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혼합종교WCC

WCC는 사이비 기독교인가? 적그리스도인가?

지난 호에는 라는 글을 올렸다. WCC는 적그리스도임을 증명하려고 그들의 신앙고백이 아닌 “바아르(Baar) 선언문”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라는 두 개의 선언문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기독교는 인격적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의 종교이다. WCC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신앙고백을 배격하고 있다. 선언문의 성격은 기독교 교리에 기초한 고백을 뿌리째 뽑아 내팽개치고 있다. 삼위일체 거절, 예수님의 이성일인격 거절,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영감설 거절, 그리고 구원론에 있어 성령사역의 거절은 과거 교회의 역사선상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신학보다 훨씬 더 멀리 성경과 떨어져 나갔다. 이러한 사상은 20세기에 발흥한 급진주의 신학(Radical Theology)이 WCC 속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왔다는 증거다. WCC 안에 약간의 기독교 이념이라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WCC를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도 묵인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아주 매혹적인 말을 하고 있다. 또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수 없이 직접 들은바 있다. “WCC를 통해 북한과의 교회 교류를 앞당기게 되며 그 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겨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삼을 수 있는데 굳이 WCC를 멀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정말 WCC의 정체를 모르고 일시적인 자기 주관주의에 취해 마구 떠드는 한낱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정말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필자도 이 지면을 통해 WCC 옹호론을 적극 펼칠 것이다. 그러나 WCC가 걸어온 60여년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로 복음 전하는 길을 차단하는데 가장 선구자 역할을 해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교회 이름을 사용하여 교회를 파괴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말이다. 교회 이름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사역을 방해해 왔다는 말이다. 교회 이름을 가지고 역사적 교회의 산물인 신앙고백을 제거하는 일을 해왔다는 말이다. 이제부터 WCC가 역대 총무들을 통해 복음 전하는 길을 막았던 역사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역대 총무들의 신학적 배경

정통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데 있어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회색주의 신학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알미니안
주의(Arminianism), 웨슬리안주의(Wesleyanism), 그리고 발트주의(Barthianism)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상야릇한 말을 첨가하고 있다. 정통신학은 모세,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고백 노선을 따라 어거스틴과 칼빈의 노선을 지키는 것을 강조한다. 신앙고백서로는 사도신조를 통해 형성된 고대신조와 종교개혁신조를 제2의 표준문서로 받아들인다. 이는 객관적이고 공동고백에 기초를 둔 교회사적 고백이다. 그것은 시대적 이슈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신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변화무쌍한 선언문이 아니다. WCC 역대 총무들은 한결같이 시대의 이슈나 상황에 따라 신학을 표출하는 선언문 형식의 주장을 내세웠다. 정통주의 입장에서는 그런 신학은 신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관적 표현에 불과한 내용들이다.

 

① 제1대 총무 : 윌렘 비서트 후프트(Willem A. Visser’t Hooft)

그는 1948년부터 1966년까지 WCC 총무를 담당했다. 그가 1982년 라이든(Leiden)대학교에 제출한 논문을 보면 사회복음주의(missio
dei) 신학에 기초를 둔 “미국에서의 사회 복음의 배경(The Background of the Social Gospel in America)”이었다. 총무가 된 후 그는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1,300개에 달하는 WCC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행동주의적 기독교 사회운동을 주도했다.

 

② 제2대 총무 : 유진 카슨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

블레이크는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총무로 일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1951년 미합중국 장로교단(PCUSA/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서기로 선출되었다. 후에 그는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 교회협의회(NCCC/ Nation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회장이 되었다. 그는 교리를 무시한 수평적 연합을 강조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참여를 위해 1969년 제네바 에큐메니칼 센터에서 바울 6세를 영접하였다.

 

③ 제3대 총무 : 필립 포터(Philip A. Potter)

1972년부터 1984년까지 WCC 총무로 일했다. 그는 1967년 WCC 세계 선교와 전도부(Division of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국장이 된 후 영혼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뒤로 하고 인종차별 반대운동, 인권운동, 공산주의와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깊이 개입하였다. 그가 WCC 3대 총무로 임명될 때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 니코딤(Nikodim)이 이끄는 공산진영 대표들이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였는데, 그 이유가 있다. 1977년 WCC 중앙위원회에서 “공산주의가 베트남에서 승리한 것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해방이며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 위대한 베트남의 승리는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을 고무시키고 있다. 만약 폭력이 정치적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섬뜩한 발언을 토해냈다. 그는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WCC의 강령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주력하였다. 나아가 그는 교회의 종교 혼합주의 예배와 세례 성찬을 타종교와 공동으로 집행하는 일을 도입한 사람이다.

