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아 목사 특별기고]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의 정체를 밝힌다②
1. 신천지 교회의 간판
이만희씨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교권을 세운 그 자체가 재앙(災殃 : 온갖 불행)이다.
이는 유재열 씨가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현재 남서울대공원 어린이 놀이터 자리)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회를 세우고 아버지 유인구와 유재열이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한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이만희는 홍종효와 짝하여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하여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권으로 교회를 시작하였다.
이유는 이만희씨는 자신의 저서 계시록의 진상(1985년 12월 12일 초판 발행)181쪽, 계 12:1~2절에 기록된 해를 입은 여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였다. 해를 입은 여자는 유재열 장막성전의 교주를 칭한 것이다.
유재열의 부친인 유인구의 자칭 ‘임마누엘’이름은 하나님께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아들 유재열에게 ‘삼손’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삼손’이라는 뜻은 성서어원사전에 작은 태양이라고 하였으므로 해는 삼손 유재열이요, 해를 입은 여자의 아들은 이만희 자신이라고 자신의 저서 계시록 진상 181쪽에서 주장하였고, 이만희의 최초의 저서 세계 종교 관심사 창세 이후 ‘최대의 희소식’ 30쪽 증거장막성전 출현 제목 아래 14째 줄에서 증거장막성전은 영원한 새언약의 장막이라고 하였다(계15:5).
이와 같은 이유로 이만희는 유재열(삼손)의 아들로서 유재열의 영적 어머니가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나올 때에 ‘증거장막성전’의 간판을 머리에 이고 나온 것 같이, 이만희 또한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간판을 머리에 이고 두 감람나무 두 증인으로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회의 이름으로 홍종효와 함께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한 것이다.
이만희가 계 15:5을 인용하여 장막성전을 쇠하여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새언약의 장막성전이라고 하였으나 성경 어디에도 증거장막성전이 영원한 새언약이라고 기록된 곳이 없다. 계 15:5절에서 8절에 15장의 내용이 끝이 나는데 영원한 새언약이라는 기록이 전무한데, 왜 영원한 새언약이라고 하였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 장막성전의 시작
장막성전의 역사는 1966년 2월 17일, 유인그를 따르는 여덟 사람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성령으로부터 양육을 받았다고 주장하므로서(사 1:1~4)시작되었다.
그 여덟 사람은 1965년 말에 호생기도원의 자칭 재림주 김종규로부터 나온 자들로 당시 과천면 하리 삼거리에 있던 유인구의 집에서 다락방 기도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인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며 일곱 사람과 함께 청계산으로 들어갔다.
그들 중 신종환씨와 신광일씨는 부자 지간이고, 또 유인구씨와 유재열씨도 부자지간이며, 그리고 신종환씨와 유인구는 처남 매부지간이다. 당시 유인구씨는 경기도 과천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신광일은 17세 시골 총각이었으며, 유재열은 성남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어머니를 따라서 방언을 받는 등 신비를 체험하고 신앙에 뛰어든 17세 소년이었다.
3. 유재열 장막성전 일곱 천사의 양육 과정
유인구를 따라서 청계산에 들어간 일곱 사람은 초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영들에게 백 일간을 말씀으로 양육받았다고 주장한다. 유인구는 성령으로부터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아 나머지 일곱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했다. 그는 성경과 성경을 연결하여 말씀을 가르쳤으며, 성경 외에 다른 책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양육자 유인구를 비롯한 여덟 사람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들 중 그나마 신앙을 했다는 자도 호생기도원에 들어가서 방언을 받고 잠시 머문 것이 믿음생활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성경을 가르치기는커녕 배우기도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백지와도 같은 그들을 택하시어 말씀으로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덟 사람은 자신들이 양육을 받는 동안 초막에 가족이라도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모세 장로 신종환의 부인이 음식을 해서 초막에 갔다가 갑자기 입에서 피가 올라와 초막에서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 일 후로는 양육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허락된 자 외에 누구도 100일 기도하는 초막을 접근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백일간의 양육이 끝난 후 여덟 사람은 칼로 동맥을 자르고 오른손 바닥에 십자가를 그어 하나님과 피로 언약하고 그 피를 링거 병 두 개에 담았다. 하늘의 명령에의 따라 유인구와 신종환은 특별히 동맥을 두 번 잘라 피를 받았다(호 6:7, 히 9:18)고 한다.
4. 7천사의 영명
하나님께서는 유인구를 중심으로 여덟 사람과 언약한 후 유인구(임마누엘)로부터 영명(靈名)과 사명을 내렸다. 영명은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유대인의 영을 보고 그 영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기에 모두 유대인의 이름으로 새이름을 받았다.
유인구는 임마누엘 왕, 신종환은 모세라는 이름으로 제사장으로 임명하였고, 김창도는 미가엘, 정창래는 사무엘, 백망봉은 솔로몬, 신광일은 여호수아, 유재열은 삼손, 여자 김영애는 디라라는 영명을 주었다.
5. 언약궤 안에 있는 언약서
언약서는 그들이 영계의 음성을 듣고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일반 선지자의 영이 아니요 여호와의 성신이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곧 법이니라. 나는 임마누엘 왕에게 명하겠으니 임마누엘 왕은 천사들에게 명하고 천사들은 백성에게 명하라. 백성들은 천사들에게 순종하고 천사들은 임마누엘 왕에게 순종하고 임마누엘 왕은 나에게 순종하라. 이 언약과 선지자와 사도들로 전한 약속을 믿고 지키면 삼년 반(1,260일) 안에 약속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줄 것이고 지키지 아니하면 머리 위에 준 것(영)을 거두리라”(계 3:2, 2:5).
6. 장막성전을 세움
하나님과 피로 언약한 여덟 사람은 영명과 사명을 받은 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청계산 기슭 막계2리에 초가삼간을 빌려 하나님의 계시대로 “장막성전”이라는 간판을 달고 매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출 25:8, 계 13:6).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바쳐 성전 곧 성막을 지었다. 성전 공사는 학개서 2장 말씀을 근거로 1966년 6월 1일에 시작하여 1966년 6월 24일에 마쳤다고 주장했다.
◎ 참고
행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으므로 예수의 피 외에 인간의 피는 원죄가 있는 죄인의 피이므로 이들 여덟명의 피는 예수의 보혈을 대적한 악마의 영을 받은 피로서, 하나님과 언약한 피라고 할 수 없다.
출처 : 크리스천월드(http://www.christianworl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