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천의무봉 (天衣無縫)

1. 부활을 변화로 선험(先驗)한 예수

본문말씀 : 누가복음 9장 28~36절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에 있는 같은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마17:1~8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와 같은 내용의 말씀이 마가복음 9장 2절부터 8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해서 마태복음 말씀을 봉독해 드렸습니다. 오늘 제목이 부활을 변화로 선험(先驗)한 예수인데 이는 예수님이 부활(復活)하시기 이전에 먼저 얼굴이 해같이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홀연변화(忽然變化)를 통하여 부활을 먼저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 앞에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도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을 보시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백이든 천이든 일억이 되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리라고 하였으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주님을 많이 외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뜻대로 행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변화산상에 일어난 기적의 말씀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마치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받을 줄 믿습니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란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인데 하늘로 올라간 자들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자들이 많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유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이 하늘로 승천하기 전에 예언하기를 우리 주께서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와서 뭇 사람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도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습니다.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마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예수님이 자주 감람산에 올라가셨는데 사실 감람산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닙니다. 해발 820m 밖에 되지 않는 산입니다. 성지순례 차 감람산에 올라갔는데 마음에 오는 감각은 조그마한 언덕에 불과했습니다. 성경 속에서는 큰 산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낮은 언덕을 왜 높은 산이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태산이라는 큰 산이 있는데 올라가 보니까 태산이 높지 않아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태산을 높은 산이라고 말한 것은 태산(泰山)에서 공자님이나 인격이 높은 훌륭한 인재들 높은 분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태산(泰山)을 높은 산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감람산(해발 820m)이 성경적인 높은 산이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몸이 변화한 산이요(마17:1~8) 예수님이 승천하신 산(행1:9~14)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높은 산인 것입니다.

사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사야의 예언은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굳게 서게 됨으로 모든 산꼭대기에 만방이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그 곳이 바로 높은 산이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은 과연 어떤 산인지 알아보시겠습니다.

계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사도 요한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어린양의 아내 신부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신부 즉 어린양(예수)의 아내를 보여준다고 하고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줬기 때문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어린양 예수의 아내, 신부의 모습을 상징하여 환상과 계시로 보여준 것입니다.

마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얼굴의 형체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했느냐 하면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하시므로 얼굴만 변한 것이 아니라 입은 옷까지도 빛의 옷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이미 영인(靈人)이 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 할 수 있는 신(神)의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산은 크고 높은 산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영인(靈人)이 된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으나 영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이런 것을 왜 보여 주셨을까요?

마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모세는 예수님 이전 천오백년 전의 사람이었고 엘리야는 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천오백 년 전에 죽은 영인과 천 년 전에 죽은 영인이 어떻게 찾아 와서 육체의 사람과 대화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얼굴이 왜 해같이 변화를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죽은 영인들을 만나려면 우리와 같은 이런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미 죽은 영인(靈人)들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지지도 않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죽은 영인이 된 아브라함을 봤다든지 노아를 만났다든지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대화도 할 수가 없는 이유는 죽은 자들은 육체가 없고 영혼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영인들을 만나자면 예수님도 이미 죽은 그들과 함께 영인과 같이 변화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 하나님의 백성들도 주님을 만나거나 선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들도 변화 산에 나타나신 예수님처럼 변화를 받아서 영의 사람이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를 받을 수 있는가에 관해서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구약에 기라성 같이 큰 선지자들이 많이 있는데, 아브라함이라든지 노아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이사야라든지, 예레미야 선지자라든지 이와 같이 대선지자들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무슨 대화를 했는가 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알려고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산상에서 만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어떠한 대화를 하였는가를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 이천년사에 변화 산상의 예수와 모세, 엘리야가 어떠한 대화를 하였는지 감히 논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성경을 통하여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눅9:28~31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

기록된 말씀에서 변화산상에서의 예수와 모세와 엘리야의 삼자 대화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떠나 만백성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운명하실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변화 산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노아 같은 선지자를 만나지 왜 하필이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는 예수의 전생이라고 할 수 있는 모형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기록된 말씀의 예언에서 과연 모세 같은 선지자가 이 땅에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지금 이 시대에 올 것인지 언제 올 것인지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모세 같은 선지자는 이미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행3:20~22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모세 같은 선지자를 보내리라 했고(신18:15, 행3:21) 또 주께서 예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리라 했으므로 모세 같은 선지자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행3:22~24). 모세의 노정과 예수의 노정을 보게 되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생명을 위하여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왕이 산파를 통하여 사내아이를 낳으면 다 죽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출1:16).

그래서 아기 모세를 갈대 배에 띄워 강가에다 버렸는데 마침 바로 궁전에 있던 공주님이 나와서 그 아이가 히브리인의 아기인 것을 알고 마침 아들이 없는 고로 바로의 공주가 아기 모세를 데리고 가서 공주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는 바로 궁전에서 자라게 됩니다(출2:1~9).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모세로서는 완전한 피난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어릴 때 애굽으로 도망가서 피신한 것처럼 모세는 애굽의 바로 궁전으로 가서 성장하여 사십 년이란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행3:23~24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이는 모세가 예언한 것으로써 바로 그리스도가 초림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모세는 예수의 전생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사명자로 이 땅위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 광야에서 장사(葬事) 지낸 모세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모압 광야에서 육십만 명이 보는 가운데 장례를 지냈는데(신 34:5~6) 모세의 시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또한 미가엘 천사장도 죽은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변론하였습니다. 원래 죽은 시체는 마귀의 것인데 왜 모세의 시체를 앞에 놓고 천사와 마귀가 서로 가져가려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시체는 보통 사람의 시체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예수의 전생 그림자로 오셨으므로 그 시체는 사단에게 내어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시체는 사람들이 알 수 없도록 그냥 사라진 것입니다.