 

④ 제4대 총무 : 에밀리오 카스트로(Emillio Castro)

그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총무직에 재직하였다. 그의 신학운동은 중남미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에큐메니칼 운동과 해방신학을 접속시키는 일에 공헌한 결과 WCC가 해방신학운동에 적극 가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⑤ 제5대 총무 : 콘라드 레이서(Konrad Raiser)

1964년 목사 안수를 받고 1969년 WCC 신앙 직제 위원회에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WCC 총무까지 재직하게 되었다. 그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총무로 재직하였다. 레이서 총무는 1999년 4월 17일부터 20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허위 선전에 넘어간 사건이 있었다. 약 425만 불에 해당하는 식품과 의약품을 전달하고 와서 “북한에는 12,000명의 개신교도와 3,000여 명의 카톨릭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가정교회들이 있다”라고 말함으로 북한에서 하는 허위 선전을 그대로 인용하여 발표하였다.

 

⑥ 제6대 총무 : 사무엘 코비아(Samuel Kobia)

2004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WCC 총무로 재직하였다. 그는 교리가 다른 교회와의 연합운동뿐만 아니라 비기독교 종교들과의 대화를 통한 종교 다원주의 연합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다. 그는 2009년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기독교연맹” 강영섭 위원장과 김영남 의장을 만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WCC 회원 교단들로 하여금 그들의 정부에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할 것을 요청해 왔다. 북한과 미국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 휴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되었다.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교회의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사명하고는 거리가 멀다. 북한의 선전공세에 앞잡이 노릇을 한 일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미군을 몰아내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다. WCC가 북한의 선전술에 넘어가 그들의 사주에 따라 앵무새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⑦ 제7대 총무 : 올라브 트바이트(Olav Fykse Tveit)

그는 종교다원주의를 강하게 주장하여 WCC는 종교 다원주의를 중심으로 국제 에큐메니칼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평양에서 밝혔다. 2011년 5월 22일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WCC는 오랫동안 한국교회와 함께 통일을 위해 노력해 왔다. WCC는 남북한 교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 WCC는 오랫동안 한국교회와 함께 평화, 정의, 그리고 통일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북한의 교회를 방문해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WCC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기를 바란다.

제10회 부산 총회는 향후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총회이다. 한국교회 역시 부산 총회를 통하여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 위의 트바이트의 주장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모두 공상적인 말장난에 불과하다. 2013년 한국 보수주의 교회는 WCC 부산 총회를 적극 반대했다. 한국 교회는 보수주의 교회가 압도적으로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는 한국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앞잡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트바이트는 “남북한 교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허공을 치는 말을 했다. 북한의 교회는 세습정권에 의해 조정되는 어용교회이다. 어떻게 남한의 복음을 추구하는 교회와 만나 무슨 대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의 기독교 연맹과 연대해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말인가?

교회 역사는 말한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순교의 신앙만이 교회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었고 사회와 국가를 위기에서 건지게 되었던 그 역사를 알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간 WCC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한국교회가 부산 총회를 통해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고? 적반하장도 분수를 넘어서고 있다. WCC를 해체하고 한국교회에 와서 순교자들이 남기고 간 우리의 신앙을 좀 배워서 자유주의 교회를 회개시키는 운동을 하기를 학수고대하는 바이다.

이영훈 목사는 트바이트와 흡사한 발언들을 했다. “WCC 2013년 총회를 잘 준비해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 및 세계교회와의 연대 기회로 삼고 남북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교류에 힘써야 한다. 이를 반대한 의견들은 신학적 오해에서 근거하고 있을 뿐이고 WCC 총회가 진보와 보수교회의 축제의 한마당이 되게 하겠다.” 라고 했다. 그의 신학적 배경이 의심스럽다. 이와 같은 발언은 극좌파에서 주장하는 급진주의 신학사상에서 발원된 것들과 내용이 통하고 있다.

