 이 유다지파에는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유다지파의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있다면 유다도 저주받을 족속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도 저주의 족속에서 나온 것이 되는데 유다지파에는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히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예수님은 레위에서 나온 제사장이 아니고 멜기세덱처럼 별다른 제사장으로 나온 것을 보니까 예수님은 유다에서 나온 것이 더욱 확실한 줄로 믿습니다.
계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다윗의 뿌리가 바로 유대지파의 뿌리입니다. 예수님이 사자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니 사자새끼는 예수님새끼이고 예수님새끼가 사자새끼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새끼는 레위에 속한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런 역사가 이루어졌는데 이제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면 형들이 애굽에서 총리로 있는 요셉에게 곡식을 사러가서 붙들렸습니다. 붙들렸지만 나중에는 여러 가지 해결이 다 되어서 야곱의 칠십 인의 가족을 애굽에 데리고 와서 그 후손들이 사백 년 동안 살았습니다. 사백 년 동안에 이십 세 이상 장정만 육십만 명이 되어서 모세에 의하여 바로왕에게 항복을 받고 나온 것이 출애굽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데리고 갈 때에 손자를 아들 반열로 올려놓은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을 했습니다.
계7:4~8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인침 받는 열두 지파에서 유다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이 장자의 권한을 유다에게 준 줄로 믿습니다(대상 5:1~2). 므낫세가 요셉의 아들인데 야곱의 아들하고 대등한 반열에 들어가서 열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손자가 아들 지파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에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요셉의 아들을 빼앗아 아버지 야곱의 아들이 되게 해서 요셉에게는 이후에 낳은 아들은 네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이라고 했습니다.
창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모이라하고 나서 요셉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본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창49:22~24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요셉에게서 나온 아들이 목자는커녕 자식 하나 낳지 않았는데 이 예언이 어떻게 됐는가 하면 신약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에서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 이스라엘을 위한 목자가 난다고 예언하였으니 이 예언이 신약시대에 와서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을 위한 참 목자 예수님이 탄생한 줄로 믿습니다.
기록된 이 말씀은 보통사건이 아닌 엄청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런 예수 성탄의 비밀을 누가 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 야곱과 요셉은 구약시대의 야곱과 요셉이 아닙니다. 구약의 요셉은 꿈 해석을 잘하여서 감옥에서 나와 총리가 되었습니다만 신약의 요셉도 꿈을 잘 꾸어서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가 낳을 아들은 온 이스라엘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니라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구약의 요셉이나 야곱은 신약의 요셉이고 야곱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님이 성탄하신 줄로 믿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와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됐다면 영적인 유다족속도 성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요셉은 장자의 명분만 가졌고 주권을 가진 자는 유다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지금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육신적인 야곱의 아들인 요셉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가 성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히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그럼 유다로 좇아난 예수님은 누구이고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나온 이스라엘 반석인 목자 되신 예수님은 누구인지 성경 안에서 해석이 됩니다. 육신적으로 하면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이스라엘 반석인 목자가 나오지만 영적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성탄하신 줄로 믿습니다.
마1:1~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 다음에 바로 유다가 나옵니다. 그 앞에 열 한 명의 아들 족보는 다 없어지고 그냥 형제로 들어가버린 것입니다. 요셉은 족보에서 빠졌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성탄 하셨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어마어마하고, 기가 막힌 예언 하나만 더 보시겠습니다.
창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아브라함이 아직 이삭도 낳지 않고 이삭이 야곱도 낳지 않았으며 야곱의 시대에 가서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 땅에 들어가서 사십 년 동안 종살이를 했는데, 이미 아들도 낳지 않고 손자 때에 가서 이루어질 일을 손자도 낳지 않은 때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언했습니다.
창15:14~16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스라엘이 사십 년 종살이를 하고 4대만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삼십 년을 1대라고 합니다. 4대는 백이십 년이고 사백 년이 걸렸는데 이것이 몇 대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백 년의 세월이 걸려서 4대만에 영적인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보면 한 대가 백년이 된 것입니다. 4대가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구원의 역사는 영적인 유다 백성의 구원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슥12: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계시록 7장 5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인침 받은 십사만 사천 가운데 제일 먼저 유다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하면 요셉에게서 나온 이스라엘 반석 되신 목자였지만 영적으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유다로 좇아나신 것이 분명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을 것이 분명한 줄로 믿습니다(히 6:20).
여러분, 구약시대에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을 위한 목자가 나오리라고 예언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신약시대에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목자장 되신 구주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신묘막측한 분으로서 틀림없이 자기의 한 말씀을 반드시 다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영적인 유다 백성들로서 예수님과 같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하나님의 제사장들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