이로써 영인이 된 모세는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놓인 예수와 대화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지십시오. 제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때 지금 예수님처럼 제 얼굴 꺼풀이 변하지 않았습니까?(출34:29) 제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가지고 내려올 때 얼굴이 광채가 나고 변한 것 같이(출34:29~30) 지금 주님의 얼굴이 변해서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마17:2).” 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모세의 노정은 예수의 노정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한 노정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노정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예수님께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아브라함이라든지 노아 선지자가 있다 할지라도 모세만이 예수님의 별세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므로 모세는 변화산상에 나타나야 합니다. 모세는 “제 시체가 모압 광야에서 장사되었으나 없어진 것 같이 주님의 시체가 없어집니다(눅24:1~4). 당신의 시체는 부활할 몸이므로 아무도 당신의 시체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는 것을 모세가 예수님에게 알려준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왜 나타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다고 하였지 성경에 에녹이 승천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에녹이 승천하였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약에 승천한 자는 바로 엘리야입니다.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야가 예수님의 별세에 관하여 이런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엘리야가 아닙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가 하늘로 승천한 자입니다. 주님의 시체는 저 모세가 말한 대로 다시 살아서 부활하심으로서 없어질 것이고 주님께서는 나(엘리야)와 같은 모양으로 하늘로 승천할 것입니다”라는 확신과 소망을 예수님에게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에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예수의 별세에 대하여 와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꼭 모세와 엘리야가 올 수밖에 없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온 것입니다.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가 다시 와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또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그런 역사를 엘리야가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오리라 한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말씀을 했는데 그 오리라 한 엘리야는 누구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있는 길에 주의 사자가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마17:10~13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엘리야의 전생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오리라 한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와서 길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이 와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전생에 엘리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예수의 별세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영인(靈人)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말하기를 “우리 주님께서 나와 같이 하늘로 승천하고 난 이후에(왕하2:11) 주님께서는 분명히 재림하는 역사로 다시 옵니다”라고 주의 재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예수 별세에 관한 확실한 길과 소망을 줌으로써 십자가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선지자들의 영인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모세와 엘리야만이 변화 산상에서 예수와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변화 산에서 이제 예수님이 홀연변화하여 신령한 자가 되었으므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예수의 별세(別世)에 대하여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눅9:31). 그 변화된 모습은 바로 예수 부활체의 모습으로, 부활을 변화체로서 선험(先驗)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방문 닫아 놓은 가운데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령체이기 때문에(고전15:44) 방문 닫아 놓은 가운데 무소부재(無所不在=하나님의 적극적 품성의 하나로, 어디든지 있지 않는 데가 없이 아무 데나 다 있음)하신 부활 주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요20:19~20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방문을 닫아 놓은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부활체의 주님은 방문을 닫아 놓은 가운데도 나타날 수 있는 신령체의 부활입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신의 몸으로 심고 신령체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재림 주는 사람의 육체로 오시지 아니하고 신령체의 부활로 오실 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보여준 것이 변화체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왜 예수님의 변화체 모습을 보여줬느냐? 이는 우리 종말의 구원도 예수님 같이 변화체로써 구원 받을 것으로 미리 앞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살아 있는 우리를 변화체와 부활체가 합쳐진 영광스런 예수님의 몸과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보여주신 것이 변화산상에서 일어난 신령한 사건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종말 구원의 역사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실 때에 신령한 몸으로 오실 것이요(빌3:21) 홀연변화 받은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신령한 몸으로 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늘 일을 생각하고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여러분의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나실 때에 우리들도 홀연변화 받은 신령한 자로서 예수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니 너는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말에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의 역사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홀연변화 받은 것처럼 우리도 홀연변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전15:51~5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런 역사가 마지막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고전15:53)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역사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틀림없이 응할 줄 믿습니다(고전15:51~54). 이러한 축복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신령한 축복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자의 상태로 있다가 다시 사셔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인간들은 예수님처럼 홀연변화(忽然變化)와 죽은 영혼들과 예수님처럼 부활을 받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자들처럼 부활과 변화를 동시성으로 이루어 그리스도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빌3:21) 변화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범죄 한 아담의 후손이 노아 때까지 이천년 정도 세월이 흘렀는데 그 때에 평균 수명이 912세였습니다. 노아가 600세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사람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이 장수하는 그런 때가 분명하게 에덴시대처럼 무병장수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사65:22).

예수님이 부활을 변화체로 선험(先驗)하셨고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이미 성경적으로 이루어지고 과학적으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고전15:51~54, 빌3:21)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위의 것(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아랫것(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귀한 자들이 되었을 때에 이러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면, 이 놀라운 축복을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받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로부터 예수님의 별세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성경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눅9:28~36) 이는 기독교 이천년사에 처음으로 발표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수많은 기라성(綺羅星=밤하늘에 반짝이는 많은 별들)같은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예수의 별세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자는 모세와 엘리야뿐이었으니 이는 모세의 선험(先驗)한 탄생과 무덤이 없어진 것은 예수의 탄생과 무덤의 시체가 없어질 것을 알게 하였고 엘리야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선험(先驗)한 것은 엘리야의 승천과 재림이 그리스도 별세 이후 승천과 재림에 대하여 의논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별세(別世)가 인류 구원의 큰 빛이 될 것을 말씀하심으로서 그리스도 되신 예수께서 승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확신(確信)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구원(救援) 또한 영육간에 확신이 넘치는 소망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