WCC 신학은 급진주의(Radicalism)적 종교 다원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앙고백주의에서 볼 때는 그런 사상은 신학이 아니라, 사회주의 투쟁 이념 내지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 개념과 내용이 통하는 것들이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과 교회의 일치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비성경적인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분열시키는 개념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가장 사악한 인간의 본질을 급진주의적 사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성령만이 할 수 있는 사역을 감히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 가능하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역대 7명의 총무들의 주장과 활동을 보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교회와 국가가 움직이고 있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적 투쟁을 통해 교회의 일치와 통일을 할 수 있다는 공상에 사로 잡혀있다.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회해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복음이 전해져 성령이 인간 각자의 영혼을 거듭나게 해야 가능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북한의 위정자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목숨을 걸고 중국을 통해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WCC 같은 적그리스도적인 활동으로 기독교를 못살게 하는 행동이 한국교회에 발을 디딜 수 없도록 해야 한다. WCC 제5차 총회에서 나온 기록을 통해 북한을 찬양한 파격적인 발언의 내용을 보면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1. 북한에서의 기독교 복음화 노력은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2. 북한에는 전통적 교회는 없지만 세속적 종교는 즐기고 있다.
  3. 이 새로운 국가 종교에서 김일성은 예언자적 제사장적 역할을 하고 있다.
  4. 북한의 물질적, 사회적 발전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아시아에서는 그 유례가 없다.

 

 

 

WCC를 발판으로 남북교류가 이루어지고 평화의 무드가 형성되어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위의 글을 읽고 그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경고하고 싶다. WCC가 생각하는 무지를, 북한이 노리고 있는 정치적 꼼수를 알기 바란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로마 정부에 대항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결 같이 순교함으로 로마를 변화시켰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는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북한의 정책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사선을 넘어 남한에 들어와 교회를 부흥시킨 나머지 남한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경제대국이 되었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어떻게 복음을 거역하는 WCC를 통해 교회의 일치와 정치적 통일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성경대로 전하는 복음만이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국가의 통일을 이룰 것이다.

북한이 어떤 정치적 체제를 통해 국민을 압박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WCC를 통해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에 힘써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WCC가 주장하는 방법은 안 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은 사실상 공산주의가 사라진지 오래됐다. 1950년 6.25를 통해 남북한 통일을 꿈꾸던 김일성이 통일의 실패로 1953년 궁지에 몰렸다. 김일성은 당시 연안파와 소련파로 인해 정치적 극한 대립 상태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체사상을 앞세워 숙청작업을 통해 혼란을 일괄 타개한 것이다. 그 후로 김일성이 주체사상의 대부로 등장하여 우상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공산주의는 세습제도가 없다. 주체사상의 대부를 우상화 작업에 성공함으로 김일성이 종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제도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이용하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은 주체사상을 교육받아 김일성 가족을 우상화 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사상적 전쟁이 벌어지면 남한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은 증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북한이 얼마나 교활하며 악독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한국계 캐나다 시민권을 가지고 북한의 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1997년부터 오랫동안 돕고 있었던 임현수 목사를 체포하여 종신노역형을 내린 그들이 아닌가? 지금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가 정치적으로 임현수 목사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유익을 끌어내기 위해 종신노역형을 내린 것이다. 대단히 배은망덕한 일이다. 어떻게 그들과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복음이 없는 WCC를 발판으로 인도적 지원과 교류를 통해 우리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발상이다. 그것도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거역하는 WCC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런 생각은 비싼 미끼만 던져주고 열매는 거두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은 거지근성이 체질화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세밀하고 은밀한 지원과 교류가 필요하다. 공개적으로 떠드는 WCC를 통해서는 복음전도에 방해만 가져올 뿐이다. 비밀리에 중국을 통해 선교사들이 전해주는 지원과 복음전도가 효과를 발할 것이다.

주체사상에 찌들어 있는 북한 주민들은 어떤 도움도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이 도와주는 것으로 만들지 아니하면 안 되는 정치 제도에 훈련되어 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있는 WCC가 아무리 많은 돈을 북한에 쏟아 부어도 북한 주민들의 주체사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선교의 모범은 초대교회 사도들과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말없이 탈북자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장 바람직한 선교이다. WCC의 이름으로 떠들며 인기 작전에 휩쓸리는 일은 복음 선교에 방해가 될 뿐 결코 유익이 못된다.

 

김향주 목사(전 대신대학교 조직신학과 교수)
김향주 목사(전 대신대학교 조직신학과 교수)